시골집
165편 --- 왕초보는 아냐
凡草
2007. 7. 14. 22:32
2007년 7월 14일 토요일 구름 < 왕초보는 아냐 > 아내가 오늘 모임이 있어서 나혼자 노루실에 갔다. 어젯밤에 대문을 열었더니 하늘이가 풀려서 돌아다니고 있었다. 제 어미가 있어서 멀리 달아나지는 않았다. 아침에 줄을 조사해보니 고리가 느슨해서 풀린 것 같았다. 그래서 목줄을 새로 사다 다시 채워 주었다. 사온 줄이 커서 구멍을 다시 뚫느라고 애를 먹었다. 하늘이는 진이처럼 나를 잘 따르지 않는다. 내가 오라고 해도 경계심을 품고 달아난다. 하늘이는 어릴 때 곤욕을 치른 기억이 있다. 우리 집에서 반장집으로 보내려고 할 때 집뒤 구석진 곳에 들어가서 나오지 않길래 대나무로 찔러서 빼낸 일이 있었다. 그러다가 다시 우리 집으로 올 때도 잡히지 않으려고 도망다니다 또 구멍속으로 들어가 꺼내느라고 혼이 났다. 그 두 번의 나쁜 추억 때문인지 나만 보면 슬슬 달아난다. 목줄을 채워야 할 텐데 자꾸 달아나서 잡느라고 고생했다. 내가 가까이 가기만 하면 저를 혼내려고 그러는가 싶어 멀찌감치 달아난다. 나는 하늘이를 보면서 사람이든 동물이든 어릴 때부터 밝게 커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 하늘이 집>
가까스로 개 목줄을 채워 놓고 밭으로 나갔다. 지난 번에 다 못 맨 밭을 매기로 하였다. 밭을 매다 보니 감자가 또르르 굴러 나왔다. 아, 이제보니 감자캘 때가 지났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풀도 매어가면서 감자를 캐었다. 감자 몇 개를 칼로 쪼개어서 심었는데 다 캐고 보니 큰 그릇으로 가득 찼다. 양은 얼마 안 되지만 처음에 비하면 몇 배나 많은 수확이었다. < 감자 수확 >
밭 두 고랑을 다 매고 나니 몹시 피곤하였다. 그러나 지칠 정도는 아니고 노동의 즐거움 끝에 오는 나른함이었다. 이렇게 일하고 나서 막걸리나 맥주 한 잔을 하면 참 좋을 텐데 그걸 즐길 틈이 없었다. 술이 없기도 하였지만 있다고 해도 먹을 시간이 없었다. 집에 갈 준비를 하려면 고추를 따야 하고 방울 토마토도 따야 하고 상추잎도 따야 한다. 거기다 물도 받아야지. < 잘 자란 고춧대 >
고춧대가 자란 것을 보니 작년보다는 확실히 키가 크고 튼튼하였다. 고추 모종을 어느 정도의 간격으로 어떻게 심어야 하는지 이젠 다 안다. 거름을 어떻게 주어야 하는지도. 밭을 2년째 가꾸면서 왕초보 신세는 면한 듯 하다. 상추가 씨를 맺을 때가 되어서 다시 심으려고 씨앗 가게에 갔더니 주인 말이 이랬다. "너무 더워도 씨가 싹이 잘 나지 않습니다. 여름에 꼭 심으려면 씨앗을 냉동실에 넣었다가 꺼내서 심어 보세요. 그러면 씨가 겨울이 지난 줄 알고 싹이 틀 겁니다." 그래서 씨앗봉투를 냉동실에 1주일 정도 넣었다가 오늘 꺼내서 감자를 캐고 남은 자리에 상추와 쑥갓, 열무를 뿌렸다. < 야콘이 어릴 때 >
< 오늘 찍은 야곤 >
< 도라지꽃 >
마당에 올라와 보니 작년처럼 깻잎이 총총 돋아 있었다. 때가 되면 스스로 알아서 크는 깻잎이 신통하다. 깻잎도 조금 땄다. 이렇게 바쁜 틈에 작년에 담은 효소를 걸렀다. 효소를 걸러보니 두 병이 나왔다. 한 병은 집에 갖고 가기로 하고 한 병은 반장집에 갖다 주었다. 반장집 아주머니가 효소 담는 방법을 몰라서 묻길래 가르쳐주었는데 내가 담은 효소를 맛보면 직접 담고 싶을 것이다. < 별처럼 총총 돋은 깻잎 >
< 점점 더 많이 피는 백일홍 >
거실 앞에 핀 백일홍은 지난 주에는 8송이가 피었는데 오늘 세어보니 19송이가 피었다. 다음 주에는 더 많이 피리라. 작년에는 백일홍이 아주 많이 피었는데도 나혼자 즐겼는데, 올해는 옛선비처럼 꽃이 피었으니 술 한 잔 하러 오라고 친구를 불러야겠다. 친구가 바빠서 안 오면 제자들이라도. 꽃이 피는 것도 좋지만 그 꽃을 같이 볼 사람이 있다는 것은 더 좋은 일이다. 집으로 출발하려고 짐을 차 안에 싣다 보니 아차 한 가지 빠진 것이 있었다. 어제 보리밥집 아저씨가 나에게 가시오가피 나무를 한 그루 주었는데 그걸 깜빡 잊고 심지 않았다. 하루 종일 차 안에 놓아두었는데 죽지 않았을까? 급히 꺼내서 대문 밖에 심었다. 제발 안 죽어야 할 텐데. 보리밥집 아저씨는 참 정이 많은 분이다. 나한테 심을 것을 못 주어서 안달이다. 아무리 단골이라고 해도 무심할 수 있는데. 그 아저씨 성의를 봐서라도 가시오가피 나무가 살아나길 바란다. 만약에 죽으면 그와 비슷한 나무를 구해서 심으리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