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집

[스크랩] 비밀 통로 301회

凡草 2010. 3. 7. 18:07

 

 

 비밀 통로


<2010년 3월 7일 일요일 흐림>


 올 봄에는 비가 자주 내린다.

 나는 비를 좋아하기 때문에 싫지는 않지만 비가 자주 내리면

일하는 데 지장이 있는 사람도 있을 것 같다.

 어제는 오전에 혼자 등산을 다녀왔다.

 양산 춘추공원에서 오봉산으로 넘어 왔는데 4시간이 안 걸렸다.

 오후에 시간이 남아서 수내로 들어갔다.

 2주 동안 가보지 못해서 뭐가 좀 올라왔나 궁금했다.

 

 

 

 범어 부동산 앞에서 16번 버스를 타고 갔다.

 입구를 지키는 옆집 장군이와 공주가 처음에는 짖더니

나를 알아보고 아는 척을 했다.

 먹을 것을 무엇이든 들고 갔어야 하는데 미처 못 갖고

가서 미안했다.

 그런데도 개들은 한 번 사귀었다고 짖지 않았다.

 사람들은 남의 집에 갈 때 빈손으로 가면 뒤꼭지가 당기지만

개들은 아무렇지 않게 맞아준다. 어설픈 사람보다 개가 나을지도

모르겠다.

 


 수내 밭에는 이것저것 많이 올라오고 있었다.

 그전에 심은 사철쑥도 자리를 잘 잡았고,

 

 

 초봄에 제일 먼저 올라온 것은 역시 산마늘과 곤달비였다.

 우리 집 화단에 심고 남은 것을 수내에 갖다 심었는데

제일 먼저 싹이 올라왔다.

 

 

 

신선초도 빨리 올라오는 편인데 아직

보이지 않았다. 굴러 들어온 돌이 박힌 돌 빼낸다더니 늦게

들어온 산마늘과 곤달비가 주인 행세를 하고 있다.

 꾸지뽕나무와 풍년화, 예덕나무 등은 아직 겨울잠을 자고 있다.

저들이 늦잠을 잔다고 해서 게으르다고 단정 지을 수는 없을

것이다. 늦게 일어나도 얼마든지 제 할 일을 하니까.

 빨리 나오고 빨리 자라는 것만 최고라고 여기는 것은

사람들의 관점이다.

 천천히 느릿느릿 움직여도 제 할 일만 하면 나무랄 수 없다.

 

 오늘도 화살나무 한 그루와 몇 가지 씨앗을 갖고 갔지만

밭 모양이 어떻게 변할지 몰라서 아무 데나 심을 수가 없었다.

 

 

 

 화살나무만 대충 심어 놓고  나머지 싹은 동주에게 전해주었다.

 “야, 우리 밭에는 아직 뿌릴 수가 없어서 너한테 줄 테니

 어디든 뿌려라.”

 “형님, 여기서 싹을 틔운 다음에 언제든지 파가세요.”

 “아, 그럼 여기가 전진 기지네.”

 든든한 백그라운드가 있어서 믿음직했다.

 

 

 오늘 오후에는 아내와 자전거를 타고 집 주변을 한 바퀴 돌았다.

 신도시라 자전거 도로가 잘 되어 있어서 마음 놓고 탔다.

 부산대 병원 근처를 빙 돌았다.

 도로가 끝나는 곳까지 멀리 갔다가 돌아왔다.

 시간이 날 때마다 자전거를 타면서 운동을 해야겠다.

 


 미니 화단과 옥상에 있는 화분에 뿌리려고 마트에 가서

상토를 세 포 사왔다.

 

 

 옥상에 있는 화단은 나만의 비밀 통로를 통해 들어갈 수 있다.

 우리 가족들도 모르는 나만의 작은 화원이다.

 다락방 입구에서 수직 계단을 타고 올라가야 하기 때문에

접근이 쉽지 않다. 나는 무엇인가 키우겠다는 마음 때문에

운동하듯이 즐겁게 올라간다.

 누가 억지로 시키면 이런 일을 할 수 있을까?

 나는 내가 좋아서 이런 엉뚱한 일을 하고 있다.

 아마 가족들이 알면 돈키호테라고 놀릴지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손바닥만한 땅이라도 그냥 놀리는 게 아깝다.

 

 

 

 

 

 수직 계단을 올라 물탱크가 있는 공간을 지나면 밖으로 나가는

문이 있다. 그 문을 열면 옥상 화단이 나온다.

 흙을 갖고 올라가기가 쉽지 않아 아직 화분은 하나 밖에 없다.

네모난 스티로폼 통을 화분 대신 갖다 놓았다. 흙을 갖고 올라갈

때 무척 힘이 들었지만 다음에 돋아날 파란 싹을 상상하며

참아내었다.

 

 

 

 옥상의 빈 땅은 접근하기는 쉽지 않지만 가장 안전한 곳이다.

누가 훔쳐갈 수도 없고 건물에 가려 그늘이 지지도 않는다.

물 공급이 어렵지만 물이 잘 빠지지 않게 하면 한련초와 번행초는

키울 수 있을 것 같다.

 그래서 한련초와 번행초를 뿌려 두었다. 그 싹을 몇 잎 못 먹을지

모르지만 조금이라도 자란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우리 집에서 가장 높은 지붕 위에 파란 싹이 자란다는 상상만으로도

행복하다. 나는 싹을 머리에 이고 잠들 수 있으니까.

 

 

 회색빛 도시에서 이런 작은 공간이라도 있다는 것이 신기하다.

 내가 부탁하지 않았는데도 건축가는 어떻게 이런 공간을 만들었을까?

 갑갑한 아파트 풍의 주택에 이런 공간은 나의 숨통이다.

 파란 싹들은 내 꿈속에도 날개를 퍼덕이며 날아올지 모른다.

옥상 위에 깃드는 비둘기처럼. (*)




출처 : 글나라
글쓴이 : 凡 草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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