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집

[스크랩] 잘 자라는 배추 () () 342회

凡草 2010. 10. 2. 22:41

 

 

<342회>


 잘 자라는 배추


< 2010년, 10월 2일, 토요일, 맑은 뒤 저녁에 비 >


 어제 저녁에 범초산장에 갔더니 하우스 안이 확 달라져

있었다.

 아내가 기다리던 싱크대와 찬장이 들어와 있었다.

 그동안 싱크대가 없어서 요리를 하기도 어렵고 찬장이 없어서

그릇을 넣어두기도 어려웠는데 이제 모두 해결이 되었다.

 나는 살림을 안 해 봐서 찬장이 얼마나 소중한지 잘 몰랐는데

범초산장에 찬장이 없어보니 여간 불편하지 않았다.

 밥그릇과 냄비를 놓아둘 데가 없어서 박스 안에 쌓아두고 있으니

피난민 같았다.

 아내는 찬장이 없어서 놓아둘 데가 없다며 간장과 참기름 등을

갖다 놓지 않아서 요리를 해먹을 수 없었다.

 새 싱크대를 사면 비싸기 때문에 중고를 구하려고 기다리다가

이번에 들여온 것이었다.

 내가 없을 때 동주 혼자서 짐차를 불러다가 싱크대와 찬장을

들여놓은 모양이다. 우렁각시처럼.

 싱크대와 찬장뿐만이 아니었다. 식탁도 있고 이불 넣어두는

상과 수채화 그림 몇 점도 있었다.

 어느 교장 선생님이 이사 가면서 다 주고 간 것이란다.

 

 

 도깨비 방망이를 두드려 만들어 낸 것처럼 신기해서 아내와

나는 잠시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

 나는 정말 고마워서 동주에게 우선 문자로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오늘 만났을 때 구해온 값을 치렀다.

 아내는 가구가 다 들어오자 이젠 여기서 살아도 되겠다고 했다.

아직 화장실이 없지만 그거야 자연 상태로 보면 될 것이고

틈만 나면 나 혼자라도 자주 와서 자고 싶다.

 아침에 일어나면 산사의 맑은 공기가 느껴지고 탁 트인 저수지가

나를 반겨주는 범초산장! 내 벗들은 야생초다.

 어제 밤에도 귀뚜라미와 온갖 벌레들이 나를 위해 노래를 연주했다.


 오늘 아침에는 뽕나무와 까마중, 삼백초 잎 세 가지를 넣어서 약초밥을

해 먹었다. 집에서는 이런 걸 해먹으려고 해도 아이들이 쌀밥을

안 했다고 불평을 하기 때문에 내 마음대로 할 수가 없다.

 그러니 약초밥을 해먹고 자연과 벗하려면 범초산장으로 와야 한다.

 나는 약초밥을 해먹다가 식당에 가서 쌀밥을 먹으면 어쩐지

손해 보는 기분이다.

 아침을 먹고 배추밭에 물을 주었다. 펌프로 계곡에서 물을 퍼올리니

물주기도 아주 쉽다. 여긴 극심한 가뭄만 아니면 물 걱정 할 필요가

없다. 계곡과 저수지가 양 옆에 있으니 언제나 용 두 마리를 데리고 사는

것 같다.

 배추는 생각보다 잘 큰다. 낮에 동주가 와서 보더니

“형님, 살며시 약이 오르네요. 동주원보다 여기 배추가 더 잘 커요.”

하고 웃었다.

 

 

 내가 여태 지은 배추농사 중에서 이번에는 출발이 좋은 편이다.

이 밭을 만드느라 그 더운 여름에 비지땀을 흘렸고, 고약한 냄새를

참아가며 삽으로 메추라기 똥을 밭에 집어넣었는데 이제 슬슬

효과를 보는 모양이다.

 배추들아, 제발 얼치기 농부라고 비웃지 말고 잘 커다오.

 올해는 기상 이변으로 배추가 금값이라는데 저 배추들이 잘 크면

우리집 김장은 해결될 듯 싶다.

 배추농사의 성패는 결국 거름이 문제다.

 여태는 거름을 잘 넣어주지 않고 배추만 꽂아 두었으니 잘 될 리가

없다. 이번에는 거름을 충분히 넣어놓고 배추 모종을 심은 덕분에

그 효과를 보고 있다.

 나는 배추가 대견스러워서 배추벌레도 잡아주고 달팽이도 잡았다.

 

 

 지난 번에 나 혼자 왔을 때 돌을 쌓아 소각장을 만들었다.

 태울 것이 많이 있는데 아무 데서나 태우면 불날 염려가 있기 때문에

많은 돌도 처리할 겸 돌탑을 쌓았다.

 오늘 처음으로 나뭇가지를 태워보았다. 불이 돌탑 안에서 잘 탔다.

앞으로 시멘트를 발라 항아리 모양을 만들어 불이 위로 빠져 나가지 못하게

더 보완할 생각이다.

 워낙 손재주가 없어서 예전에는 이런 것을 엄두도 못 내었는데

범초산장에서 일을 자꾸 하다 보니 솜씨가 조금 늘었나 보다.


 이땅바다와 만든 밭을 돌아보니 무는 싹을 내밀었는데 상추는 아직

안 올라왔다. 상추는 발아가 잘 안 되나 보다.

 

 

 

 유홍초

 

 

 동주 제자가 사온 국화

 

 

 배롱나무 속에 숨어 있는 물고기

 

 

 점심 시간에는 동주원에 올라가서 동주와 점심을 같이 먹었다.

동주 누나와 사돈이 와서 닭백숙을 만들어 주어서 덕분에 나도

잘 먹었다.

 점심을 먹고 쉬다가 동주와 바둑을 두었다. 어제 저녁에는 내가

한 판 졌는데 내가 농담으로 이렇게 말했다.

“야, 찬장 싣고 오느라 수고했는데 내가 이길 수가 있나? 인심

한 번 썼다.”

 “아이고 형님, 실력으로 져놓고 어디 갖다 붙일 데가 없어서

찬장에다 붙입니까?”

 그렇게 웃었는데 오늘은 두 판 다 내가 이겼다.

 서로 엎치락 뒤치락 지고 이겨서 재미가 있다.

 

 동주원의 꽃무릇

 

 

 바둑을 마치고 동주원에서 남천과 팔손이를 싣고 내려와서 심었다.

 나무를 심고 나서 하우스 마당에 깔려 있는 돌을 주웠다.

여름에 예초기를 돌리려면 방해가 되니까 지금부터 미리 미리

돌을 주워야 한다.

 셋이 달라들어 열심히 일했더니 마당이 훤해졌다.

 아내가 열심히 도와주어서 동주한테 칭찬을 많이 받았다.

 “형님 혼자 오면 재미가 없는데 형수가 와서 도와주니 일하는

 재미가 있네요. 형님보다 형수가 일을 훨씬 더 능률적으로 합니다.”

 동주가 칭찬을 하니 아내는 피곤한 줄도 모르고 계속 달라붙어 일한다.

 그만 하자고 해도 마무리를 해야 한다며 일손을 놓지 않는다.


 겨울초 싹이 올라왔다


 여름에 폭우를 무릅쓰고 심은 비파나무가 제법 자랐다

 

 

 무는 언제 이렇게 잘 자랐지? 여보, 무 솎아서 김치 담아 먹자!

 

 

 그러는 사이에 벌써 날이 저물었다.

 저녁도 동주원에 가서 먹었다.

 비가 한 두 방울씩 떨어지기 시작했다.

 나무도 심고 일을 다 마쳐놓고 나니까 비가 와서 기분이 좋았다.

배추에게 하늘에서 물을 주는 고마운 비다. (*)



 

출처 : 글나라
글쓴이 : 凡 草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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