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이야기

[스크랩] 사람을 택배합니다 (519회)

凡草 2013. 6. 30. 23:26

 

< 범초산장 일기 519회>

 

사람을 택배합니다!

 

< 2013년 6월 30일, 일요일, 맑음 >

 

6월 24일에 밀양 구만산으로 등산을 갔다.

10년 전에 가본 곳인데 구만 통수골 폭포가 아주 좋아서 여름 등산 코스로는

안성맞춤이다.

원래 계획은 산내초등학교 앞을 지나 구만산장-구만 통수골 폭포- 구만산-

가인계곡- 인골산장으로 내려오려고 했다.

통수골 폭포는 참 볼만 했다. 폭포 옆에서 점심을 먹었는데 냉장고를 옆에

둔 것처럼 시원했다.

 

 

 

점심을 먹고 구만산으로 올라갔다.

산은 그리 높지 않았으니 계곡이 아주 깊어서 한참 올라가야 했다.

걷고 걷고 또 걸어서 구만산에 도착했다. 이제 내려가기만 하면 가인계곡이다.

옛날에 한 번 와본 데다 어제 인터넷으로 지도를 검색하고 온 참이라 큰

어려움이 없으리라 생각했다.

 

 얼음골 사과가 벌써 여물어 가고... 

 

그런데 아무리 걸어가도 가인계곡으로 내려가는 표지판이 나오지 않았다.

산길은 내려가야 하는 게 아니라 점점 높아지고 있었다.

허, 참 이상하네. 분명히 내리막길이 나와야 하는데 왜 오르막이 나오지?

조금 더 가면 가인계곡이 나오겠지.

길은 좋은 편이라 그리 염려가 되지 않았다.

걷는 것도 아무 문제가 없고.

혹시 예정된 길을 놓쳐도 아무 데나 내려갈 길이 나오리라 믿었다.

그런데 아무리 가도 내려갈 길이 나오지 않았다.

 

이게 어찌된 셈이야? 산길이 나를 홀리고 있는 것만 같았다.

인내심을 갖고 계속 걸어갔더니 드디어 내리막길이 보였다.

그런데 다 내려간 곳은 뜻밖에도 청도군 매전면 장수골 부근이었다.

눈앞에 청도 학생 야영장이 보였다.

처음에는 어째서 밀양에 청도 학생 야영장이 있을까? 의아하게 생각했는데

스마트폰으로 검색을 해보니 밀양으로 내려오지 않고 청도로 내려간 것이었다.

길을 잘못 들어 6시간 동안 청도까지 걸어간 모양이다.

 

참 황당했다. 이제 어떡하지? 버스 정류장도 멀고 집으로 돌아갈 길이

난감했다.

산길을 잘 안다는 자만심이 이런 결과를 가져 왔구나!

 이거 참 큰일이네.

 

그러고 있는데 청도 학생야영장에 택배를 왔던 차가 막 떠나려고 했다.

나는 염치불구하고 손을 들었다. 택배 차가 멈추었다.

“죄송합니다. 길을 잘못 들어 엉뚱한 곳으로 내려왔는데 버스 정류장까지만

태워주시겠습니까?“

택배 기사는 뜻밖에도 타라고 했다. 나는 감사한 마음으로 차에 올라탔다.

알고 보니 택배 기사도 백두대간을 종주하고 매주 산에 간다고 했다.

등산을 하는 사람이라 내 처지를 이해하고 태워준 것이었다.

여태까지 경험으로 미루어 보면 개인 승용차보다는 영업하는 차가 잘 태워

준다. 아무 고생해보지 않은 사람보다는 사업을 해서 실패도 하고 고생을

많이 해본 사람이 남의 어려운 처지를 잘 이해한다.

나도 차를 얻어 탄 일이 많아서 남의 처지를 이해하고 남이 어려울 때는

도와주리라 마음 먹고 있다.

 

 옥잠화 

 

 이런 저런 이야기 끝에 택배 기사는 좀 둘러가도 괜찮다면 유천 역 앞까지

태워주겠다고 했다. 거기라면 집으로 돌아가기가 쉬웠다.

나는 시간이 걸려도 괜찮다고 동의한 뒤 택배 기사를 따라 과수원에도 들어가고

소 키우는 축사에도 들어가고 전원주택에도 들렀다. 마치 청도 투어를 하는

기분이었다. 택배 기사가 배달하는 곳마다 들렀는데 이런 일도 난생 처음이었다.

 

 

여기 저기 다 들렀다가 마지막으로 밀양과 청도의 경계인 유천역 앞에서 내렸다.

나는 너무 미안해서 차비를 주었지만 그 기사는 받지 않았다. 다음에 산에서

만나자고 했다.

나는 진정한 산악인의 자세에 감동하고 택배 차에서 내렸다.

그 친절한 기사 덕분에 헤매지 않고 무사히 집으로 돌아왔다. 여태까지 나도

택배를 많이 이용해 보았지만 사람을 택배해준 경우는 처음 당해보았다.

그 고마운 택배 기사를 생각하며 동화로 풀어낼 생각이다.

 

    영갑씨가 잘 키워 놓은 댑싸리 

 

어제 토요일에 산장에 갔더니 연 잎이 6장이나 나왔다. 점점 연잎이 많이

나온다.

나는 모기 유충인 장구벌레가 생기지 않도록 양산 남부시장에서 미꾸라지를

사다 넣어주었다.

 

 

동주가 새로 만든 원두막에 전기 기술자를 불러 전기를 달았다.

나는 괜찮다고 했지만 밤에 전기를 켤 일이 있을 거라며 전기 공사를 했다.

나도 옆에서 도왔다. 동주는 호미로 땅을 파서 전기 케이블 선을 묻었다.

다음에 호미나 괭이로 땅을 파면 다치지 않도록 돌로 전기 선이 들어 있는

파이프를 가리고 흙으로 묻었다. 돌은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것 같지만

여러 가지로 쓸모가 많다.

 

 

           

 

            벨가못이 처음으로 꽃을 피웠다 

 

     사상자 꽃 

 

   에키네시아 

 

  가지와 오이가 주렁주렁 열렸다.  

 

수레에 밥과 반찬을 실어 원두막으로 갔다. 식사 기차가 칙칙폭폭 달려간다.

소꿉놀이하는 기분이다.

뽕잎 밥에 고추, 오이, 가지를 함께 먹었다.

 

 

 

 

 나는 육고기보다 해산물을 더 좋아하기 때문에 아귀 수육을 반찬으로 먹었다.

행복한 점심이었다.

왕고들빼기, 천궁, 삼백초, 박하, 삼채를 쌈으로 곁들였다.

황제 부럽지 않은 점심이다.

 

   삼채  

 

  회향 

 

 

  토마토를 처음 수확했다. 

 

   치자꽃이 향긋하다 

                                                                      (*)

 

출처 : 글나라
글쓴이 : 凡 草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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