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창녕 하내 마을 방문 === 306회
창녕 길곡면 하내 마을 방문 < 2010년 4월 3일 토요일 맑음 > 올 봄에는 비가 자주 내렸다. 하루가 멀다 하고 내리니 봄인지 장마철인지 구별이 안 된다. 어제, 오늘은 아주 화창해서 진짜 봄날 같다. 오늘은 참샘회 회원들과 창녕으로 놀러가는 날이다. 수더분하고 착한 참샘회 회원들이라 그런지 날씨도 도와주는 것 같다. 참샘회 회원들은 1995년 무렵 글나라에 다닌 사람들 가운데 마음이 맞는 사람들이 조직한 모임이다. 소현당 황미향, 배동 강 숙, 지해 최영향, 이명순, 김수미, 류명순, 구문희- 이렇게 모두 일곱 사람이 회원이다. 그 동안 나를 모임에 몇 번 불러주었는데 오늘도 배동이 시골로 이사 간 뒤에 처음 방문한다며 같이 가자고 했다. 나는 누가 부른다고 막 가는 성격이 아니다. 어떤 모임에는 나가봐도 마음이 편하지 않아서 공연히 나갔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참샘회 회원들은 나를 너무 어렵게 대해주지도 않고 그렇다고 아무렇게나 대해주는 것도 아니어서 마음이 편안했다. 그래서 일 년에 한 번 정도 불러주면 특별한 일이 아니면 참석했다. 이번에는 배동이 이사 간 시골이 어떤 곳이며 어떤 집에서 사는지 궁금했는데 마침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봄나물도 캘 겸 아내와 같이 갔다.
덕천 로타리에서 봉고차를 얻어 타고 창녕 길곡면 하내 마을로 갔다. 소현당이 그전 10주년 축하모임에서 찍은 사진을 건네주었다. 사진이 아주 잘 나왔다.
1시간 15분쯤 걸려 하내 마을에 도착했다. 시골 마을치고는 그리 오지가 아니었지만 비교적 조용한 마을이었다. 마을 뒤에는 작은 저수지도 있고 과수원도 많이 보였다. 우선 집안 구경을 하였다. 대지 184평에 건평이 50평이어서 방이 많고 넓었다. 주차장까지 만들어져 있어서 쓰기에 편리해보였다.
배동의 신랑은 취미가 섹소폰 연주여서 커피를 마시며 연주를 들었다. 1년 정도 배웠다고 하는데 상당한 실력이었다. 연주 곡목이 주로 7080 가요라 호응이 높았다. 누가 비오는 날 연주를 들으면 참 좋겠다고 하였다. 오늘 같은 맑은 날 들어도 좋았다. 한적한 시골에 들어오면 심심할 텐데 신랑은 섹소폰을 연주하고 배동은 동화를 쓰면 심심하지는 않겠다.
섹소폰 연주를 듣고 나서 배동이 정성껏 준비한 점심을 먹었다. 집들이를 하러 간 게 아니라 집털이를 하러 갔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음식 준비를 잘 해서 맛있게 먹었다. 그냥 간소하게 만들었으면 덜 미안했을 텐데 좀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밥을 먹고 벌을 잡으러 밖으로 나갔다. 부산에는 벌이 귀한데 여기는 벌이 흔해서 좋았다. 유채꽃에서 세 마리 잡았고, 큰개불알풀이 핀 군락지에서 10마리 넘게 잡았다. 갖고 간 핀셋으로 벌을 잡아 족삼리, 합곡혈, 신문혈, 백회혈, 삼음교 등..... 10여 방을 맞았다.
벌침을 맞고 나서 나물을 뜯었다. 오늘 뜯은 나물은- 엉겅퀴, 냉이, 쑥, 씀바귀, 민들레, 고들빼기, 찔레꽃 어린순 등이었다. 나물을 캐다가 보니 밭둑 옆에 구기자가 많이 번식해 있었다. 하도 불어나서 천덕꾸러기로 버려져 있었다. 구기자는 예로부터 장수 식품으로 알려져 있다. 줄기와 열매는 끓여서 차로 마실 수 있고, 어린잎은 나물로도 먹을 수 있다. 나는 수내 범초산장에 갖다 심으려고 두 뿌리를 캤다. 뿌리가 땅속 깊이 박혀 있어서 곡괭이로 뿌리를 겨우 끊었다. 뽕나무 잎을 뜯으려고 보니 아직 잎이 나오지 않아서 뜯을 수가 없었다. 내가 나물을 뜯는 사이에 아내와 다른 사람들은 쑥을 뜯었다.
이윽고 집으로 돌아갈 때가 되었다. 배동은 쑥떡도 나누어 주고 직접 기른 무도 나누어 주었다. 마치 친정집에 갔다가 돌아오는 기분이었다. 고마운 대접도 받고 나물도 많이 뜯고 행복한 나들이였다. 집으로 돌아와 오늘은 내가 직접 나물을 무쳤다. 아내가 무친 것보다는 맛이 덜했지만, 첫 작품이라 이만하면 괜찮다고 생각했다.
집에 돌아와 보니 뜻밖에도 '시와 동화'에서 보낸 쌀 20킬로그램이 도착해 있었다. 내가 '시와 동화'에 '그 놈이 우예 달라지노?'라는 동화를 발표했는데 원고료 대신 쌀을 보내준 것이었다.
나는 돈보다도 쌀이 더 고마웠다. 이건 완전히 글밥이었다. 내가 쓴 글이 밥으로 돌아오다니.... 작가로서의 책임이 느껴지는 선물이었다. 나는 고마운 마음으로 받았다. 귀한 쌀밥, 글밥을 먹으며 괜찮은 동화를 써야겠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