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황소 개구리가 부는 트럼펫 (402회)
<402회> < 2011년, 7월 31일, 일요일, 흐림 > 황소개구리가 불어주는 트럼펫 지난번에 영갑씨와 같이 딴 영지를 오늘 솥에다 고아보기로 했다. 솥은 양산 남부 시장에서 7만 원을 주고 샀다. 동주가 만든 아궁이가 조금 커서 영갑씨가 솥을 걸 수 있도록 황토로 손을 보았다. 아궁이를 손 보고 나서 솥을 걸었더니 딱 맞았다.
솥에 영지와 대추, 감초를 넣고 불을 때기 시작했다. 불이 붙자 아궁이 굴뚝으로 연기가 솔솔 빠져 나왔다. 굴뚝에서 연기가 나오는 모습은 아련한 향수를 불러 일으킨다. 시골집 굴뚝에서 연기가 나오는 것과 같다. 굴뚝에서 연기가 나오면 무엇인가 먹을 것을 만든다는 말이다. 먹을 것이 아니라면 하다 못해 방이라도 덥히기 위해 불을 때지 않는가!
그래서 그런지 굴뚝에서 연기가 나오는 모습을 보면 마음이 푸근해진다. 연기를 바라보고 있자니 마치 시골집 마당에 와 있는 기분이 든다. 불이 점점 세게 활활 타오르자 솥에서 김이 푹푹 솟아오른다.
불이 타는 동안 영갑씨는 계곡에 내려가서 다슬기를 잡아 왔다. 나는 다슬기를 보호하기 위해서 안 잡았는데 도라지집 아줌마도 잡고 영갑씨도 잡았다. 내가 안 잡는다고 남이 안 잡는 것은 아니지만 나는 안 잡았다. 영갑씨가 다슬기국을 끓여서 먹어보라고 했다. 이왕 잡은 것이니 나도 어쩔 수 없이 먹었다.
얼마 전에 하우스 옆에서 일하다가 무엇이 손등을 물어서 놀란 적이 있다. 어찌나 아픈지 눈앞에 불이 번쩍했다. 손등을 보니 무엇이 물은 흔적이 있었다. 처음엔 뱀이 물은 게 아닌가 해서 놀랐다. 뱀이라면 이빨 자국이 두 구멍이라야 하는데 구멍은 하나였다. 아무래도 땅벌이 쏜 것 같았다. 나중에 보니 하우스 옆에 놓아둔 플라스틱 호스에다 땅벌이 집을 지어 놓았다. 내가 그 옆에서 일을 하니까 땅벌이 자기 집 근처라고 쏜 모양 이다.
오늘 영지 버섯을 고을 때 땅벌 집도 따서 같이 넣고 싶었다. 벌집을 제거하지 않으면 일할 때마다 위협을 느끼게 된다. 도랑치고 가재 잡는다고 벌집을 제거하고 몸 보신도 할 수 있으니 한 번 시도해볼만 했다. 내가 그 이야기를 했더니 영갑씨가 위험하다고 하지 마라고 했다. 꼭 하려면 밤에 벌들이 활동 안 할 때 해보라고 했다. 밤이 되면 영지 버섯 고으는 일이 끝나 버리니까 그전에 하고 싶었다. 5시쯤 되자 해가 설핏해졌다. 벌들이 벌집 주위에 모여 있었다. 이제 슬슬 안으로 들어갈 모양이다. 나는 벌침을 한 번에 30방 정도는 맞아도 아무렇지 않기 때문에 땅벌도 그렇게 두렵지는 않았다. 이미 한 번 쏘여봤는데 대단하지는 않았다. 그래도 만약을 대비해서 에프킬라를 옆에 갖다 놓고 꿀벌 잡을 때처럼 비닐 봉지를 들고 땅벌집 근처로 살금살금 다가갔다. 비닐 봉지로 한 번 만에 벌집을 둘러싸야지 만약에 실패하면 벌들의 집중 공격을 받게 된다. 아슬아슬한 순간이다. 나는 숨을 죽이고 접근해서 한 번 만에 비닐봉지로 벌집을 싸버렸다. 가볍게 성공했다. 벌을 많이 잡아본 경험이 있어서 그리 어렵지는 않았다. 비닐봉지로 감싸 버리자 벌들이 꼼짝 못하고 봉지 안에 갇혀 버렸다. 그걸 바로 열어서 솥에 넣을 수는 없기 때문에 냉장고로 들고 가서 냉동실에 넣어두었다. 1분 정도만 있으면 벌들이 기절해버린다. 이 방법은 많은 벌을 다른 통으로 옮길 때 쓰는 간편한 요령이다. 꿀벌은 1분만 있어도 기절하지만 땅벌은 더 세니까 3분이 지난 다음에 솥으로 들고 가서 벌집채 털어 넣었다.
땅벌집을 소탕하면서 느낀 점인데 벌침 공부를 해두길 참 잘 했다. 안 아파도 스스로 벌침을 많이 맞아봤기 때문에 벌에 대한 공포심이 덜 들었다. 까짓껏 쏘이면 어때. 벌침도 맞아봤는데 뭐. 벌침은 처음 맞을 때 아프고 부어서 그렇지 적응해두면 별게 아니다. 큰병에 대비해서 미리 적응해두면 여러 가지로 도움이 된다. 땅벌집은 재탕 끓일 때 넣었는데 거기에다 사상자 열매까지 넣었다. 마침 사상자가 열매를 조랑조랑 매달고 있어서 손으로 훑어서 넣었다. 이렇게 되면 정말 몸에 좋은 약이 될 것 같다. 영갑씨 덕분에 좋은 약을 몇 병이나 얻었다. 다 달이고 나서 동주원에도 몇 병 주고 나도 몇 병 얻어서 한 병은 도라지집에 갖다 주었다.
이 약이 몸에 얼마나 좋으냐보다도 함께 마음을 맞추어 영지버섯을 따러 다녔고, 다녀와서는 아궁이에 불도 같이 지피고 영지버섯이 끓는 동안 막걸리도 한 잔 하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이 참 좋았다. 그 바람에 내가 지은 뽕잎밥도 같이 먹고 정이 더 두터워졌다. 그게 보약보다 더 좋은 소득이라도 생각한다. 아침에 눈을 뜨니 지붕에서 새가 종종종 걸어다닌다. 어제 밤에는 황소 개구리가 요란스럽게 울었다. 부아앙- 빰빰 빠밤 빰- 빠라라 빰-. 트럼펫을 부는 것 같다. 처음엔 신경이 많이 쓰였는데 이젠 아무렇지도 않다. 그래 넌 울어라. 난 잔다. 황소 개구리까지 날 환영하기 위해서 저렇게 애를 쓰고 있구나! 아무리 시끄러운 소리도 생각하기 나름이고 적응하고 나면 아무렇지 않다. 어떤 힘든 일이라도 잘 견디어 내면 해볼 만하다. 적응하기 전에 힘든다고 포기해 버리면 적응할 기회를 잃어 버린다. 힘들고 고통스러운 일이라도 도전해 보면 별게 아니다. 인생은 도전하며 이루어내는 재미로 살아가야 한다.
잔대 꽃
맨손체조를 하려고 일어났더니 눈앞에 꽃등이 환하게 커져 있다. 배롱나무가 커다란 아침 해 같다. 활활 타오르는 불꽃처럼 마당을 환하게 밝힌다. 아, 참 좋다! 배롱나무가 저렇게 아름다운 줄을 오늘 처음 알았다.
저 나무 한 그루 덕분에 오늘 아침이 눈부시도록 환하다. 체조를 하면서 보니 여러 가지 꽃들이 눈에 띤다. 해바라기도 보이고 달맞이꽃도 피었고, 백일홍, 풍접초, 삼잎국화꿏도 보인다.
체조를 다하고 마당을 한 바퀴 둘러보았다. 양산 길가에서 예초기에 잘려나간 부용화가 불쌍해서 캐다가 심었는데 죽은 줄 알았더니 싹이 나오고 있었다. 너도 생명력이 강하구나. 여기 오길 잘 했지?
더덕줄기에 꽃이 피었다. 더덕은 뿌리를 약이나 나물로 먹지만 꽃도 참 이쁘다. 뎅그랑 뎅그랑 종소리가 울려 퍼질 듯하다.
아침은 뽕앞밥에다 두부를 으깨어 무친 쇠비름, 번행초 나물이다. 생각보다 맛이 좋았다.
밥을 맛있게 먹고 바로 이를 닦았다. 그 다음엔 화장실행. 이건 한결같은 내 일과다. 늘 규칙적인 생활을 하기 때문에 몸에 배어 있다. 화장실은 이제 더 아름다워졌다. 댑싸리가 옆에도 있고 위에도 있다. 한쪽에는 치자나무가 있고. 화장실에 앉아서 보면 호박꽃도 보이고 해바라기도 보인다. 아피오스 덩굴이 뻗어가고 있으니 앉아서 아피오스 꽃도 볼 수 있을 것이다.
볼일을 다 보고 나면 낙엽을 덮으니 냄새도 안 난다. 가끔 불로 태워버리니까 위생적이다.
삼잎 국화 꽃
회향
잠자리가 날아다니고 바람에 뽕잎이 흔들거린다. 팝 음악을 들으며 아침 일기를 쓰고 있다. 산장의 아침이 참으로 평화롭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