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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에 저 분이 없었으면 오늘의 이 현실은 없을지도 모른다, 저 분을 빼고 이 주제를 말할 수는 없다, 라는 평가를 받는 사람들이 있다. 자신은 물론 다른 사람들에게도 영향을 미치고, 전체의 흐름 속에 자신의 물줄기를 끊임없이 흘러 보내는 사람들 말이다. 부산의 아동문학에서 김재원 선생님은 그런 존재이다. <작가의 창>이 동화작가 김재원 선생님을 만났다. <김재원 동화창작교실>이 배출한 동화작가는 배유안, 한정기, 허명남 등 40여명에 이른다. 일간지의 신춘문예 혹은 인정받는 문예지로 등단한 작가들이다. 처음에는 ‘사단’이라는 말로 질투를 받기도 했으나, 이제는 아동문학을 널리 알리고 부산아동문학을 전국적으로 자리매김하는 역할을 한 것을 인정하는 분위기이다. 작가는 동화창작교실을 위해 매주 다른 주제로 A4 6~7 페이지 분량의 교재를 만든다. 그것이 2008년 4월 2주 현재 310호에 이르고 있다. 310호에 이르는 동안 매번 주제로 교재를 만들다니, 입이 딱 벌어질 일이다. 동화이니까, 김재원 이라는 사람에게 그것은 ‘동화의 일’이니까 그렇게 할 수 있었으리라. |
작가는 교대를 졸업하고 처음으로 부임한 공덕초등학교에서 문예반지도교사를 맡으면서 아동문학과 만나고, 어린이들의 글을 보았다. 학생들을 지도하기 위해서는 본인도 공부를 해야 했다. 동시를 썼고, 『소년중앙』에 당선도 했다. 그러는 동안 고등학생 시절 글짓기대회에서 수필로 상을 받았던 본래의 기질, 산문적 인간임을 깨닫게 되어 동화를 쓰기 시작했다. “아이들을 가르치다가 등단까지 하게 된 겁니다.” 공덕초등학교 문예반이 낳은 제자는 현재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동화작가 박윤규. 그가 김재원 선생의 제자 1호이다. 작가에게는 호가 있다. 범초(凡草). 평범한 풀이라는 뜻의 ‘범초’는 부친이 직접 지어주신 것. 초등학교 6학년 김재원은 우연히 ‘도산 안창호’ ‘백범 김구’ ‘충무공 이순신’ 등 훌륭한 사람은 이름 앞에 호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훌륭한 사람이 되려면 호가 있어야 하는구나 생각한 그는 귀찮아하는 아버지를 일주일이나 따라다닌 끝에 ‘범초’라는 호를 얻어냈다. 그는 공책 앞에 ‘범초 김재원’이라고 썼다. 또래 친구들은 그게 뭔지도 모르고 놀려댔지만, 아랑곳없었다. 몸이 약하고 부끄러움이 많았던 소년 김재원의 심중에 그때 이미 무언가가 심어져 있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좋은 책을 읽으면서 사는 것, 글 쓰는 것, 제자들을 가르치는 것. 살면서 평생 이 세 가지를 하고 싶다는 동화작가 김재원. 그는 무언가 큰 결정을 내릴 때마다 ‘어느 쪽이 내가 동화를 쓰는 것에 도움이 될까’를 먼저 생각한다고 한다. “동화는 내 인생의 나침반입니다.”라는 작가의 말이 잊혀지지 않는다. 동화는 그를 지켜주는 단단한 성 같았다.
글 / 박현주<책소식> 편집장
김재원 / 동화작가. 부산에서 태어나 부산교육대학을 졸업했다. 1986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동화가 당선되어 문단에 등단하였다. 1992년 아동문학상, 1995년 해강문학상, 2003년 이주홍문학상을 수상하였다. 현재 글나라아동문학연구소를 운영하며 어린이글쓰기교실과 어른을 위한 동화창작교실을 열어 아동문학에 힘쓰고 있다. 지은 책으로 『꿈을 날리는 곰보 아저씨』, 『하느님 우산은 누가 고칠까?』, 『하늘로 날아간 혹』, 『공룡박사와 개미박사』, 『뿔없는 도깨비』『똥쟁이, 너도 진돗개니?』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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