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행복했던 경주 세미나 ( 344회 )
<344회> 행복했던 경주 세미나 < 2010년, 10월 10일, 일요일, 맑음 > 구순 윤자명씨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소반 허명남, 남촌 김춘남, 세울 이영득과 함께 경주로 갔다. 막 차에 올라 경주로 출발했을 때 문득 그 언젠가 목포에 세미나 가던 일이 떠올랐다. 그 해에는 부산에서 광주까지 경전선 기차를 타고 갔는데 지금처럼 가을이라 황금빛 들녘이 차창 밖으로 펼쳐졌다. 최영희씨는 누가 부탁을 하지도 않았는데 스스로 떡과 귤, 땅콩, 오징어 같은 안주거리를 푸짐하게 가져와서 한 사람한테 한 꾸러미씩 안겨주었다. 우리는 그 떡으로 요기를 했고 맥주를 사서 안주를 먹어가며 소풍가는 아이들처럼 즐거운 마음으로 여행을 했다. 목포에서 세발낙지도 먹고 유달산에도 오르는 등 추억이 많은 세미나를 마친 뒤에는 오는 길에 때마침 그 지역에서 팔고 있는 무화과를 사 먹었다. 한 가지 아쉬운 일은 무화과를 몇 개만 먹고는 큰 봉지를 깜빡 잊고 시외버스에 두고 내린 것이었다. 내가 지나간 그 이야기를 하였더니 세울이 얼른 가방에서 무화과를 꺼냈다. “선생님, 그 잃어버린 무화과가 여기 있네요.” 타이밍이 어찌나 잘 들어맞았는지 모두 소리내어 웃었다. 잘 익은 무화과를 맛있게 먹고 있자니 늘 남에게 잘 베풀던 최영희 선생님이 생각났다. 우리들에게 참 잘 해주던 따뜻한 분이었는데 지금은 아파서 세미나에도 같이 못 가다니……. 나는 그 일을 생각하며 제자들에게 말했다. “여러분, 건강할 때 세미나에도 빠지지 말고 해마다 갑시다. 아프면 가고 싶어도 못 갑니다.” 올해는 정다운 문우들이 얼마나 많이 올까? 기대를 안고 경주로 달려갔다.
보문 단지 옆에 있는 교육문화 관광호텔에 도착하니 우리가 일찍 도착한 편이었다. 조금 있으니 부산 문우들이 속속 도착했다. 이번에는 부산에서 30여 명이나 가서 참여 열기가 높았다. 세미나가 시작되기를 기다리고 있자니 은근히 부담이 되었다. 며칠 전에 이상배 회장님이 메일을 보내와서 서울의 손연자 부회장님이 집안 사정으로 못 오시니까 김열규 선생님의 강의가 끝난 뒤에 질의 응답 사회를 맡아 달라고 부탁했다. 거절을 하려다가 회장님이 오죽하면 나한테 시킬까 싶었고, 다른 일도 많으실 텐데 도와드리는 것도 예의겠다 싶어서 승낙을 했는데, 승낙을 하고 보니 세미나가 마냥 기대가 되는 것만은 아니고 한 편으로는 어떤 말을 해야 하나 솔직히 걱정이 되었다.l 그래서 준비해온 자료를 보며 사회 볼 준비를 하고 있는데 이상배 회장님이 나를 살며시 불렀다. “김재원 선생님, 미안하지만 김열규 선생님이 사모님이 위독해서 못 오게 되었으니 사회는 안 보셔도 되겠습니다. 다음에 일을 맡겨드릴게요.” 나는 그 말을 듣는 순간 걱정거리가 순식간에 다 사라져 버렸다. “아닙니다. 잘 되었습니다. 다음에 아무 것도 안 맡기셔도 됩니다.” 나는 성격상 남 앞에 나서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이제 평회원으로 홀가분하게 세미나를 즐길 수 되어 기뻤다. 나는 이 일을 겪고 어떤 어려운 일이 일어나기도 전에 미리 걱정을 앞당겨서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 일이 닥치면 그때 가서 슬기롭게 대처하면 되는 것이지 어떤 일이 일어날지도 모르는데 미리 지레 짐작으로 걱정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세미나 식장 입구에서 등록을 하자, 정호승 동시집 ‘참새’ (처음 주니어 발행)와 박 일 동시집 ‘내 일기장 속에는’ (섬아이 발행)을 선물로 주었다. 귀한 저서를 두 권이나 받아서 기뻤다. 이 동시집을 지은 저자들의 수고에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드디어 세미나가 시작되었다. 일 년에 한 번뿐인 가장 큰 축제다. 혼자 집에서 글을 쓰다가 전국에 흩어져 있는 문우들을 한 자리에서 만나는 귀한 시간이다. 진정한 작가는 이 성대한 축제를 즐길 줄 알아야 한다. 자발적인 참여, 적극적인 참여를 해야 회원으로서의 권리를 누릴 수 있다. 뒷자리에 있다 일찍 가는 소극적인 참여나 아무 말도 안 하고 꾸어다 놓은 보리자루처럼 자리만 차지하고 있다가 돌아가는 회원들은 세미나의 진정한 의미를 모른다고 봐야 한다. 나도 예전에는 그랬다.
이상배 회장님의 인사말과 손기원 부회장의 환영사에 이어 유명한 시인인 정호승씨가 등장했다. 정호승씨는 자신이 지은 시를 체험한 경험을 예로 들며 아주 쉽게 이야기해주었다. ‘나팔꽃’, ‘소년 부처’, ‘내가 사랑하는 사람’, ‘이별 노래’, ‘ 풍경달다’ 와 같은 시를 직접 낭송하며 노래와 함께 들려주어서 좋았다.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좋은 강의였다. 다만 어떤 회원은 정호승 시인의 강의를 다른 곳에서 이미 들었는데 거의 똑같다며 지루하다고 했다. 정호승 시인은 다른 내용을 몇 개 준비했다가 돌아가며 했으면 더 좋겠다.
<풍경 달다> 정호승 운주사 와불 스님을 뵙고 돌아오는 길에 그 때 가슴의 처마 끝에 풍경을 달고 돌아왔다. 먼 데서 바람 불어 와 풍경 소리 들리면 보고 싶은 내 마음이 찾아간 줄 알아라 강의가 끝나자 노원호 선생님의 사회로 질의 응답이 이어졌고 그게 마치자 저녁 식사가 시작되었다.
저녁은 뷔페식사. 정다운 문우들과 둘러앉아 오순도순 식사를 하였다. 늘 보던 반가운 얼굴들이 더러 안 보이기는 했지만 여전히 변함없이 찾아온 문우들이 믿음직스러웠고, 특히 먼 해남에서 다른 모임을 미루고 찾아온 윤삼현 선생님의 성의가 고마웠다. 해가 갈수록 젊은 작가들이 늘어나고 있지만 그래도 오래전부터 참여해온 회원들이 있어서 정답고 세미나에 갈 재미를 느낀다. 내가 바쁜 일을 제쳐놓고 가듯이 다른 문우들도 세미나에 꼭 와주면 좋겠다. 김향이 선생님은 조금 늦게 도착했다. 그런데 어머니를 모시고 와서 세미나가 마친 뒤에도 따로 경주를 둘러볼 것이라고 말했다. 나는 김향이 선생님이 반듯한 분인 줄은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효녀인 줄은 미처 몰랐다. 여태 우리 회원 세미나에 어머니를 모시고 온 회원은 김향이 선생님뿐이었는데 정말 부럽고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저녁 식사가 끝나자 이영 선생님의 사회로 자기 소개 시간을 가졌다. 아주 유머스럽게 소개하는 회원들이 많아서 배꼽이 빠질 뻔 했다. 그 소개를 다 듣고 난 이상배 회장님이 최고상과 우수상 5명을 뽑았는데 박지현, 황미숙, 이영득, 정영애...., 회원 등이 뽑혔다. 그 다음에는 박상재 선생님의 사회로 노래 부르기가 펼쳐졌다. 어쩌면 이렇게 노래들을 가수처럼 잘 부를까? 나이가 꽤 드신 박근칠, 곽종분 선생님도 노래를 잘 불렀고, 아침햇살 주간인 이윤희씨는 춤과 노래가 폭발적이어서 큰 박수를 받았다. 강현호 선생님은 정호승 시인의 시에 곡을 붙인 ‘이별 노래’를 불러서 인기를 끌었다.
노래가 어느 정도 끝나자 방에 짐을 갖다 놓고 2층 생맥주 집에 모여 뒷풀이를 시작했다. 나는 젊었을 때 이런 뒷풀이를 할 때면 혼자 슬그머니 방으로 가서 먼저 자곤 했는데 이제는 이 뒷풀이를 즐길 줄 알게 되어서 이런 기회에 문우들을 자연스럽게 사귄다. 신입 회원이나 다른 회원들을 누구는 공식적으로 연락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어디서 이런 걸 하는지 몰랐다고 하는데, 다음에는 미리 배익천 부회장이나 김춘남 간사 전화번호를 입력해두었다가 전화를 걸어서 물어보면 위치를 알려줄 것이다. 그런 성의가 없는 분이라면 반쪽 세미나만 맛보고 갈 뿐이다. 밤 12시가 넘도록 술을 마시다가 숙소로 돌아왔는데 일부 회원들은 흥이 덜 차서 다시 노래방으로 가서 새벽까지 놀았다는 이야기를 다음날 아침에 들었다.
내 방에는 대구에서 박방희씨와 같이 온 김경흠씨가 있었는데 시각장애인이었다. 어떻게 올 수 있었냐고 물었더니 비회원인 아내가 동행을 했단다. 진작 알았더라면 어제밤부터 아내를 우리 방에 와서 같이 자게 했을 텐데 미처 몰랐다. 눈이 안 보여 불편한 몸으로도 참여한 그 열정이 놀라웠다. 저런 열정을 건강한 회원들이 반만 닮아도 세미나장이 넘쳐나지 않았을까?
오늘 아침 식사를 하고 나오자 영양으로 귀농한 이지현씨가 직접 재배한 사과를 들고 와서 나누어 주었다. 나는 사과를 좋아하기 때문에 그 어떤 선물보다 반가웠다. 사과를 먹고 다음에 이지현씨한테 사과를 주문하려고 전화 전화를 적어두었다. ( 010-4250-9973 ) 귀농한지 얼마 안 되니까 기왕이면 다른 곳에서 사는 것보다 우리 회원을 도와주면 좋을 것이다. 나도 시골을 좋아해서 주말 농장을 갖고 있기 때문에 이지현씨에게 귀농하게 된 배경, 귀농하기까지 준비한 일들을 물어보았다. 서울에 살다 영양으로 귀농한 그 용기가 참 대단했다.
안압지는 밤 풍경이 환상적인 곳이다. 경주에 와서 밤에 안압지를 둘러본다면 여태 경주를 제대로 둘러보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그 어떤 경치보다 수려한 안압지의 야경. 아직 보지 않았다면 꼭 한 번 와서 볼 만한 경치다. 하지만 낮 경치도 괜찮았다. 나무에 모과가 주렁주렁 열린 풍경도 볼만했고 오리들이 헤엄치는 호수도 고즈넉했다.
다음에는 양동 마을로 갔다. 손씨와 이씨가 집성촌을 이루며 모여 살던 양동 마을은 600년 전의 기와집과 초가집이 그대로 오롯이 남아 있어서 올해 하회 마을과 함께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록된 곳이다. 자연 환경을 거의 파괴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를 이용해서 집과 도로를 만든 모습이 자연친화적이었고 옛 모습이 많이 남아 있어서 정겨웠다. 그러나 이 마을이 남아 있었던 가장 큰 배경에는 안강 마을의 재력가들이 많아서 였다는 말을 듣고 예나 지금이나 결국 돈이 말을 한다는 것을 알았다.
양동 마을을 돌아보다가 대구에서 온 수진이를 만나 퍽 반가웠다. 양동 마을을 둘러보고 화곡 저수지 부근에 있는 매운탕 단지로 갔다. 털보 매운탕에서 점심으로 매운탕을 맛있게 먹었다. 이제 세미나를 모두 마치고 헤어져야 할 시간이다. 다음에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하며 작별하였다. 즐거운 시간은 왜 이리도 빨리 지나갈까? 황금빛으로 익어가는 가을 들녘에서 차곡차곡 익어가는 벼알처럼 우리의 만남도 느릿느릿 지나가면 좋을 텐데.
우리 부산팀은 교육문화 호텔로 다시 돌아와서 처음처럼 승용차를 타고 경주를 떠났다.
오는 길에 양산에 들러 분수쇼도 보며 쉬다가 헤어졌다. 분수대에서 무지개를 보니 이번 세미나가 더욱 행복하게 느껴졌다. 같이 간 제자들도 고맙고 문우들도 많이 만나서 무척 즐거웠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