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가꿀수록 빛나는 땅 (536회)
<536회>
가꿀수록 빛나는 땅
< 2013년 10월 7일, 월요일, 구름 조금 >
올해로 수내에 범초산장을 마련한지 햇수로는 4년이고 만 3년이 지났다. 지나간 일기를 보니 2010년 7월초에 공사를 시작했다. 일기를 써 놓으니 이런 점이 편리하다.
서당개 삼년에 글 읽는다고 범초산장도 3년이 지나니 서서이 밭 모양을 차려가고 있다. 공사를 벌였던 3년 전에는 포크레인으로 박박 긁어서 완전히 생땅이어서 농사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 무엇을 심어도 잘 자라지 않고 비쩍 마르기만 했다. 그래서 내가 농사 짓는 솜씨가 없어서겠거니 생각했다. 그랬는데 3년 동안 돌을 골라내고 거름을 넣고 여러 가지 약초를 꾸준히 심었더니 슬슬 옥토가 되어가고 있다. 가꿀수록 점점 빛나는 땅이 되어가고 있다.
올해는 배추가 그 어느 해보다 크다. 보기만 해도 먹음직스럽다. 아함~~ 이만 하면 초겨울에 김장을 해도 되겠다. 다른 식물들도 이젠 잘 자란다.
버섯도 조금씩 많이 열리고 있다. 영갑씨와 나누고 나서도 우리 네 식구는 먹을 수 있는 양이다. 한 마디로 땅심이 느껴진다.
동화 공부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처음에는 설명을 들어도 이해가 안 가고 도무지 어렵게 느껴지지만 자꾸 공부하고 어설픈 습작이라도 거듭 쓰다보면 차차 나아진다. 오래 공부했는데도 발전이 없다면 한눈을 팔았거나 아무런 노력을 안 했기 때문이지 다른 이유가 없다. 오직 한 가지에 뜻을 두고 했다면 성공하기 마련이다. 내가 부산 신세계 백화점에 동화 창작 강의를 하러 나간 지 4년이 지났는데 거기서도 내 수내밭처럼 성과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왕초보였던 사람들이 어느새 성장하여 전국 공모전에서 상을 받고 있다. 이걸 보면 밭이나 사람이나 커가는 이치는 똑같다.
다만 안 할 뿐이지 못하라는 법이 없다. 나는 소질이나 재능을 믿지 않는다. 동화 지도를 하면서 천부적인 제자는 별로 보지 못했다. 대체로 노력하는 제자들이 크게 성공했다. 아무 것도 없는 생땅에 무엇을 심으면 제대로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비실비실 자란다. 그런 땅이라도 자꾸 심다보면 그게 말라죽어서 거름이 되고 약한 뿌리가 땅을 뚫고 들어가 길을 낸다.
사람 머리 속도 마찬가지다. 텅 비었던 머리에 동화 이론이 스며들고 한 번도 안 해본 동화 생각을 하면 머리가 복잡해지지만, 그게 차차 자리를 잡게 되면 생땅에 풀이 자라고 나무가 크듯이 마음 속에 동화나무가 자라게 된다. 약초와 나무를 키워보고 사람도 키우고 있는데 이치는 똑같다. 천상 나는 농부다. 잘 크든 못 크든 키우는 것을 좋아하는 것을 보니.
아내와 구석진 빈터에 새로 밭을 만들었다. 마늘과 양파, 대파, 쪽파를 심기 위해서였다. 내평개쳐졌던 땅을 뒤집고 거름을 넣은 뒤에 쇠스랑으로 다듬으니 멋진 밭이 되었다. 둘이 해놓고 봐도 밭이 예뻐서 실실 웃었다. 저만하면 무엇을 심을 수 있든 못 심든 마음이 흡족하다. 저기에서 무엇이 나든 안 나든 그건 다음의 문제다. 지금 내 기분이 좋으면 그만이다.
사람도 똑같다. 내가 키운 제자가 크게 성공하든 안 하든 그건 상관하지 않는다. 지금 잘 가르치려고 노력할 뿐이다. 따라주면 좋고 싫어서 나가면 그것도 막을 길이 없다. 성공한 제자가 고맙다고 찾아오면 기쁘지만 안 찾아와도 서운해할 필요가 없다. 나로서 할 일을 다했기 때문이다. 기껏 작은 밭 하나를 다듬어 놓고 온갖 생각을 다해보았다.
미역취
김해에서 구해 온 장군차가 표나지 않게 조금씩 크고 있다.
댑싸리가 붉게 변한 걸 보니 가을이다.
산에도 억새가 피었고 나뭇잎이 누래지고 있다. 굽어진 길을 걸으면서 가을 산을 마음껏 탔다. 내 성공 뒤에는 산이 있다. 나의 든든한 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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