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부탁합니다!
< 2009년 7월 18일, 토요일, 갬 >
올해는 비가 많이 온다. 작년에는 장마철에도 비가 적었는데 올해는 하루 걸러 폭우가 쏟아진다. 아내가 노루실에서 담은 효소를 걸렀는데 초파리가 드글드글하다고 진저리를 쳤다. 이상하다. 뭐가 잘못 되었지? 항아리 입구를 잘 봉하지 못한 모양이다. 매실 거른 것과 효소 찌꺼기를 비닐 봉지에 담으니 4개나 되었다. 수내에 갈 때 갖고 갔다. 수내에 들어가려면 옆집 마당을 지나야 하는데 개가 시끄럽게 짖어댄다. 옆집 아저씨한테는 지난 번에 인사를 드렸는데 개한테도 잘 보여야 할 것 같다. 화명동 보리밥 집에서 족발 뼈다귀를 얻어갔다. 지난 주에 이어 오늘이 두 번째다.

옆집 앞을 지나가면서 개에게 족발 뼈다귀를 던져주었다. "잘 부탁한다!" 개가 나를 처음 보았을 때는 마구 짖더니 뼈다귀를 준 뒤부터는 조용해졌다. 코 밑에 진상이 최고라더니 개도 먹을 것 앞에는 부드러워졌다.
오늘은 옆집 아주머니도 보여서 인사를 드렸다. "요 옆에 밭을 산 사람인데요. 잘 부탁합니다!" "뭐 부탁하고 말게 있는교? 이웃끼리 잘 지내면 좋지요." 아주머니 인상이 좋아서 안심이 되었다.
혹시 고약한 분이라면 지나갈 때마다 신경이 쓰일 텐데.
옆집에는 복날 음식을 먹는지 친척들이 많이 와 있었다. 오늘은 뼈다귀가 남아서 후배 농장에 있는 개한테도 갖다 주었다. 후배 농장에는 개가 세 마리 있는데 나를 보고 큰 소리로 짖더니 뼈다귀를 던져주자 이내 조용해졌다.
"너희들도 잘 부탁한다. 안 짖을 때까지 갖다줄게."



밭을 돌아 보니 어느새 수세미와 상추 싹이 돋아나 있었다. 그동안 비가 자주 오더니 싹이 빨리 돋아났다. 다른 싹도 제법 많이 보였는데 좀더 커봐야 무엇인지 알 것 같다. 노루실에서 몇 뿌리 가져온 신선초와 박하도 뿌리를 잘 내렸다.

내가 심지 않은 쇠비름도 많이 번져서 반가웠다. 쇠비름이 좀더 자라면 효소를 담아야겠다.

아파트에서 갖다 심은 채송화도 살아나서 꽃 한 송이를 피웠다.
내 밭을 지키는 경비원 같다.

아직 임시 거처를 만들지 않아서 마땅하게 쉴 곳이 없었다. 다음에는 텐트라도 가져와야겠다. 내가 밭을 돌아보고 잡초를 뽑는 동안 아내는 계곡에 가서 발을 담그라고 하였다. 아내가 돌아와서 계곡 물이 참 좋다고 했다.

식초처럼 신냄새가 풀풀 풍기는 효소 찌꺼기를 밭에 뿌렸다. 아파트에서는 초파리가 모여든다고 질겁을 하는데 여기서는 아무도 뭐라 하지 않는다. 밭은 냄새나고 지저분한 것도 다 받아준다.

며칠만 지나면 그 지독한 냄새투성이 찌꺼기도 흙과 한 덩어리가 된다. 나는 흙을 만지면서 흙의 마음을 닮고자 노력한다. 흙은 밟고 비비거나 삽으로 파헤치거나 아무 말이 없다. 무엇이든 다소곳이 다 받아준다. 더러운 음식 쓰레기도 아무 말없이 받아서 거름으로 삭혀준다. 사람들은 자신의 이익 때문에 목소리를 높이고 상대방을 비난하지만 흙은 그러지 않는다. 낮게 엎드리고 포근하게 품어준다.
아내는 초파리가 뒤범벅이 된 효소 찌꺼기를 버리고 나니
속이 시원하다고 했다.
흙은 남의 속도 시원하게 해준다.

후배 농장 '동주원'에 올라가니 아직 후배가 오지 않았다. 개들에게 족발 뼈다귀를 나누어 주고 꽃들을 구경했다. 수국이 탐스럽게 피었다. 밭에는 수박도 있었다.



조금 있으니 후배 동주가 왔다. "야, 비가 억수로 왔는데도 동주원은 끄떡없네." "배수로를 잘 만들어두었더니 아무 일 없네요." 동주원은 지대가 높아서 물에 잠길 염려는 없었다. 동주 어머니가 계시면 드리려고 부추술을 들고 갔는데 안 계셔서 동주와 내가 몇 잔씩 마셨다.
동주는 우리 밭 옆에 있는 큰 계곡 말고
동주원 부근에 있는 숨은 계곡을 가르쳐 주었다.
아담하고 이쁜 계곡이었다.

집으로 돌아올 무렵, 동주가 고추를 따주었다. 마음이 넉넉한 후배 덕분에
주말이 즐겁다.

고추를 얻는 김에 호박잎과 어성초도 조금 땄다. 어성초가 아주 많이 번져서 군락을 이루고 있었다. 다음에 우리 농막 주위에도 옮겨 심어야겠다.

같이 산 조교감은 아직 한 번도 보지 못했다. "동주, 간단하게라도 임시 거처를 하나 만들자. 잘 만드는 사람이 있으면 부탁해줘." 다음 주에는 계모임이 있어서 2주 뒤에 또 오기로 하고 동주원을 떠났다. (*)
내가 심어준 잔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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