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금불초가 피었다! (464회)
<464회>
금불초가 피었다!
< 2012년 8월 13일, 월요일, 비 >
토요일부터 어제까지 1박 2일로 백무동에 다녀왔다. 부산 교육대학교 친구들과 부부 모임을 달마다 하는데 이번 달에는 지리산으로 피서를 갔다. 백무동 입구에 있는 다샘펜션을 빌려 잠을 자고 계곡에도 갔다.
이 모임에는 교육장을 한 친구도 있고 교장도 있는데 한 번은 고기집에 간 적이 있었다. 고기와 숯불이 들어오고 누가 고기를 구워야 하는데 교육장인 친구가 집게를 들고 고기를 구웠다. 나는 가만히 앉아서 구경만 했다. 옆에서 보고 있던 아내가 내 옆구리를 쿡 찔렀다. 그래도 내가 못 알아듣자 살며시 소근거렸다. “여보, 당신이 구워야지 교육장한테 시키면 되겠어요?” 나는 그제야 미안한 마음이 들어 교육장이 들고 있는 집게를 빼앗으려고 하자 교육장은 안 넘겨주고 계속 구웠다. 고기집에서는 내가 교육장보다 더 높은 사람이 된 꼴이었다.
나는 막내로 자랐기 때문에 집에서도 힘든 일은 누나와 형들이 다 했고, 커서는 교사가 되어 학부모한테 대접만 받았다. 집에서는 아내가 고기를 구워주고 밖에 나가면 제자들이 구워주니 내가 고기를 구울 기회는 거의 없었다. 그러다 보니 앉아서 얻어 먹기만 하는 버릇이 들었다. 이건 아무래도 나쁜 버릇이다. 이제부터는 우두커니 앉아 있기만 하는 버릇을 고쳐 나가야겠다. 사람은 한 번 습관이 잘못 들면 쉽게 고쳐지지 않는다. 자녀가 어릴 때부터 집안일도 시키고 부모 일을 돕게 해야지 공부만 시켰다가는 커서도 자기만 아는 사람이 되기 쉽다. 이런 마음 때문에 아침과 점심을 먹은 뒤에는 내가 설거지를 자청해서 했다. 모처럼 일을 하고 나니 빚을 조금 갚은 것 같아서 마음이 홀가분했다.
토요일에는 점심을 먹고 몇 사람이 한신계곡을 거슬러 올라갔다. 폭포들이 줄지어 있었는데 부산 근교의 산과는 달리 계곡이 아주 깊었다. 부산에서 작은 계곡만 보다가 모처럼 지리산 계곡을 보니 웅장하고 장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계곡 물이 차고 시원해서 더위가 순식간에 달아났다. 산행도 하고 더위도 식히고 일석이조였다.
계곡을 올라가는데 일꾼들이 해머로 돌을 깨어 가며 길을 만들고 있었다. 우리는 편하게 돌을 밟고 지나가지만 저 사람들은 얼마나 힘이 들까? 땀을 흘리며 돌을 깨고 타일 맞추듯이 이리 저리 돌려가며 끼워 넣었다. 제 자리에 돌이 딱 맞지 않으면 다른 돌을 갖다가 끼워 넣고 안 맞는 돌은 다른 곳에 맞추어 넣었다. 아무리 울퉁불퉁한 돌이라도 다 쓸 곳이 있었다. 큰 돌은 길 중심에 놓고 작은 돌은 옆으로 돌렸다. 길 만드는 기술자는 마술사처럼 갖가지 모양의 돌을 하나도 버리지 않고 다 끼워 넣었다. 크고 작은 돌들이 어울려 튼튼한 길이 되었다.
길이나 글이나 만드는 이치는 같을 것이다. 글도 문장을 쓰기 위해 어떤 낱말을 집어넣어야 할까 고심해야 하고 진땀을 흘리며 길을 만들듯이 애를 써서 이어나간다. 돌을 깨다 보면 손을 다칠 수도 있고, 무거운 돌을 옮겨서 길을 만드는 것은 힘들지만 한 번 만들고 나면 수 백 수 천 명이 편하게 오고 간다. 글도 쓰기는 어렵지만 고생 끝에 완성을 하고 나면 많은 사람들이 즐겁게 읽고 감동을 받는다. 쉽게 놓을 수 있는 흙길은 쉽게 무너진다. 반대로 어렵게 놓은 돌길은 아주 오래 간다. 글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온갖 노력 끝에 완성한 글은 생명이 오래 간다.
일요일 오전에는 이선생님과 둘이서 하동바위까지 갔다 왔다. 일행 중에 산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어서 다행이었다. 비가 잠시 그친 틈을 타서 다녀왔다. 한신계곡보다는 걷기에 조금 더 편한 코스였다. 이 길을 걸어보니 예전에 비를 맞아가며 장터목 산장까지 올라간 기억이 났다. 오래 전에 왔어도 한 번 걸어본 길이라 낯설지 않았다. 이번 주 산행은 그저께와 어제 이틀 걸은 것으로 대신했다.
주말에 지리산으로 갔기 때문에 오늘 산장에 왔다. 산장에 와보니 그동안 워낙 가물어서 고추나 가지가 잘 열리지 않았다. 토란도 잎이 타들어 가고 있었다.
다행히 오늘부터 비가 오니 해갈이 되겠다. 오랜만에 내리는 비가 참 고맙다. 화단에 가보니 금불초가 노란 꽃을 피웠다. 금불초는 여러해살이 식물이고 약초로서도 가치가 있으며 차로도 마실 수 있다.
월악산 황금나무 집에 갔을 때 무성한 금불초를 보고 씨를 받아 왔는데 발아가 잘 되지 않았다. 그 뒤에도 공원에서 씨를 받아다 뿌렸지만 이상하게 싹이 트지 않았다. 할 수 없이 어느 분한테 모종을 사서 심었더니 이제 꽃이 피었다. 저 금불초도 한두 번에 안 되면 여러 번 도전해야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쳐주고 있다. 이제 산장에 자리를 잡았으니 잘 번져 나가면 좋겠다.
부용화
예덕나무가 아주 크게 자랐다.
호박이 큰 게 하나 열렸고 줄기가 무성하게 뻗어나가고 있다.
개미취 꽃
삼잎겹국화 꽃
꽈리가 열렸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