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집
마법에 걸린 나무들 (178회)
凡草
2007. 12. 2. 18:04
< 2007년 12월 2일 일요일 흐림 > 주성호 선생님의 최계락 문학상 시상식, 배익천 선생님 출판기념회 등... 여러 아동문학 행사가 줄지어 있어서 노루실에 못 가다가 어제 노루실로 달려갔다.
저번 주에는 아들과 말티즈종인 하늬를 데리고 통도사 뒷산인 영축산으로 등산을 갔다. 하늬가 3살이라 그런지 높은 산인데도 잘 걸었다. 모처럼 아들과 등산을 했는데 날씨가 초가을처럼 포근해서 좋았다. 지산리로 올라갔다가 백운암쪽으로 내려왔다.
노루실에는 3주만에 가는데도 몇 달만에 가는 것 같았다. 집에는 아무 일이 없었다. 옷을 갈아 입고 내가 키운 배추를 뽑아서 김장 담을 준비를 했다 배추가 거름을 제대로 안 준데다 심어만 놓고 내팽개쳐 두었더니 다른 밭의 반 정도 크기밖에 안 되었다. 심은 포기 수는 30포기가 넘었으나 쓸만한 배추는 반이 채 안 되었다. 할 수 없이 무안 장에 가서 8포기를 새로 사서 김장을 담았다. 아내가 어제 배추를 소금에 절였다가 오늘 씻어서 김치를 담았다. 그런데 우리 밭의 배추가 작고 볼품이 없기는 하나 사온 배추와 비교해보니 우리 밭의 배추 속이 훨씬 더 노랗고 달았다. 올해는 이미 지나갔으니 어쩔 수 없고 내년엔 거름도 잘 하고 틈틈이 돌보아서 멋진 배추를 키워 봐야겠다. 아내가 김장 준비를 하는 동안에 나는 얻어온 씨앗을 곳곳에 심었다. 경기도 양주에 있는 이보견씨가 아주 많은 씨앗을 보내 주었는데 집안 꽃밭에는 부처꽃, 삼겹 다투라, 빨간 과꽃, 바질 혼합 씨앗을 뿌렸고, 밭에는 황기, 더덕, 적피마자, 지치 등을 심었다. 홍연씨도 받았는데 이건 내년 봄에 싹을 틔워 저수지 둘레에 심을 예정이다. 정해순씨가 갖다 준 소국 씨앗도 꽃밭에 뿌렸다.
노루실의 대표 꽃인 백일홍은 가을이 깊어지자 많은 씨앗을 맺었다. 나는 주위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기도 했고, 내년에도 많이 피라고 거실 앞에 촘촘히 뿌렸다. 그래도 씨가 남아서 대문 앞 빈터에도 뿌렸다. 여태까지는 더 많은 씨앗을 못 얻어서 안달을 했는데 요즘엔 심는 것보다 기르는 것이 훨씬 더 어렵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앞으로는 아무에게나 씨앗을 달라고 선뜻 말을 하지 못하겠다. 씨앗을 뿌리기만 해봐야 제대로 싹이 트지 않았고 설령 싹이 튼다해도 다른 잡초에 치여서 정상적으로 크지 않았다. 하나 둘을 키우더라도 관심을 갖고 정성껏 돌봐야 잘 크지 아무렇게나 놓아두면 크지 않았다. 부모가 아이를 낳기만 한다고 아이가 잘 크는 것이 아니듯이 씨앗도 마찬가지인 것이다. 올 가을에 아주 많은 씨앗을 뿌렸는데 과연 내년 봄에 얼마나 날는지 궁금하다. 세월이 가는 것은 싫지만 내가 뿌린 씨앗을 보기 위해서는 봄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
씨앗을 다 심고 집안팎을 둘러보니 나무들이 잎을 다 떨어뜨린 채 고요한 모습으로 서 있다. 추운 겨울을 겸허하게 맞이할 경건한 자세다. 큰 나무는 신에게 기도하는 모습 같고, 작은 나무는 실컷 뛰어놀다 부모에게 잘못을 비는 개구쟁이 모습 같다. 제멋대로 마구 자라던 풀들은 잠자는 공주처럼 시간이 정지된 채 멈추어 있었다. 나무와 풀들은 겨울이 건 마법에 걸려 호흡조차 멈춘채 꿈을 꾸고 있다. 나도 봄이 오기까지 그들처럼 꿈을 꾸고 싶다. (*)
< 겨울엔 뽕나무 잎이 없어서 댓잎 밥을 해먹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