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9년 7월 26일, 일요일, 구름 >
휴가를 맞아 가족 여행을 떠났다. 노루실에 있는 시골집을 팔고 나서 허전한 마음도 달랠 겸 가족 여행을 하기로 했다. 우리 부부를 잘 따라 나서지 않는 아들도 모처럼 같이 가겠다고 하여 셋이 출발했다. 아들이 8월 중순부터 취업하기로 예정되어 있는데 아마 그전에 가족과 같이 여행을 가고 싶은 모양이었다.
애완견 하늬도 같이 갔으니 사실은 네 가족이 간 셈이다.
첫번째 방문할 곳은 월악산 국립공원 안에 있는 박윤규 집이다. 윤규는 내가 초등학교 때 가르친 제자인데 지금은 중견 동화작가라 만나면 할 이야기가 많다. 좋은 제자를 둔 덕분에 월악산 국립공원 안에 있는 별장을 찾아갈 수 있어서 기뻤다.
아들이 운전을 잘해서 편안하게 월악산까지 갔다. 아들이 그전에는 약간 급하게 차를 몰았는데 이젠 차분하게 운전해서 마음이 놓였다.
( 칠곡 휴계소에서 아들과 하늬 )

경부 고속도로로 올라가서 칠곡 휴게소에서 한 번 쉬고 구미를 지나 중부내륙 고속도로를 타고 올라갔다. 연풍 나들목으로 빠져 나가 월악산 미륵사지 부근에 있는 '관영재'까지 찾아갔다. '관영재'는 월악산 최고봉인 영봉이 보이는 집이라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윤규를 만나 반갑게 인사하고 관영재 안으로 들어갔다. 어제 저녁에 20여 명의 손님이 묵고 조금 전에 갔다는데도 윤규 부부가 반갑게 맞아주었다.
( 월악산 영봉과 관영재의 무궁화 )




윤규는 아들 둘을 두었는데 대학생인 큰 아들은 알바하러 갔고 중학생 민욱이가 남아 있었다. 아내와 윤규 부부는 교대로 탁구를 했고, 탁구가 끝난 다음에는 나와 바둑을 두었다. 윤규 부인 해경씨가 바둑을 잘 두어서 나와 거의 맞수였다.

기와집 벽에는 윤규 동화책에 있는 삽화를 그려 놓아서 참 보기가 좋았다. 정말 동화작가가 사는 집 같았다.


해경씨는 서각에 솜씨가 있어서 관영재 글자가 새겨진 그림판을 직접 만들었고 호랑이도 잘 만들어 놓았다.


저녁을 먹기 전에 윤규와 마당에 딸린 밭을 손질하여 쪽파를 심었다. 쪽파 씨앗은 돌아가신 윤규 어머니가 물려준 것이라는데 사람은 가도 씨앗이 남았다고 해서 가슴이 뭉클했다. 나도 범초산장에 심어 보려고 윤규한테 쪽파 씨앗을 한 줌 얻었다. 매발톱과 초롱꽃 씨앗까지 받았는데, 다음에 싹이 트면 월악산표로 부를 것이다.

하루밤을 자고 다음날에는 월악산 만수봉을 올랐다. 983미터의 만수봉에 올라갈 때는 계곡을 끼고 쉬엄쉬엄 올라갔는데 맑은 물이 콸콸콸 흘러내렸다. 작은 폭포도 여러 개 있어서 얼마나 깊은 계곡인지 알 수 있었다. 중학생 민욱이가 좀 힘들어 했는데 그래도 끝까지 잘 올라가서 칭찬해주었다. 어릴 때부터 산을 자주 오르면 큰 사람이 될 수 있다. 나는 30대 후반부터 산을 좋아하게 되었는데 더 이른 나이부터 산을 좋아한다면 평생 몸과 마음이 건강한 사람으로 살 수 있을 것이다.

( 갈퀴)

나와 윤규는 산을 오르며 옛날 이야기를 도란도란 나누었다. 윤규가 집안 형편이 어려워서 초등학교 다닐 때 결석을 자주 해서 나한테 맞은 일, 미술부에 안 가고 문예반에 남던 일, 부인이 된 해경씨와 만난 일들...... 정다운 제자도 만나고 월악산 산행까지 해서 금상첨화였다. 윤규 집에 몇 번 갔어도 등산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산을 내려와서 윤규가 하루 더 자고 가라고 한사코 졸랐지만 예정된 일정이 있었고,
엊그제부터 손님을 치르느라 고생한 제자 부부를 더 힘들게 할 수 없어서
영월로 떠났다. 우리 가족을 편안하고 정답게 맞아준 제자가 퍽 고마웠다.
윤규야 다음에 또 만나자. 정말 행복한 만남이었다. 더욱 건강하길...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