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집

[스크랩] 너무 많이 심었나? (191회)

凡草 2008. 3. 24. 23:14

  2008년 3월 23일, 일요일, 비온 뒤 갬
 오랜만에 노루실에 혼자 들어갔다가 나왔다.
 아내는 아이들을 챙겨야 하는데다 촌구석에 이틀이나 쳐박혀 
있는 것을 싫어하기 때문에 모처럼 나혼자 들어갔다.
 약간 외롭긴 했지만 혼자 노루실의 봄을 만끽했다.
 토요일에 석대동 산림조합에 들러 산초 나무 4그루를 사서
노루실로 향했다.
 참 그전에는 좌동 재래시장에 들러 아귀를 사고 호박 구덩이에
넣을 생선찌꺼기를 얻어 갔다. 차에 비린내가 진동하였지만
호박이 달처럼 큼직하게 열릴 것을 상상하니 아무렇지 않았다.
 나무를 하도 많이 심어서 이젠 나무 심을 자리가 없었지만
겨우 빈 구석을 찾아 산초나무를 심었다.
 (이게 살아날까? 어린 산초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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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에는 매화가 활짝 피어 있었다. 작년에는 꽃이 얼마 안 피었더니 올해는 꽃 풍작이었다. 다른 곳에서 보던 장관이 노루실에도 그대로 옮겨왔다. 매화나무 아래에 서면 새콤한 매실 향기가 진동했다. 꽃이 저런 향기를 갖고 있으니 열매도 그렇구나. (만개한 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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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순이 나오는 모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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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겨우 봉우리가 열린 목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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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을 둘러본 뒤 밭으로 가서 냉이를 캐기 시작했다. 냉이는 꽃이 피기 전에 캐야 영양가가 높다. 반장집에서 거름을 사서 뿌릴 건데 뿌리기 전에 냉이를 캤다. 노루실에만 오면 시간은 빨리 지나가고 손은 더디고. 냉이를 대충 캔 다음에 반장 아저씨가 날라다준 닭똥 거름을 밭에 골고루 뿌렸다. (거름을 다 뿌린 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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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뒤에 집으로 들어와 다 못 뿌린 씨앗을 계속 뿌렸다. 슈퍼 여주, 화초 가지, 동아씨, 포피그린... 이 많은 씨앗들이 과연 날까? 내가 너무 욕심을 부리는 건 아닌지... 그러느라 하루 해가 다 갔다. 저녁은 역시 늘 하던 대로 약초밥을 지었다. 오늘은 댓잎, 익모초, 뽕나무 뿌리 세 가지를 넣어서 밥을 했다. 남이 먹으면 어쩔지 모르지만 난 익숙해져서 밥맛이 좋았다. (나만의 약초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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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을 먹고 쉬다가 목련꽃 차를 만들어 마셨다. 우리 집 목련은 아직 꽃이 안 피어서 다른 곳에서 한 송이를 따왔다. 컵에 목련꽃을 넣고 뜨거운 물을 부었더니 즉석에서 목련차가 되었다. 향이 그윽하고 은은했다. 목련꽃 노래가 찻잔 속에서 울리는 듯 했다. (향이 그윽한 목련꽃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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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미니 비닐 하우스 안에서 싹이 튼 상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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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를 마시며 동화 공부 교재를 만들다가 잠자리에 들어갔다. 새벽녘에 빗소리에 잠이 깨었다. 투둑 툭- 툭툭-. 나를 깨우는 빗소리. 봄비의 손짓이다. 아, 얼마만에 노루실에서 듣는 빗소리인가! 가족과 떨어져 홀로 누운 방에 외로움이 가득했는데, 저 빗소리는 순식간에 외로움을 다 지워버린다. 수많은 빗방울 친구들이 나를 위로 하고 반겨준다. 나는 일어나 옷을 입고 현관문 밖으로 나갔다. 어두컴컴한 하늘에서 메마른 땅으로 빗줄기가 그어진다. 죽-죽- 손으로 빗줄기를 만져본다. 거미줄처럼 보드라운 봄비다. (모란이 싹을 내밀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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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눈을 뜨고 있는 천리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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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방으로 들어와 아침을 먹고 등산갈 준비를 했다. 반찬은 나만의 아귀탕에 냉이와 머위 데친 것이다. 도시락도 냉이와 씀바귀에다 마트에서 산 달래로 반찬을 준비했다. 비가 와도 산행에는 아무 지장이 없지만 혼자라서 높은 산은 피하기로 했다. 목적지는 청도 용당산. 그리 높지 않고 산길이 분명해서 이런 날 가기에는 안성맞춤이다. 온막리에서 산행이 시작되었다. 산을 오르고 있으니 비가 약간 가늘어졌다. 약 4시간의 산행은 그리 힘들지 않았다. 등산화를 갖고 가지 않아서 운동화로 쉬엄쉬엄 걸었다. 산을 다 내려와 차 있는 곳으로 되돌아가는데 어떤 할아버지가 소쿠리에 웬 풀을 가득 담아서 대문 밖으로 나왔다. 뭔가 하고 보니 원추리였다. 나는 할아버지가 원추리를 냇가에 가서 씻어 반찬을 하려나 보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할아버지는 서슴없이 냇가에 던져 버리는 것이 아닌가! 나는 그 원추리가 너무나 아까웠다. 우리 집 마당에는 원추리가 이제 대 여섯 뿌리로 번식을 한 상태라 아까워서 뽑아 먹지를 못하는데. 나는 냇가로 내려가서 주워 가나 어쩌나 하며 망설이다가 그냥 가던 길로 걸어갔다. 한참 가다가 아무래도 아까워서 다시 돌아 섰다. 저런 원추리를 어디 가서 구한단 말인가! 산행을 하다 간혹 보긴 했지만 그리 많지 않아서 차마 뽑아 올 수는 없었다. 오늘 이 자리를 지나쳐 버리면 두고 두고 후회하리라. 내가 냇가 쪽으로 가서 내려갈 곳을 찾느라 두리번거리고 있는 참인데 아까 그 할아버지가 또 원추리를 들고 나오셨다. 이번에는 아까보다 더 많은 양이었다. 이것만 얻으면 냇가에 버린 것을 굳이 주울 필요가 없었다. 나는 용기를 내어 할아버지 앞으로 다가갔다. "할아버지, 그거 버리실 거면 저 주세요." "난 귀찮아서 뽑아 버리려는데 뭐 하려고 그러나?" "저희 집 마당에 심으려구요. 나물로도 좋잖아요." 할아버지는 두 말 없이 내게 주었다. 원추리는 비닐 봉지로 한보따리였다. 할아버지 집 마당 안에 하도 번져서 뽑아버리는 중이라고 하셨다. 뜻밖에 큰 횡재를 해서 퍽 기뻤다. 만약에 그대로 가 버렸으면 이 두 번째 원추리를 얻을 수 없었을 것이다. 나는 이 일로 두 가지를 깨닫게 되었다. 용기를 내면 뭔가 얻을 수 있다는 것과 내게 부족한 것을 구하려고 애쓰다 보면 언젠가는 저절로 나에게 굴러들어온다는 것을. 내가 원추리를 구하려고 헤매지 않았는데도 할아버지가 거짓말 처럼 내 앞에 나타나서 원추리를 버린 일은 아무리 생각해도 신기하다. 그 때 내가 원추리 모습을 몰랐다면 아마 그냥 지나쳐 버렸겠지. 집으로 돌아와 또 심는 고역을 치렀지만 마음은 뿌듯했다. 그 다음에는 돼지감자를 심었다. 이제 밭에는 심을 자리가 없어서 마당 한 구석에 심었다. 올해는 너무 많은 씨와 나무를 심어서 솔직히 힘이 들었다. 이제부터는 공연히 나무와 씨앗 욕심을 부리지 말고 적당히 즐기면서 살아야겠다. 하도 많은 씨와 나무를 심어서 이제 더 심으려고 욕심을 부린다면
내 손바닥에 심어야 할 것 같다. 욕심도 지나치면 안 부린 것만 못하다. (*)
 (공짜로 얻은 원추리 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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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지구엽초를 심은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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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 감자를 심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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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기자도 싹을 살며시 내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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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 글나라
글쓴이 : 凡 草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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