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스크랩] 봄맞이 산행 (431회)

凡草 2012. 2. 20. 21:58

<431회>

 

봄맞이 산행

 

< 2012년 2월 20일, 월요일, 맑음 >

 

오늘 낮부터 날씨가 풀린다는 반가운 뉴스를 듣고

가벼운 옷차림으로 집을 나섰다.

오늘 목적지는 천성산.

제 487차 산행이다.

지난번에 길을 제대로 못 찾고 중간에서 밑으로 내려왔는데

오늘은 끝까지 가볼 참이었다.

 

아침에 집을 나설 때는 제법 쌀쌀했다.

영하 2도쯤 된다니까 바람이 차가웠다.

양산에서 버스를 두 번 갈아타고 내원사 입구에서 내렸다.

집에서 거기까지는 50분 정도 걸렸다.

내원사 입구에서 고속도로 다리를 건너자마자 바로 왼쪽으로

올라갔다. 산길이 바로 나온다.

 

 

한참 가다보면 위로 안 올라가고 옆으로 가는 지름길이 나온다.

오르막보다는 옆으로 가는 둘레길이 편하니까 그 길을 고르기 쉽다.

한두 번 정도는 그래도 되는데 자꾸 옆길만 고르다간

결국 멀리 가지 못하고  밑으로 바로 내려와야 한다.

 

옆길보다 더 나쁜 것은 밑으로 내려가는 길이다.

옆길은 잘못 갔다는 생각이 들면 아무 데서나 다시 치고 올라가면

정상으로 올라갈 수 있지만, 밑으로 내려가면 고닥 길이 끝나 버린다.

밑으로 내려갔다가는 다시 올라가기가 힘든다.

 

사람은 꾀를 부리면 멀리 뻗어갈 수 없다.

묵묵하게 바보처럼 걸어가야 한다.

오르막이 나오면 오르막길을 걸어야 하고 내리막길이 나오면

정직하게 밑으로 내려가야 한다. 자꾸 피하려고 하면 엉뚱한

길로 가게 되어 길이 끊어져 버린다.

지난번에 멀리 가지 못하고 밑으로 내려가게 된 것도 옆으로

가는 편한 길을 골랐기 때문이다.

오늘은 우직하게 오르막길을 올라갔다.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로 들어가라는 말이 있듯이

오르막길이 나오면 정면으로 맞서야 한다.

자꾸 피하려고 하면 길이 나를 더 괴롭힌다.

 

 

밑에서 보면 험한 오르막도 막상 올라보면 별게 아니다.

어느새 높은 봉우리 위에 올라섰다.

땀 흘리고 수고한 덕분에 이제부턴 평지처럼 편한 길을 걸어가면

된다.

앞으로 내가 가야 할 봉우리들이 차곡차곡 쌓여 있다.

 

 

저 많은 봉우리들을 힘들고 귀찮게 생각하면 지옥 같지만

나를 훈련시켜주는 트레이너라고 생각하면 그렇게 정답고

고마울 수가 없다.

하나 둘로 쉽게 끝나는 게 아니라 오래 나와 같이할 친구 같은

여러 봉우리들!

조금 쉬고 나서 저 그림 속으로 들어갈 것이다.

 

라디오에서 성경섭과 만난 사람의 초대 손님으로 조영남씨가

나왔다.

2012년 올해가 가수 데뷔 46년째란다.

46년 가수 생활을 기념하기 위해 동생 조영수 성악가와 함께

예술의 전당에서 클래식 음악회를 2월 23일과 24일에 할 예정이란다.

 손님들이 모두 정장을 하고 와서 들어주면 고맙겠다고 말했다.

 나도 서울에 살면 한 번 가볼 텐데 부산이라 아쉽다.

 

조영남씨는 인터뷰에서 젊을 때는 어렵게 살았는데 그래도 그

시절이 좋았고 그립다는 말을 했다.

성경섭씨가 그 때가 생계형 가수 시절이 아니었느냐고 묻자

조영남씨는 그 시절은 누구나 그랬지만 자기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면서 꼭 그렇게 불러야 하느냐고 되물었다.

생계형 아나운서, 생계형 교사, 생계형 PD라고 부르면 좋겠느냐고.

어려웠던 시절을 좋게 보고 그리워하는 조영남씨의 긍정적인

마음이 돋보였고, 프로 정신이 부러웠다.

조영남씨는 영화 버킷리스트를 4번이나 보았는데 자신은 하고 싶은

일을 다 해보았기 때문에 굳이 버킷리스트를 적지는 않는다고 했다.

나는 아직 버킷리스트를 보지 않았기 때문에 시간을 내어 한 번

봐야겠다.

 

 

 

12시 반이 되어 바위 위에서 점심을 먹었다.

앞쪽에 보이는 바위 절벽이 금강산 같다.

밥을 먹는데 봄 햇살이 퍽 따사로웠다. 그동안 몹시 춥더니 이제

슬슬 봄이 다가오고 있나 보다.

얼음장 밑으로 흐르는 물에도 봄빛이 담겨 있다.

 

 

긴 겨울이 끝나고 드디어 봄이 오고 있다.

겨울에도 산행을 계속 했는데 추울 때는 몸을 옹송그리고 앉아서

밥을 먹었는데 오늘은 따뜻하고 포근해서 행복했다.

월요일이라 산에서는 아무도 만나지 않았다.

온 산이 다 내 것처럼 느껴졌다.

 

 오늘 걸은 코스를 벌써 세 번째 오기 때문에 이젠 손바닥 들여다보듯

길을 완전히 알게 되었다. 한 번 실패하면 다시 도전해야 하고,

그래도 안 되면 될 때까지 해야 한다.

산길은 빙빙 도는 것 같아도 계속 걸어보면 바르게 펴지고 목적지까지

이어준다.

 걷는 일은 앞으로 나를 밀고 가는 것이고, 현재에서 미래로

옮겨가는 것이다.

 가만히 있으면 지금 그 자리에 머물러 있지만, 앞으로 걸어가면

어디든 가고 싶은 곳으로 갈 수 있고, 미래의 시간을 살 수 있다.

걷는 것은 살아있는 것이고, 생각을 끊임없이 흐르게 해주는 것이다.

 내친 김에 정족산까지 걸어가려다가 중간에서 아래로 내려왔다.

4시간 정도만 걸으니까 가뿐했다.

즐거운 봄맞이 산행이었다. (*)

출처 : 글나라
글쓴이 : 凡 草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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