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집

늦게 심었다고 꽃 못 피우냐? 271회

凡草 2009. 9. 20. 19:13

 

 

 늦게 심었다고 꽃 못 피우냐?


< 2009년 9월 20일, 일요일, 맑음 >

 
 어제는 오전에 해운대 스펀지에 가서 아내와 '애자' 영화를 보았다.
요즘 동화 교실에서 캐릭터 이름 짓기를 가르치고 있는데
이 영화 제목은 이름을 잘 붙인 것 같다.
 내가 나름대로 풀이해 보니, '애자'란 사랑스런 자식과
애를 먹이는 자식의 두 가지 의미를 담고 있는 것 같았다.
 엄마와 딸이 보면 아마 많은 공감을 할 것 같은데 눈물을 흘릴 만한
장면이 몇 번 있었다.
 자식들은 부모가 언제까지나 건강하게 살아 있을 줄 알고 함부로
대하지만 막상 지나고 보면 부모가 건강하게 살아있는 기간은
얼마 안 된다.
 부모가 건강할 때 잘해드리고 행복한 시간을 같이 해야지 아프고 나서
잘해드린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
 
 영화를 보고 나서 이기대 공원으로 갔다.
 어떤 분이 내 블러그를 찾아와서 비단풀 씨앗을 구해 달라고 했는데
여기 저기 찾아봐도 비단풀이 보이지 않았다.

 

 

 


 작년엔가 부부계 모임을 하고 이기대 공원으로 갔는데 친구가
비단풀을 한 주먹 뽑은 것을 보았다. 이기대 공원 보도 블럭 틈에
제법 많은 비단풀이 자라고 있었다.
 그게 생각나서 이기대 공원으로 갔는데 올해는 어찌된 셈인지 통 보이지
않았다. 요즘 비단풀이 좋다고 하니 사람들이 다 뽑아가 버린 모양이다.
결국 비단풀은 한 줄기도 구하지 못하고 그냥 바람만 쐬었다.

 

 

 

그래도 비단풀 덕분에 아내와 바다도 보고 바닷바람도 쐬었다.
 비단풀을 구하지는 못했지만 구해주기 위해 애쓰다 보니 좋은 풍경을 공짜로

구경했다.
 이기대 공원은 그전보다 산책로를 아주 잘 다듬어 놓아서 걷기가 편했다.
바닷가 절경을 보며 감탄하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해마다 이맘 때면 벌초하러 가는 차량 때문에 도로가 많이 막혔다.
그래서 차를 집에 두고 지하철을 타고 수내로 갔다.
 범어사 역에서 마을 버스로 갈아타고 수내로 들어갔다.

 

 

 

   


 저번에 심은 배추가 반은 말라죽었다. 한낮에 옮겨 심은데다 요즘 비가
안 와서 물기가 부족한 때문이었다.
 급하게 물을 떠다 뿌려주고 있는데 동주가 새로운 배추 모종을 들고 왔다.
배추 모종이 전보다 더 많이 자라 있었다.
 죽은 모종 대신 새 모종을 심었다.

 

  우리 밭으로 들어가는 길목에 있는 옆집

 

 

 이 모종은 잘 살아날지 모르겠다. 물을 뿌려주긴 했지만 비가 하도 안 와서
가을 가뭄이 심하니 살아날 것을 기대하기가 어렵다.
 도시에서는 비가 오든 안 오든 별 상관이 없지만 밭에는 비가 안 오면
큰 일이다. 식물들은 하늘만 보고 자란다. 사람이 음식으로 살아간다면
식물은 하늘에서 주는 비를 먹고 자란다.
 모종을 새로 심고 물을 떠다 뿌려주고 나니 주위가 새까매졌다.

 

 

 

 
 드디어 닥풀이 꽃을 피웠다.
 부용화처럼 참 보기가 좋다.
 지나간 범초산장 일기를 보니 7월 4일에 닥풀 씨를 심었다.
 보통은 3월에 씨를 심으니 무려 넉달이나 늦게 심었다.

 

             

 

          

 

 

 

 

 식물들에게 4달이란 엄청난 차이다. 감자가 심은 지 두 달만에 다 자라버리니
4달이란 감자로 보면 거의 2년에 가까운 기간이다.
 그렇게 늦게 심었는데도 잘 자라서 꽃이 피었다.
 닥풀이 입이 있다면 이렇게 말할 것 같다.
 "늦게 심었다고 꽃 못 피우냐?"

 3월에 심든 4월에 심든 7월에 심든, 심은 그 순간부터 최선을 다하면 되는
것이다.

 

 수세미는 지지대도 세워 주지 않고 맨땅에 심었는데 맨땅에 드러누워서도

열매를 맺었다. 수세미가 누운 채로 긍정적인 말을 하고 있다.

 "누워 있으면 열매 못 맺냐?"

 

 

 어떤 수세미는 닥풀과 까마중 줄기에 간신히 대롱대롱 매달려 있다.

 " 지지대 없다고 열매 못 맺냐? 이것도 묘기지?"

 

 

  이렇듯 닥풀과 수세미는 늦게 심었어도 부지런히 컸다.

 사람이 배우는 것도 흔히 때가 있다고 하지만, 때를 놓친 사람은 늦게라도
최선을 다해 배우면 열매를 맺을 수 있다.

 
 미리 미리 준비하고 계획을 잘 세워 남보다 빨리 공부를 시작하면 좋지만,
살다 보면 때를 놓치기가 쉽다. 자기가 놓치고 싶지 않아도 주위 사정으로
놓치게 되고 가정 사정 때문에 공부를 늦게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늦어도 얼마든지 따라갈 수 있다. 늦다고 한탄하는 것보다 하루라도 일찍
시작하면 그만큼 시간을 벌 수 있다.
 닥풀은 늦게 심었어도 나를 원망하지 않고 꽃을 예쁘게 피웠다.
 만약에 닥풀이 심은 사람을 원망하고 하늘에 반항을 하며 게으름을 피웠다면
저렇게 꽃을 피우지 못했을 것이다.


 3월이 30대라면 7월은 70대와 같다. 닥풀은 70대의 나이를 극복하고 꽃을
피운 셈이다.
 20대에 동화 공부를 시작하는 사람도 있지만 직장도 구해야 하고 결혼도
해야 하기 때문에 시간을 충분히 쏟아부을 수가 없다. 30대는 아이를 키우느라
바쁘고, 40대는 주부 우울증이나 여러 가지 사회 활동으로 시간을 짜 내기가
어렵다.
 그러다 보면 50대가 되고 그제서야 동화 공부를 해보려고 하지만 나이 때문에
망설여진다.

 

 나는 나이가 많아서 배우기를 겁내는 사람들에게 미국 화가 모지스 할머니
이야기를 꼭 들려준다.
 

 미국의 '모지스'라는 화가는 미국 국민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은 국민 화가 할머니다.
 모지스 할머니는 10명의 자녀를 낳았는데 5명을 병으로 잃고
자녀와 손자, 손녀를 다 키우고 나니 76세가 되었다.
 자수를 잘 했는데 관절염으로 하기가 힘들어지자 그림을 배우기 시작했다.
 그 나이에 문화센터에 나가서 처음으로 그림을 배운 것이다.
 그때부터 그림 공부를 해서 101살에 세상을 떠날 때까지 계속 그림을 그렸다.
그림을 그렸기 때문에 더 오래 살아야 할 이유가 있어서 장수하였을 것이다.
 모지스 할머니는 개인 전시회도 20회 이상 했다고 한다.
 나이가 어쩌고 하면서 글쓰기를 못하겠다는 사람은 모지스 할머니가 보면

뭔가 모자라는 사람이라고 야단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