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고소 공포증 +++ 310회
고소공포증 <2010년 4월 25일 일요일 맑음> 요즘에는 차로 끓여 마실 것이 많아서 출근길이 즐겁다. 우리 집에서 남양산 지하철역까지는 10분 정도 걸리는데 걸어가면서 이것저것 뜯을 게 많다. 남양산 지하철역 주변에는 아직 빈 택지가 많아서 야생초가 지천으로 널려 있다. 내가 주로 뜯는 것은 사철쑥, 쑥, 사데풀, 조뱅이, 뽀리뱅이 등이다. 비닐 봉지에 차 끓여 마실 것을 뜯어서 사무실에 가면 물을 붓고 끓여서 차로 마신다. 내가 만든 봄향기 차다. 봄내음이 물씬 풍겨난다.
사철쑥
조뱅이
어제는 아내와 원동 천태산으로 등산을 갔다. 차를 천태사 앞에 주차시켜 놓고 계곡을 올라갔다. 천태산 등산 코스는 계곡도 있고 호수도 있어서 아름다운 산이지만 한 가지 흠은 바위 절벽이 있어서 아슬아슬한 구간이 있다.
나는 고소공포증이 있어서 이런 구간을 제일 싫어한다. 평탄한 산길이라면 몇 시간이든 걸어갈 자신이 있는데 이런 가슴 떨리는 구간은 5분도 버티기가 힘든다. 드디어 바위 구간이 나타났다. 밑을 내려다보니 천길 낭떠러지다. 아차 했다간 바로 떨어져 즉사다. 불안감이 들어서 도저히 넘어갈 수가 없었다. 제법 올라왔기 때문에 돌아가기도 힘들고 이 길 말고는 다른 길이 없으니 어쩔 수가 없었다.
이런 순간에 아내는 나보다 용감하다. 앞장 서서 먼저 절벽을 타고 넘어간다. 남자답지 않게 부끄러운 순간이다. 한참을 망설이다가 떨리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절벽 구간에 도전했다. 직접 부딪쳐 보면 사실 별게 아니다. 그 구간을 지나고 나니 평탄한 길이 이어졌다. 사람 사는 인생 길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가슴 떨리는 시기도 있고, 불안과 스트레스가 쌓이는 순간도 있으리라. 하지만 지나고 보면 아무 것도 아닌데.
동화 쓰는 것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계속 낙방할 때는 도저히 안 될 것 같지만 나중에 등단하고 보면 별게 아니다. 힘든 시기가 있더라도 마음 가라앉히고 잘 버티면 좋은 시절이 올 것이다. 지금 우리 집 형편도 바위 구간을 넘어가는 격인데 불안하더라도 불안을 증폭시키지 말고 앞만 보고 살아가야 할 것이다.
하산한 다음에는 모람 집으로 차를 몰았다. 목요일 저녁에 모람이 글나라에 와서 토요일에 잔대를 캐러 간다는 말을 한 적이 있었다. 오늘 천태산을 내려오면서 보니 잔대는 거의 보이지 않았다. 전화를 했더니 모람이 잔대를 주겠다며 오라고 했다. 모람 집에 갔더니 제법 캐왔다. 나도 몇 뿌리를 얻었다.
꽃이 핀 화단도 둘러보았다. 처음 집을 지었을 때보다는 화단이 잘 짜여졌고 나무도 많이 커서 보기 좋았다. 차를 잘 마신데다 두릅과 머위까지 선물로 받고 돌아왔다. 이렇게 넙죽 넙죽 받아도 되는 걸까? 마음 넓은 모람에게 감사한다.
우리 집 미니 화단 옆에 플라스틱 화분을 두 개 놓아두었는데 세상에 그걸 누가 훔쳐갔다. 제법 길어서 들고 가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감쪽같이 사라져 버렸다.
사라지기 전의 화분
소방차님한테 받은 초석잠을 심어둔 화분인데 도둑 맞아서 무척 아쉬웠다. 초석잠이 열 뿌리도 넘게 들어 있었는데. 도대체 누가 가져갔을까? 그러나 초석잠을 완전히 다 도둑맞은 것은 아니다. 도마뱀이 잡히면 꼬리를 끊어주고 살듯이 나도 초석잠을 미리 분산시켜 놓았다. 혹시나 싶어서 미니 화단에 두 세 뿌리 나누어 심었고, 3층 베란다 화분에도 두 뿌리를 심어 놓았다. 이것만 있으면 초석잠을 다시 번식시킬 수 있을 것이다. 로즈마리 꽃 ( 모람집 화단에서...)
우리가 살아가다 보면 힘들고 어려운 일을 만날 때가 있다. 전부를 걸었다가 뜻대로 안 되면 죽음을 생각할 만큼 절망에 빠지는 순간도 있고 자신의 힘에 벅찬 일을 만나 허덕일 때도 있다. 그럴 때를 대비해서 도마뱀의 꼬리를 준비해 두어야 한다. 미리 준비해두었다면 다행이지만 만약에 전혀 준비해두지 않았더라도 급히 만들면 된다. 없는 것도 억지로 짜내면 생긴다. 다 쓴 치약튜브라도 억지로 짜내면 한 번은 쓸 치약이 나오는 법이다.
백리향
나에게 동화를 배운 제자들이 공모전에 응모하는 경우가 많은데 자신은 온갖 애를 써서 좋은 작품을 보내지만 뜻대로 척척 붙지 않는다. 하지만 정성들여 쓴 작품이 떨어진다고 해도 전부를 잃은 것은 아니다. 내 몸 속 어딘가에는 남은 치약이 있을 거고, 잘 찾아보면 도마뱀 꼬리도 달려 있다. 아무리 큰일을 당해도 작은 꼬리 하나쯤 떼어 주었다고 생각하면 된다. 아직 큰 몸통은 남아 있으니 다시 힘을 내자. 설령 큰 몸통을 잃었다고 하더라도 남은 꼬리가 다시 자라면 큰 몸통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