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나쁜 날씨라도 좋아 (506회)
<506회>
나쁜 날씨라도 좋아
< 2013년 4월 13일, 토요일, 맑음 >
산장에서 하루 자는 것이 일주일 중에서 가장 큰 기쁨인데 내일 집안에 중요한 일이 있어서 오늘은 하루만 산장에 머물다 왔다.
예덕나무 새잎이 단풍처럼 붉다
고수가 제법 자라서 쌈을 해 먹었다. 특유한 향기가 좋다.
4월 중순이 지났는데도 겨울처럼 차가운 날씨가 이어지고 있다. 오늘은 그래도 좀 풀렸다. 낮에는 포근해서 쑥도 캐고 풀도 뽑았다.
인터넷으로 사서 심은 우산나물 비가 오면 우산을 펴들까? 비를 좋아하는 나는 우산나물만 보아도 기분이 좋아진다. 하루 종일 저 놈만 보고 있어도 심심하지 않을 것 같다.
어성초가 막 올라온다. 선생님, 나 여기 있어요!
겨울에도 파랗게 살아있던 금전초
작년에는 3월에 동화교실 개강을 하자마자 기침 감기에 걸려서 고생을 했는데 올해는 몸 관리를 잘한 덕분에 감기 한 번 걸리지 않은 채 봄을 잘 넘기고 있다. 지난겨울에 눈이 쌓인 산을 여러 차례 올랐는데 체력 단련을 한 덕분인지 모르겠다. 아니면 산장에서 톱풀과 여러 가지 약초를 뜯어 먹었기 때문일까? 기침 감기가 오면 먹으려고 생강 효소를 담아 두었는데 준비를 해두니 먹을 일이 없다. 평소에 청국장을 꾸준히 만들어 먹고, 효소를 마시고, 쑥환도 먹으면서 운동을 열심히 하고, 무리하지 않고 규칙적으로 생활한 덕분이 아닌가 생각한다.
종지나물( 미국 제비꽃)이 꽃을 피웠다. 보통 제비꽃보다 더 화려하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마음가짐이다. 나는 지난 일은 가능하면 생각하지 않는다.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지난 일을 회상하며 시간을 보내고 싶지 않다. 그래서 앨범을 거의 보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사진 찍는 것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내가 주로 찍는 것은 풍경 사진이지 내 얼굴 사진은 잘 찍지 않는다. 지금이 가장 중요하고 다음으로 중요한 것이 다가올 날이다. 좋은 일이 생기면 감사하게 생각하고, 어쩌다 안 좋은 일이 생기면 내 복이 그것 밖에는 안 되는구나 하고 가볍게 생각한다. 인생에서 정말 견디기 어려운 일은 나쁜 날씨의 연속이 아니라 오히려 구름 없는 날씨의 연속이라고 한다. 나쁜 날씨는 사람을 긴장하게 만들고 머리를 쓰게 만들지만, 구름 없는 날씨는 사람을 게으르게 만들고 지루하게 만든다. 살다가 안 좋은 일이 생기면 정신 차리고 잘 살아라는 뜻으로 받아들이면 된다. 봄비는 독서하기에 좋고, 여름비는 장기 두기에 좋고, 가을비는 가방이나 다락방을 정리하는데 좋고, 겨울비는 술 마시기에 좋다고 했다. 외부 여건이 나에게 우호적이지 않더라도 내게 주어진 상황을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살아가면 불행도 비껴갈 것이다.
숲속에 자리잡은 범초산장
산장에 개울이 있어서 참 좋다. 일하다가 심심하면 개울가에 가서 쉰다.
정채봉 동화작가가 지은 시 중에 이런 구절이 있다. < 어떠한 기다림도 없이 한나절을 개울가에 앉아 있었네. 개울물은 넘침도 모자람도 없이 쉼도 없이 앞 다투지 않고 졸졸졸 길이 열리는 만큼씩 메우며 흘러 가네. 미움이란 내 바라는 마음 때문에 생기는 것임을 이제야 알겠네.> 개울물은 무엇을 바라지 않고 그저 앞만 보고 흘러간다. 지나온 길을 돌아보지 않는다. 내가 지금 손을 담그고 있는 물은 앞으로 흘러가는 물이지 거꾸로 거슬러 올라오는 물이 아니다. 나는 흘러가는 물을 보며 나도 그렇게 살아야 하리라고 생각한다. 한 번 흘러가면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물이다. 우리 인생도 한 번뿐이다. 지금 이 순간을 놓치면 다시는 돌아올 수 없다. 그래서 지금 이 순간이 소중하다. 지금 만나지 않고 다음에 보자는 말은 공허한 메아리다. 나는 지금 물을 만지며 이 순간을 즐긴다.
물뿌리개로 물을 떠서 꽃과 나무에 물을 주기도 하고 흙을 만지다가 손이 더러워지면 물가에 와서 씻는다.
어리연을 심은 물통에서 작은 싹이 올라오고 있다. 그 추운 겨울에 어리연이 죽지 않은 모양이다. 담요로 통을 잘 싸준 보람이 있다.
나는 통을 들여다보며 웃었다. 그 좁은 통 안에 물방개가 여러 마리나 살고 있었다. 저 물방개도 작은 것에 만족하고 사는 철학자다. 나도 그래야지.
내가 기다리는 뽕잎이 좁쌀만큼씩 나오기 시작했다. 산장에 진작 봄이 왔지만 뽕잎이 나와야 진정한 봄이라고 할 수 있다. 새 뽕잎을 기다리는 기쁨이 참으로 크다. 내가 다음 주에 제주도에 갔다 올 때까지 잘 크고 있기를 빈다.
어디든 여행 갈 때마다 민들레 씨를 모아다가 산장에 뿌렸는데 민들레가 많이 늘어가고 있다. 오늘 민들레꽃을 보니 벌이 많이 앉아 있었다.
나는 민들레 씨만 뿌렸지 벌은 안 뿌렸는데 벌이 민들레를 찾아 왔다. 덕분에 벌을 많이 잡아 아내 어깨와 다리에 침을 놓아주었다. 민들레를 열심히 심은 덕분에 잎은 쌈으로 꽃은 차로 벌은 약으로 쓰고 있다.
한 가지 좋은 일을 하면 내게 몇 배로 이익이 되어 돌아온다. 되도록이면 남에게 좋은 일을 해야 하겠고, 말을 할 때도 기왕이면 좋은 말만 골라하고, 남이 들어서 싫은 말은 안 해야겠다. 벌을 잡으면서 여러 가지를 깨달았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