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집
저수지에 핀 산국 (176회)
凡草
2007. 10. 29. 17:56
< 저수지에 핀 산국 > 2007년 10월 27일 토요일 맑음 나는 요즘 들어 점심 시간에 틈만 나면 비단풀을 채집하러 다녔다. 길가에 자라는 비단풀을 노루실에 퍼뜨리기 위해서였다. 비단풀이 여러 가지 질병에 좋은 이유도 있었지만, 노는 입에 염불한다고 채집하러 다니자면 걸을 수 있어서 좋았다. 그냥 아무 할 일 없이 걷는 것은 좀 그렇고 비단풀을 채집하러 다니는 것은 목적이 있지 않은가!
비단풀은 흔한 풀이지만 그렇다고 아무 데나 있는 것은 아니였다. 꼭 있는 곳에 소복하게 모여 있었다. 비단풀은 풀이 많은 곳에는 잘 없고 보도 블럭 틈이나 길가에 주로 있었다. 나는 비단풀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비단풀이 약효가 좋을 수밖에 없겠다고 생각했다. 기름진 흙이 아닌 보도 블럭 틈과 같은 열악한 환경 속에서 살고 있으니 얼마나 끈질긴 목숨인가? 사람들 발길에 밟히고 물조차 없는 땡볕 속에서 살아가자니, 몸은 오징어처럼 납작하게 깔리고 즙과 같은 하얀 액체를 만들어 생명을 유지해야 할 것이다. 아마 비단풀이 만든 그 하얀 즙은 어떠한 가뭄이나 태풍에도 견딜 수 있는 영약이 아닐는지. 노루실에도 비단풀이 몇 포기 있지만 약으로 쓰려면 양이 부족하니 채집에 나선 것이다. 지금은 가을철이라 비단풀이 씨앗을 매단 것 같으니 이때 채집 하면 씨를 자연스럽게 퍼뜨릴 수 있을 것이다. 비단풀을 한 봉투 채집하여 노루실에 가서 마당가에 뿌리고 나니 벌써 내년 봄이 기다려진다. 비단풀 싹이 얼마나 많이 올라올지 궁금하다. 밭에는 약초카페에서 알게 된 좋은 산삼님으로부터 받은 참당귀, 일당귀, 개당귀 씨앗을 뿌리고 왕겨를 덮어주었다. 소소님한테서는 박하, 신선초, 셀러리, 당귀 뿌리를 선물 받아 심어 놓았다.
올 가을에 심은 것들이 죽지만 않는다면 내년 봄에 싹을 내밀 것이다. 다른 해는 아무 것도 없던 황량한 밭이었는데 이젠 미리 뭔가를 심어 놓았으니 볼거리가 있을 것이다. 흔히들 봄에 씨앗을 뿌린다고 생각하지만 나는 이번 경험을 통해 봄은 미리 준비하고 나서 기다려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봄은 누가 거저 갖다주는 꽃다발이 아니다. 내가 돈을 주고 꽃다발을 사듯이 봄도 미리 미리 준비해야 할 것이다. 점심을 먹고 나서 운정 저수지 부근으로 산국을 따러 갔다. 올해도 저수지 둘레에 산국이 가득 피었다. 어찌나 많이 피었는지 산국 밭이었다. 길가에 핀 산국이라면 다른 사람들의 보는 즐거움을 위해 함부로 꺾으면 안 되지만, 저수지 안으로 들어가면 구석진 곳에 피어 있는 산국이 엄청나게 많다. 산국이 없어서 못 따는 게 아니라 일일이 따기가 힘들어서 많이 못 땄다. 아내와 둘이서 한 봉투 정도만 땄다. 산국은 차로 마셔도 좋지만 따는 동안에도 그윽한 향기가 코 끝에 맴돌아서 기분이 좋다. 작년에는 뜯은 산국에 곰팡이가 피어서 거의 쓰지 못했는데 올해는 잘 말려서 차로 마셔야겠다.
글감이 널려 있어도 글을 쓰지 않으면 동화가 안 되듯이 산국도 마찬가지다. 피는 시기가 일주일 정도니까 따는 시기를 놓치지 않아야 하고, 아무리 많이 피어 있어도 일일이 따야 내 것이 된다. 딴 다음에는 살짝 쪄서 고슬고슬하게 말려야만 차로 마실 수 있다. 남이 만들어서 타주는 차는 별로 수고하지 않은 것처럼 보이지만 직접 해보면 잔손질이 참 많이 간다. 나도 욕심 같아서는 산국차를 많이 만들어서 가까운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고 싶은데 그게 뜻대로 안 된다. 그러자면 하루 종일 따야 하고 며칠 동안 찌고 말리는 일에 매달려야 할 것이다. 아쉽지만 내가 마실 수 있을 만큼만 따서 집으로 돌아왔다. 겨우 한 봉투 땄는데도 꾸부정한 자세로 일해서 그런지 허리가 아프다. 이제 집으로 돌아갈 준비를 했다. 호박 줄기를 뒤져 호박도 두 개 따고, 수세미도 두 개, 생수 2통, 야콘 몇 개, 산국 한 봉투, 뽕잎차 두 병... 노루실에 올 때는 들고 온 게 없는 거 같은데 언제나 갈 때는 차가 그득하다. 어머니처럼 나에게 많은 것을 안겨주는 노루실! 이 시골집이 없다면 내가 도시에서 무엇을 하며 살아가랴! 그 어떤 명예나 큰 성공도 노루실에서 얻은 작은 성공보다 못하다는 게 내 생각이다. (*)
( 비수리에 씨가 가득 맺혔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