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 양동이와 노루실 ( 209회 )
노란 양동이와 노루실
< 2008년 7월 20일, 토요일, 비온 뒤 개임 >
17일 저녁에는 달님반 종강식을 하였다.
달님반은 저녁에 글나라에 동화를 배우러 오는 사람들을 말한다.
화요일 낮반은 낮이라 술을 마시기가 곤란하지만 저녁반은
마치고 나면 밤 9시반이 넘으니까 동동주도 준비하여 마셨다.
올해는 정선혜 선생님이 했던 캐릭터 가면 파티를 본따서
우리도 캐릭터 가면 발표회를 하였다.
달님반 동화교실 종강날
캐릭터 발표회
여러 사람들의 이야기가 진솔하여 참 좋았는데 그 중에서도
이명순씨가 말한 '노란 양동이'에 대한 새로운 해석은
철학적인 내용이라 퍽 인상적이었다.
여우는 길에서 노란 양동이 하나를 발견하고는 갖고 싶어
애를 태운다. 주인이 나타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랐는데
결국 노란 양동이는 주인이 찾아가 버린다.
비록 자신이 손에 넣지는 못했지만 여우는 노란 양동이를 보며
참 행복했다는 것을 깨닫는다. 꼭 자기가 차지해야만 행복한
것이 아니라 며칠 동안이라도 바라보며 좋아할 수 있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우리가 살아가면서 얻게 되는 것들은 내것이 아니라 잠시 빌린
것일 수도 있다. 주인이 나타날 때까지만.
남편이나 아내도 어떻게 보면 내 것이 아니다. 내 마음대로
할 수 없으니까. 주인이 나타날 때까지 빌려서 사는 것이라면
지나친 생각일까?
그렇게 본다면 이 세상 모든 것이 다 노란 양동이와 같을 것이다.
내가 잠시 좋아하고 탐을 내는 것일 뿐, 결국엔 사라지고 만다는
것을.
꼭 내 손에 들어오지 않는다 하여도 내가 정말로 좋아한다면
노란양동이가 될 수 있음을.
노루실 범초산장도 노란 양동이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언젠가
다른 주인이 나타날 때까지 내가 잠시 빌려서 쓰고 있으니까.
어제 저녁에는 아내와 같이 노루실로 들어갔다.
아내는 참 오랜만에 따라갔다. 아내는 노루실에 도착하자마자
문을 꽁꽁 닫아 두어서 곰팡이 냄새가 난다며 방을 쓸고
닦았다. 아내가 따라오면 잔소리를 하는 것이 듣기 싫지만
집이 깨끗해지고 내 일손을 덜어주어서 좋다.
이번에 오기 전에는 아내 조언대로 풀베는 예초기를 샀다.
낫으로만 풀을 베려니 능률도 안 오르고 힘이 들어서 풀을 제대로
베지 못했다.
오늘 예초기로 풀을 베어 보니 낫보다는 한결 편했다.
그 바람에 마당이 훨씬 깨끗해졌다. 긴 머리를 확 밀은 것처럼
집안이 훤해졌다.
예초기로 잔디를 깎은 마당
일을 하고 쉬는데 폭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마침 일을 끝낸
뒤라 거실에 앉아 비를 감상하였다.
처마에서 비가 떨어지는 모습이 한 폭의 수채화였다.
대숲에도 빗방울이 떨어지고 감나무에도 떨어지고 뽕나무에도
톡톡 떨어진다. 온갖 소리들이 섞여 음악처럼 들린다. 비가 들려
주는 교향곡이다.
아침부터 무더웠는데 더위를 확 씻어주는 비다.
비야 비야 내려라! 그치지 말고 내려라!
일도 다 했겠다. 느긋하게 비를 바라보며 동동주를 마셨다.
형님들은 술고래라서 소주 10병도 앉은 자리에서 다 마시지만
나는 동동주 한 병도 다 마시지 않고 반 병만 마셨다. 술은 많이
취하는 것보다 적당히 취하는 게 더 좋은 법이다.
비오는 노루실
한련초
호박
마당 한 구석에는 돼지 감자(뚱딴지)를 심어 놓았다.
오늘 보니 돼지 감자가 거의 군단을 이루고 있었다. 군인들이
열병하듯이 크게 자라서 대열을 이루고 있다.
노루실을 지키는 돼지감자 군단인가? ㅋㅋ
진짜 감자는 저렇게 키가 안 큰데 돼지 감자는 진짜보다도
더 키가 크다. 진짜가 잘못하면 가짜한테 눌릴 판이다.
사람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성격 좋고 행동이 바른 사람일지라도
무엇인가에 몰입하지 않으면 성격이 나쁜 사람한테 밀릴 수
있을 것이다.
돼지감자 군단
점점 모습을 갖추어 가는 정자
범의 부채
연을 심어 놓은 곳에 가서 들여다 보니
미니 연못 속에 올챙이가 아주 많이 헤엄치고 있었다.
마침 물을 받아둔 플라스틱 통 안에 모기 애벌레인 장구벌레가
많이 있어서 미니 연못 속에 부어주었다.
수련은 벌써 꽃이 피었고 연도 꽃이 피려고 봉오리가 맺혀
있었다.
나는 연을 심은 통 속에 흙이 부족할까 봐 진흙을 더 넣어
주었다.
꽃봉오리가 맺혀 있는 연
꽃이 핀 수련
원추리
돌아오기 전에 밭으로 가서 부추를 뽑았다.
며칠 전에 장학관 친구한테 들은 말인데,
부추꽃이 피었을 때 뿌리까지 뽑아서 술을 담으면
아주 좋단다. 친구는 부추술을 담아서 먹고 있는데 맛도 좋고
건강에도 좋더라고 했다.
부추가 정력에 좋아서 절에 있는 스님들은 못 먹게 하는
채소라고 하던데 뿌리채 담으면 더 말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지금 우리 밭에는 잡초가 너무 많아서 골치거리인데 이 참에
부추를 다 뽑아 버리고 내년 봄에 모종을 구해서 새로 심기로
했다.
부추를 호미로 캐려고 했더니 뿌리가 어찌나 흙을 꽉 잡고
있는지 잘 파지지 않았다.
힘을 주어 캤더니 뿌리까지 다 뽑혀 나왔다. 파 뿌리처럼 하얀
뿌리가 드러났다.
우리에게 잎을 몇 번이나 베어주고 이젠 뿌리까지 다 뽑혔으니
정말 아낌없이 주는 부추다.
나도 남에게 나를 아낌없이 주어야 할 텐데 그러지 못하고
나를 항상 아끼기만 하니 부추보다도 못한 것 같아 부끄러웠다.
부추술이 익으면 그 술을 마시며 나를 뿌리채 비우는 마음을
배워야겠다. (*)
도라지
술 담으려고 뿌리채 파낸 부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