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버섯 나무 세우고 꽃도 즐기고... (451회)
<451회>
버섯 나무 세우고 꽃도 즐기고...
< 2012년 6월 3일, 일요일, 맑음 >
토요일에 산장에 들어가서 일하고 푹 쉬다가 돌아왔다. 밤에 황소개구리가 트럼펫을 요란하게 부는 바람에 잠을 좀 설치기는 했지만 공기가 맑고 아름다운 산장이라 그 정도 불편이야 감수할 만 했다.
돌나물꽃
비가 오래 안 와서 밭이 바짝 말랐다. 긴 호스로 밭에 물을 주고 있는데 탁영갑씨가 와서 버섯 원목을 세우자고 했다. 지나간 기록을 보니 3월 11일에 참나무에다 표고 버섯 균을 넣었다. 버섯 균이 들어간 나무를 그냥 눕혀 두면 썩을 수도 있어서 세워두기로 했다. 산장이 산과 붙어 있어서 표고 버섯을 재배하기엔 안성맞춤이었다. 숲속에 세워두니 차광막을 치지 않아도 되었다.
먼저 영갑씨가 엑스자로 지지대를 만들어 철사로 조여놓고 긴 나무를 걸쳐 놓았다. 그렇게 하니 버섯 나무를 양쪽으로 세워둘 수 있었다. 나 혼자라면 그렇게 잘 할 수 없을 텐데 영갑씨가 있으니 시키는 대로 거들기만 하면 되었다. 앞으로 표고 버섯이 나온다고 해도 영갑씨한테 많이 주고 나는 조금 따 먹을 생각이다. 두 사람이 호흡을 맞추어 일하니 그리 힘들지 않고 빠른 시간 안에 버섯 나무 세우기 작업이 끝났다. 영갑씨는 눕혀 놓은 버섯 나무가 너무 많아서 다 세워둘 수가 없자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하기는 엄청 했네요." 어림잡아 세어 보아도 70-80개는 될 것 같았다.
버섯을 세워 놓은 뒤에 호스로 물을 충분히 뿌려주었다. 버섯은 습기가 많아야 빨리 자란다니 산장에 갈 때마다 물을 뿌려준다. 무엇이든 노력하지 않고 얻을 수 있는 것은 없다.
저 나무에서 버섯이 나오려면 적어도 6개월 이상 걸리고 늦어지면 일 년 정도가 걸린다니 느긋하게 기다려야겠다. 버섯은 당장 나오지 않고 천천히 나오면서 나에게 기다리는 마음과 미리 미리 준비해야 수확을 거둔다는 것을 가르쳐준다. 버섯 작업을 하고 나서 점심을 먹었다.
오늘은 산장에 동화를 배우는 김유진씨가 찾아왔다. 미술학원을 하고 있는 유진씨는 채식주의자다. 산장에 온갖 약초가 있으니 유진씨에겐 풍성한 먹거리를 제공할 수 있었다. 삼백초, 회향, 차조기, 천궁, 톱풀, 박하, 상추, 고수, 삼잎국화, 왕고들빼기, 민들레 등...... 다양한 쌈으로 점심을 맛있게 먹고, 건강하라고 벌침도 한 방 놓아주었다.
산장에 여러 가지 꽃이 잇달아 피고 있다. 한 가지 꽃이 지고 나면 다른 꽃이 배턴을 이어 받아 핀다. 마치 꽃들이 이어달리기를 하는 것 같다. 이번 주에는 패랭이꽃과 초롱꽃, 황금달맞이꽃이 새로 선을 보였다. 저들도 버섯처럼 힘들여 구해 심고 1-2년이 지나니 이제 꽃을 마음대로 즐길 수 있게 되었다. 저수지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여러 가지 꽃을 즐겼다.
패랭이
초롱꽃
황금달맞이꽃
죽은 감나무 한 그루에서 새순이 돋아났다. 죽은 줄 알았는데 뿌리 한 쪽이 살아있었던 모양이다. 건강한 나무에서 새순이 나오는 것보다 죽은 나무에서 싹이 나오는 것이 더 감동적이다.
작년에 피었던 분꽃에서 씨앗이 떨어졌는지 분꽃 싹이 돋아났다. 이승민씨가 심어준 분꽃인데 올해도 분꽃을 볼 수 있을 것 같아 기대가 된다. 심지도 않은 분꽃이 스스로 돋아났듯이 아이들도 부모가 억지로 시키지 않아야 제가 알아서 공부한다. 꽃도 제가 알아서 때가 되면 땅위로 나와야 신기하고, 아이들도 스스로 공부해야 대견스럽다.
오이가 꽃을 피우면서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지금은 손가락 정도 크기밖에 안 되지만 곧 굵어질 것이다. 자신보다 부족한 사람을 비웃어서는 안 된다. 비웃는 그 시간에도 성장하기 때문이다. 오이가 줄기를 마음대로 뻗을 수 있도록 지지대를 더 만들어 주었다.
오이가 아무리 잘 자란다고 해도 뻗어갈 받침대가 없으면 제자리 걸음을 한다. 사람이든 오이든 놀 자리를 마련해줘야 잘 큰다. 아이들에게 공부만 강요하는 것은 크지 말고 제자리에서 뱅뱅 돌아라고 하는 것과 같다.
삼백초가 엄청나게 번져가고 있다. 작년에는 몇 잎 되지 않아서 따 먹기가 주저되었는데 올해는 많이 번져서 마음 놓고 따 먹는다. 처음에는 적은 양이라도 잘 키워놓으니 부자가 된 느낌이다. 꺼져가는 촛불도 잘 붙여 놓으면 튼튼한 불이 되듯이 씨앗도 잘 가꾸어 놓으면 무성한 숲을 이룬다. 밀양에 시골집을 갖고 있을 때부터 약초 재배에 관심을 가졌는데 이제 슬슬 수확을 거두게 되었다. 뭐든 끈기있게 달라붙으면 결국은 성공할 수 있다. 산장을 만든 지 이제 2년 정도인데 어느 정도 틀이 잡힌 것 같아 만족스럽다.
내가 풀어야 할 마지막 과제는 주말에만 산장에 오는 것이 아니라 산장에서 아주 눌러 사는 것이다. 여태 내가 꿈을 안고 살아오면서 하나씩 풀어왔듯이 이 과제도 언젠가는 꼭 이루고 말 것이다. 산장이 하우스라 현실적으로 살기가 어렵다면, 두메 산골에 있는 시골집을 구해서라도 약초와 자연을 벗삼아 살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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