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난 왜 이렇게 솜씨가 없을까? -_-_ 381회
<381회> < 2011년, 4월 16일, 토요일, 맑음 > 난 왜 이렇게 솜씨가 없을까? 가지 4포기, 오이 6포기, 호박 6포기 모종을 사서 범초산장으로 들어갔다. 많이 심을 땅도 없고 돌보기도 어려워 우리 먹을 것만 조금 심기로 했다. 모종을 심어 놓고 지주대를 구하러 산으로 갔다. 나무 가지를 잘라 와서 지주대를 만들어 세웠는데 다 만들어 놓고 보니 엉망이었다. 나무 가지 모양도 제각각이고 줄로 묶어 놓은 것도 허술했다. 동주가 보면 웃을 것 같았다. 하도 엉망이라 사진 찍을 마음조차 들지 않았다.
동주가 심은 엄나무
난 정말 손재주가 없다. 모종들이 내가 세워놓은 지주대를 보고 안 자라겠다고 할지도 모르겠다. 아내는 내가 손재주가 없고 일머리도 없다며 저런 사람이 어떻게 돈을 버는지 모르겠다고 한다. 다행히 글을 가르치는 재주라도 있어서 다행이다.
범초산장 입구에 있는 때죽나무가 새순을 내밀기 시작했다. 겨우내 앙상한 가지만 있다가 초록색 잎이 나오니까 참 보기 좋다. 나무가 연두빛 옷을 입으니까 진짜 봄처럼 느껴진다.
진달래는 벌써 지고 있다. 목련도 꽃이 다 떨어지고 잎이 나오고 있다. 겨우내 꽃을 피우려고 그 혹독한 추위를 참고 기다렸는데 꽃을 피우는 시간이 참 짧다. 벚꽃은 1주일도 안 되는 것 같다. “저렇게 짧게 피면 억울하지 않을까?” 내가 아쉬워하자 아내가 대답했다. “꽃을 오래 달고 있으면 언제 열매를 맺어요? 나무들도 다 제 새끼 위하느라 그러잖아요.” 듣고 보니 그 말이 맞다. 부모도 자식들 때문에 자기 고생하는 줄 모르고 온갖 희생을 감수하는데 나무도 그렇구나! 새끼(열매)를 빨리 맺어야 하니까 마냥 꽃을 달고 있을 수 없는 것이다. 꽃이 져야 열매가 달릴 수 있으니까. 꽃만 피고 열매가 달리지 않는다면 피우지 않겠지. 그러고 보면 화려한 꽃도 다 제 자식을 위한 잔치상이다. 자식 걱정하지 말고 자신을 위해 화려한 꽃잔치를 더 오래 하면 좋을 텐데.
꽃밭 끄트머리에 재밌는 모양의 돌이 하나 있다. 내가 ‘복주머니 바위’라고 이름 붙였다. 복주머니처럼 생긴 돌이다. 나는 일하다 쉴 때면 일부러 그 돌 위에 앉는다. 거기에 앉아 있으면 복을 많이 받을 수 있을 것 같다. 난 미신을 믿지 않지만 그냥 재미삼아 그런 생각을 해본다.
유진목장에서 가져온 사상자와 쑥부쟁이 싹이 잘 올라오고 있다. 그날 손님들이 가고 나서 화장실을 만드느라 일하다가 밤이 되어 대충 심었는데도 잘 살았다. 저 두 가지가 잘 자라면 뜯어 먹을 때마다 유진목장이 생각날 것이다.
식물을 키워보면 씨를 뿌려서 잘 자라는 것이 있고 잘 나오지 않는 것이 있다. 하지만 뿌리는 거의 100퍼센트 잘 나온다. 나는 뿌리로 심는 것을 좋아한다. 뿌리는 한 번 심어 놓으면 아무리 추운 겨울에도 얼어 죽지 않고 봄이 되면 다시 나온다. 뿌리는 구하기 어려워도 한 번만 구해서 심으면 잘 자라고 계속 번져 나간다. 씨는 구하기가 쉽지만 싹을 틔우기가 어렵고 해마다 새로 심는 수고를 해야만 한다. 그래서 번거롭다. 사람도 진국인 사람은 뿌리가 깊은 것과 같고, 심지가 약한 사람은 뿌리가 없는 씨와 같다. 뿌리가 없는 사람은 귀가 얇고 마음이 부평초처럼 이리 저리 흔들린다. 무슨 일을 진득하게 오래 하지 못한다. 우리 집 미니 화단에 있던 곤달비를 파다가 범초산장에 심었는데 잘 자라고 있다.
초롱꽃과 어성초는 동주원에서 얻어 와서 심었다. 어성초는 꽃밭 앞으로 무리 지어 자라라고 테두리 돌을 따라 심었다.
오늘 밭을 돌아보니 조뱅이, 고수, 천궁, 박하, 도라지, 상추 등의 싹이 올라오고 있었다. 내가 기다리고 있는 뽕나무 잎도 좁쌀만큼 내밀었다. 나뭇잎이든 새싹이든 한꺼번에 와락 나오지 않는다. 날마다 티끌만큼씩 자란다. 더디게 자라지만 절대로 쉬지는 않는다. 그게 무서운 것이다. 한꺼번에 확 자라고 며칠 쉬다가 또 확 자라고 하면 겁날 게 없는데 터럭만큼이라도 매일 자라는 것이 무섭다. 동화 공부도 마찬가지다. 열정을 갖고 매일 꾸준히 해야지 마음 내키면 열심히 하고 그러다가 며칠을 쉬고 그런 식으로 하면 늘지 않는다. 나무나 풀처럼 티끌만큼씩이라도 매일 자라는 것이 대단한 일이다. 눈에 안 띌 정도로 느리게 자라도 한두 달 뒤면 몰라보게 커져 있다.
나 혼자 와서 잘 때는 커튼도 안 치고 그냥 잤는데 아내는 커튼도 치고 문도 끈으로 묶어서 단단히 고정시켰다. 나는 그렇게 철저히는 안 하는데 아내는 조심성이 많다. 너무 철저하다고 빈정거렸지만 내가 배울 점이 많다.
범초산장에도 항아리가 몇 개 생겼다. 동주가 네 개 갖다 놓았고, 우리도 집에서 한 개를 갖다 놓았다. 나도 범초산장에 올 때마다 무엇이든 한 가지 이상은 들고 온다. 아무 것도 들고 올 것이 없을 때는 하다 못해 막내가 빼 먹고 버린 원두 커피 가루라도 들고 온다. 범초산장도 티끌만큼씩 달라지고 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