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아들이 내 준 수술비 (528회)
<528회>
아들이 내 준 수술비
< 2013년 8월 25일, 일요일, 맑음 >
지난 번 일기에 하늬가 너무 영악해서 정이 안 간다고 했는데, 그 하늬가 산장에 다녀온 뒤부터 며칠째 밥을 먹지 않았다. 처음에는 더위를 먹은 줄 알았는데 밥을 안 먹을 뿐 아니라 계속 축 늘어져 있었다.
딸 봉현이가 휴가 기간에 키우던 고양이 ‘달리’를 집에 데리고 와서 하늬가 삐진 줄만 알았다. 달리는 사람을 잘 따라서 부르면 달려오고 사람을 졸졸 따라 다닌다. 나는 하늬보다 달리가 더 좋아서 귀여워해주었다.
그런데 아무래도 하늬 몸이 심상치 않게 보였다. 아내가 하늬를 동물병원에 데리고 갔다. 진찰 결과 자궁에 큰 혹이 있다고 했다. 잘 나을지 어떨지는 수술을 해봐야 안단다. 의사도 확신을 못하는 상황이라 쉽게 수술할 수는 없었다. 수술비가 40만 원 정도 든다는데 돈도 돈이지만 수술한 뒤에 결과가 좋지 않으면 어쩔 것인가? 하늬는 8살이나 되기 때문에 수술하고 며칠을 못 버틸 수도 있다.
( 개의 나이 계산 법= 21+ 4n ) n은 개의 나이에서 1을 뺀 수
하늬 같으면 8살이기 때문에 21+ 4X7= 49살이다. 그래서 나는 더 두고 보자고 했는데 아들이 이 소식을 듣고 달려오더니 하늬를 안고 펑펑 울었다. 지금은 분가해서 떨어져 살지만, 같이 살 때는 하늬를 무릎에 앉혀 놓고 밥을 먹을 만큼 좋아했다. 하늬로 보면 우리 집 서열 1위다. 나는 그런 아들을 보고 슬며시 투덜거렸다. “이 녀석아, 개가 아빠보다 더 소중하냐? 내가 두드러기 걸려서 곧 죽을지도 모르는데 나한테는 인사 한 마디 없으면서.” “아빠는 어디가 아픈데요?” 나는 얼굴에 난 두드러기를 보여주었다. 더운 날 등산을 심하게 해서 그런 건지 산장에서 환삼덩굴을 걷어내다 긁힌 건지 얼굴에 뭐가 도도록하게 돋아났다. 면도하기에도 불편하고 남이 보면 이상한 모습이라 신경이 쓰였다. “에이 이런 걸로는 안 죽어요.” “죽든 안 죽든 개만 챙기는 거 보니 서운하다.” “하늬는 많이 아프잖아요? 아빠도 어서 나으세요.” 아들은 하늬를 당장 동물 병원에 데리고 가서 수술 시키라며 50만 원을 아내 계좌로 입금시켰다. 뭐든지 아끼는 짠돌이 아들이 선뜻 수술비를 내놓는 것을 보니 너무나 뜻밖이었다. 아무리 개를 좋아한다고 해도 그러기가 쉽지 않은데........ 나는 개가 살만큼 살았다며 죽든지 말든지 내버려둘 정도로 냉정한데 아들은 그렇지 않았다. 8년이나 키워서 정이 들었는데 수술 한 번 하지 않고 죽음을 맞게 한다면 뒤에 후회할지도 모른다고 했다. 아들이 생각했던 것보다 정이 많고 의리가 있어서 많이 컸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들은 다음날 카톡으로 '아버지 빨리 나으세요. 사랑합니다! '라는 문자를 보내서 위로해주었다.
아들의 지원 덕분에 하늬는 동물병원에서 자궁 제거 수술을 받았고 2-3일이 지나자 눈에 띌 정도로 회복이 되었다. 다 죽어가던 하늬가 살아나서 다행이다.
연잎은 물에 있기 때문에 벌레가 안 먹는 줄 알았다. 그런데 산장에서 보니 연잎도 땅에 있는 나무처럼 벌레가 많이 먹었다. 아하 물 속에 있다고 벌레가 안 먹는 건 아니구나. 연잎을 한 장 한 장 살펴보고 벌레가 있으면 집게로 잡아주었다.
약 두 달 정도 가물었는데 목요일부터 토요일까지 80밀리미터 정도 비가 내려서 해갈이 되었다. 바짝 말랐던 저수지에도 물이 조금씩 차기 시작했고 범초산장 옆 계곡에도 물이 흘러갔다. 비가 늘 내릴 때는 잘 몰랐지만 오랜만에 비가 오니 얼마나 반갑고 고마운지 모르겠다.
글 쓰는 사람도 그러할 것이다. 통 쓰지 않고 놀기만 하다가 오랜만에 쓰려고 하면 엄두가 안 난다. 자주 조금씩이라도 써야 영감의 저수지가 마르지 않는다. 하늘에서 비가 내릴 때는 한 두 방울씩 내리다가 점점 많은 비가 내린다. 글도 한 자 두 자부터 시작해서, 한 줄 두 줄, 한 페이지 두 페이지로 점점 늘어나게 된다. 일단 시작만 하면 점점 잘 쓸 수 있으니 자주 써야 한다.
한창 비가 오지 않을 때 릴레이와 30미터 호스를 새로 사서 잘 썼다. 수중 모터를 물에 담가 놓고 물을 빨아 들여 밭에 물을 주었다. 이제 가뭄이 해갈되어서 당분간 쓰지 않아도 되어서 편하다.
꽃차를 만들어 놓고 마시려고 유리병을 10개 샀다. 우리 동네 그릇 가게에서 2500원씩 주고 샀다. 이번에는 두 가지를 만들었다. 맨드라미 꽃차와 금불초꽃차다. 차차 가짓수를 늘려 나갈 작정이다. 보기에 좋고 몸에도 좋은 꽃차라 취미삼아 꾸준히 만들 것이다.
대추나무에 처음으로 대추가 몇 개 열렸다.
내가 심지도 않았는데 한련초가 돋아나서 잘 크고 있다.
익모초가 꽃을 피웠다.
아기땅빈대(비단풀)가 엄청 번졌다. 효소를 담으려고 그냥 놓아둔다.
밭에서 일하다가 잠시 쉬는데 거미가 개미 뒤를 졸졸 따라가는 것이 보였다. 저 거미가 무엇을 하려고 그러는 것일까? 잠시 눈여겨 보았다.
거미는 개미 뒤를 졸졸 따라가다가 확 달려들어서 물었다. 개미가 단번에 뿌리치고 달아났다. 거미는 악착같이 따라가며 몇 번이나 물었다. 개미는 한사코 떨쳐 내었다. 거미는 포기할 법 한데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따라갔다. 결국 개미는 거미 먹이가 되었다. 거미의 인내심과 집요한 추격이 놀라웠다. 저 거미처럼 무엇이든 끈질기게 하면 못할 것이 있을까? 자기 능력이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미처럼 끈질겨야 한다. 노력은 능력을 뛰어 넘는다. 악착같은 모습을 보여준 거미에게 박수를 보내고 밭일을 계속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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