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맞이 준비 ( 186회 )
2008년 2월 10일 토요일 맑음
봄맞이 준비
설날에는 큰집에 가서 차례를 지내고 용호동에 있는 아버지
산소와 석계에 있는 어머니 산소를 돌아보았다.
용호동에는 길을 새로 내느라고 많은 산소들이 이장을 해야
하게 되었는데 아버지 산소는 높은 곳에 있어서 괜찮았다.
아버지 산소를 만든 뒤에 비석 옆에다 향나무 2그루를 심었는데
어느새 40년의 세월이 지나서 나무가 제법 굵어져 있었다.
바다가 바라보이는 언덕이라 나무들이 해풍에 시달린 탓인지
키는 별로 크지 않았고 둥치만 굵어졌다.
어머니 산소에 가보니 바로 위에 천주교 납골당이 들어서 있었다.
산소로 가는 길도 많이 넓혀져 있었다. 높은 산 위에 저런 건물이
들어서리라고는 도무지 생각조차 못한 일이었다.
세월은 모든 것을 변화시키는 것일까?
세월이 또 지나면 무엇이 어떻게 달라질지 모르겠다.
입춘이 지났는데도 아직 날씨가 많이 춥다.
설 연휴를 부산에서 보내다가 오늘은 노루실에 가기로 했다.
다행히 차는 별로 막히지 않았다.
그전에 노루실에 갖다 둔 컴퓨터가 고장이 나서 안 되기 때문에
아들이 구해준 컴퓨터를 싣고 갔다.
노루실은 인터넷은 안 되지만 한글 워드 작업은 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것마자 안 되어 다른 컴퓨터를 갖고 간 것이다.
나는 키보드 자판 선과 컴퓨터를 연결하는 것도 제대로 못해서
아들의 힘을 빌렸다. 알고 보니 다른 컴퓨터에 연결 잭을
무리하게 집어 넣느라고 다 구겨 놓아서 안 들어갔는데
아들이 집게로 바로 편 다음에 연결시켜 주었다.
2주만에 가서 집이 썰렁했는데 청소를 하고 보일러를 트니
집안이 훈훈해졌다. 역시 집은 사람이 들락날락하고 비벼대야
훈기가 도는 모양이다.
겨울에는 뽕나무 잎이 없기 때문에 말려둔 금은화 덩굴을
넣어서 차를 끓였다. 물맛이 은은하고 먹을만 했다.
저녁때 이웃에서 양계장을 하고 있는 이경수씨를 만났다.
이경수씨는 양계장을 하고 있지만 정자와 집을 지어본 경험이
있다고 해서 우리 집 정자를 지어달라고 부탁할 참이었다.
우리 집 뒤에 있는 아담한 집과 창고를 이경수씨가
만들었다는데 그것을 보고 솜씨를 짐작했다.
봄이 되면 농촌에서는 일손이 바빠지기 때문에 일손이 한가한
겨울철에 정자를 짓는 것이 유리할 것 같았다.
그래서 설연휴지만 일부러 연락을 해서 만나자고 하였다.
이경수씨는 부산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귀농학교까지 다녔다고
해서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인터넷에서 검색해본 정자는 모양은 좋았지만 값이 비쌌는데,
이경수씨가 비교적 싸게 지어준다고 해서 일을 맡기기로 했다.
우리가 지을 정자는 그냥 경치만 감상하는 정자가 아니라
쓸모를 생각해서 원두막과 정자를 겸한 형태가 될 것 같다.
며칠 뒤부터 기초 공사를 시작하겠다고 해서 대문과 집 열쇠를
서로 정한 장소에 놓아두기로 했다.
두 달 정도 여유를 주면 지어주겠다고 하니까 늦어도 5월까지는
완성이 될 것이다.
그러면 올 봄에는 정자에서 앵두꽃을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지금은 아무 것도 없는 계곡이지만 저 계곡에 정자가 들어서면
이곳의 풍경이 조금은 달라질 것이다.
진작부터 정자를 짓고는 싶었지만 경제적인 여유가 없어서
엄두조차 못 냈는데, 1월에 부산 문학상을 받고 상금 2백만 원
가운데 일부가 남아서 그걸 불씨로 삼아 일을 벌이게 되었다.
그 때 받은 상금은 뒷풀이 행사에 25만 원, 부산아동문학회에
30만원 찬조 등... 여기 저기 한턱 내느라 반 이상이 없어졌지만
그래도 그게 적잖은 희망이 되었다.
내가 생림에 있던 산마루에서 이웃 농장 포크레인을 믿고
조립식 집짓기에 도전했듯이 어떻게든 벌여 놓고 보면 일은
마무리될 것이다.
봄은 그냥 저절로 오는 게 아니다. 꽃샘추위도 이겨내야 하고
내 마음에서 먼저 봄을 맞이해야 진짜 봄도 다가올 것이다.
내가 아무런 준비도 하지 않고 우두커니 지켜보고만 있으면
봄은 오는 줄도 모르게 왔다가 살며시 달아나 버린다.
나의 봄은 이미 시작되었다. 마당에는 쌀쌀한 기운이 감돌아도
매화나무와 목련나무 가지 끝에 벙글은 꽃망울에서,
푸른 댓잎에 떨어지는 따스한 햇살에서.
약초모임 카페에서 무료로 얻은 번행초 씨앗을 갖고 가서
신발장 안에 넣어두었다.
봄이 되면 다른 씨앗과 더불어 번행초 씨도 뿌릴 것이다.
번행초는 삽주뿌리, 예덕나무와 함께 위에 좋은 3대 약초인데
따뜻한 바닷가 지방에 잘 자란다고 하는데 밀양에서 잘 자랄지
모르겠다.
집 옆에 있는 도랑 너머로 대나무가 몹시 우거져서 톱을 들고
들어가서 좀 솎아 주었다. 이발사가 이발을 하듯이. 우리 집
쪽으로 기울어진 대나무들을 베었다.
그 일이 끝나자 세 사람이 달라붙어 마당 한 귀퉁이에 있던
개 사육장과 지저분한 철망들을 깨끗이 정리하였다.
철장으로 만든 개 사육장은 뒤뜰로 옮겨 놓았다. 여태 치우고
싶어도 무거워서 엄두가 나지 않았는데 아들이 와서 거드는
덕분에 치울 수가 있었다.
개집과 사육장을 다 치우고 나니 마당이 훨씬 더 넓어 보이고
깔끔하였다.
이제 노루실의 봄맞이 준비는 대강 다 되었다.
저녁에는 마당 구석에 있던 달맞이꽃 줄기를 끊어다가 종이를
깔아 놓고 씨방을 비볐더니 깨알보다 작은 씨가 소복하게
떨어졌다.
이 씨앗은 부산으로 들고 가서 시험삼아 새싹을 틔워볼 것이다.
일단 물에 담궈서 씨앗을 불린 다음에 손수건을 깔고 싹을
틔울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