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사은의 밤을 보내고... 315회
사은의 밤을 보내고.... < 2010년, 5월 14일, 금요일, 맑음> 초등학교 다닐 때부터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공부는 그런 대로 좀 잘한 편인데 내가 가장 부족한 것이 지도력이었다. 나 혼자 하는 일은 잘 해도 남 앞에 나서면 얼굴이 벌게지고 가슴이 떨렸다. 엄한 아버지 밑에서 큰데다 천성이 소심해서 발표력은 영점이었고 수업 시간에도 잘 드러나지 않는 학생이었다. 그러다 보니 남 앞에 나를 드러내는 일에는 영 자신이 없었고 남을 이끌거나 지도하는 일은 나와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했다.
수내 동주원의 모란
그러다가 장래 희망과는 다르게 초등학교 교사가 되었고 아이들을 지도해야 하는 위치에 서고 보니 애를 많이 먹었다. 교실에서 혼자 지도하는 것은 그럭저럭 하겠는데 연구수업이나 학부모 초대 수업은 언제나 힘이 들었다. 학생들을 지도하는 것도 해마다 어렵긴 마찬가지였다. 다른 선생님들이 학생들을 일사분란하게 지도하는 것을 보면 몹시 부럽기만 했다. 내 반 아이들은 대체로 질서가 없었고, 나를 도무지 무서워하지 않아 공연히 매를 드는 일이 많았다. 나도 힘들고 아이들도 힘들었던 것은 내가 지도력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수내 범초산장에 신선초가 잘 자랐다
풍년화 지도력이 없다보니 교감이나 교장을 하기에는 아무래도 무리라고 생각한 끝에, 사표를 내고 학교를 나와서 글나라를 만들었는데 동화창작 교실을 열어 제자를 한 사람 두 사람 배출하다 보니 나도 모르는 사이에 어른들의 선생님이 되어 있었다. 1994년 3월부터 지금까지 17년째 동화창작 교실을 운영하다보니 제자들 사이에서 스승의 날을 맞이하여 축하도 하고 선후배가 한 자리에서 만나면 좋겠다는 말이 자연스럽게 흘러나왔다. 그런 말이 씨가 되어 올해 5월 13일 저녁에 드디어 사은의 밤을 가졌다. 나로서는 기쁘다기보다는 올챙이가 개구리가 된 기분이었다.
상추도 어느새 이렇게 자랐고... 상추쌈 하러 올 사람을 기다리며...
가난한 흥부가 먹을 것도 없는데 자식만 많이 낳은 격으로 나 역시 제자만 많이 길렀을 뿐, 존경받는 스승이 되려면 아직 멀었는데 거창한 대접을 받고 보니 촌닭이 도시 한복판에 놓여진 것 같아 쑥스럽고 어색하기만 했다. 내가 과연 남을 바르게 이끌었을까? 내가 더 나은 스승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축하를 받는 자리에서 마음속으로 여러 가지 질문을 떠올려본 날이었다.
금창초
딱총나무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이 있다. 지도력이 전혀 없던 내가 제자들을 가르쳐오면서 약간의 카리스마도 생기고, 사람을 다루는 기술(?)도 조금은 늘은 것 같은데 솔직히 말하면 아직도 많은 사람을 이끌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여러 사람 앞에 나서서 감히 지도한다기보다는 그저 소박하게 내가 아는 것을 일러주면서 조용히 살아가고 싶은 마음이다. 꽤 오랜 세월을 동화를 가르치면서 살아 오긴 했지만 내가 동화 창작 분야에서 대단한 노하우를 가진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평범한 선생이지만 부족한 것은 노력으로 만회하고, 여러 사람을 지도해본 경험을 토대로 제자들이 시행착오를 겪지 않도록 조금이라도 더 나은 방향을 제시해주고 있을 뿐이다.
아직도 철부지라고 생각하는데 그래도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살아가는 보람을 느낀다. 나에게 ‘스승’이라는 말은 너무 거창해서 마치 남의 옷을 입고 있는 느낌이다. 그냥 먼저 살아온 인생 선배로서 후배들을 안내하는 동화 가이드 역할을 하면서 살아가려고 한다. 분에 넘치게 많은 축하를 보내준 여러 제자들에게 감사한 인사를 전하며,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앞으로도 성실히 살아갈 것을 다짐한다. (*) 어버이날을 맞아 모처럼 가족과 태종대 나들이를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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