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스크랩] 기회는 왔을 때 꽉 잡아야 (555회)

凡草 2014. 1. 24. 15:11

 

 

 

 

 

 

 

< 범초산장 일기; 555회>

 

기회는 왔을 때 꽉 잡아야

 

< 2014년 1월 24일, 금요일, 맑음 >

 

지난 1월 20일에 있었던 일이다.

토요일에 대학 동기들과 고성 연화산을 다녀왔기 때문에 월요일에는 비가 온다는

예보가 있어서 집에서 쉬려고 마음 먹었다.

    

월요일 아침에 일어나 보니 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있었다.

비가 내리는 것을 보고 있으니 문득 가지산 생각이 났다.

부산이나 양산에 비가 오면 가지산에는 눈이 내린다.

비를 맞고라도 가지산에 가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거기는 눈이 엄청 올 텐데.....

그냥 집에서 쉬자,

아냐 모처럼 월요일에 비가 오는데 가보자, 이런 날이 잘 있을까?

두 가지 생각이 엇갈렸다.

 

    

 

그러다가 등산을 가기로 결정했다.

1월 26일에 한라산 등반을 앞두고 있는데 훈련도 할겸 가기로 했다.

기회의 신은 앞머리만 있고 뒷머리가 없어서 눈앞에 왔을 때 잡아야지

머뭇거리다간 놓치기 마련이다. 우유부단한 사람은 언제나 기회를 놓치고

뒤에 가서 후회한다.

나는 후회하는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서 결단을 내렸다.

현대인은 장소를 상실하고 산다는데 도시에 있어봐야 할 게 뭐 있을까?

인터넷 아니면 스마트폰, 텔레비전밖에 더 있나?

책을 읽는다면 몰라도.

무의미하게 시간을 보낼 바에는 밖으로 나가는 게 낫다.

산에 가면 살아있는 나무를 만나고, 움직이는 바람을 만난다.

새들도 잃어버린 장소를 되찾아 준다.

 

 

 

1월 들어서는 거의 토요일, 월요일 두 번씩 산행을 했다.

등산을 갈까 말까 집에서 망설이는 동안에 시간이 꽤 흘러서 밥을 먹고

배낭을 꾸려 집을 나섰을 때는 10시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양산 신한은행 앞에서 언양 가는 12번 버스를 갈아타고 언양까지 갔는데

가는 동안에 어느새 비가 그치고 햇빛이 비쳤다. 눈을 보려고 나섰는데

해가 나니 맥이 빠졌지만 잔설이라도 보려고 발길을 돌리지 않았다.

 

언양 터미널에서 다시 석남사 가는 버스를 탄 다음에 석남사 주차장에

내렸을 때 시계를 보니 벌써 12시 7분이었다. 점심시간이 다 되었지만

밥을 쌀바위 대피소에서 먹으려고 바쁘게 걸었다.

석남사에서 능선 위에 올라서기까지는 계속 오르막이다.

가쁜 숨을 달래가며 쉬지 않고 올라갔다.

잠시 쉴 때는 바나나와 귤을 먹으며 허기를 달랬다.

운문령에서 오를 때보다는 훨씬 힘들었다.

땀을 닦아가며 열심히 오른 끝에 드디어 능선 위에 올라섰다.

여기까지는 눈이 보이지 않고 여느 평범한 산과 같았다.

혹시 그동안 날이 따뜻해서 산 위에도 눈이 없는 것은 아닐까?

그러면 공연히 헛걸음을 하는 셈인데......

그래도 완전히 헛수고는 아닐 것이다.

눈이 없는 산이라고 운동까지 안 한 것은 아니니까.

눈은 보너스지 최종 목적은 아니다.

    

 

이제 가파른 오르막길은 끝났다.

길이 한결 순해졌다. 급한 오르막길은 없고 서서이 높아진다.

한참 걸으니 눈길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러면 그렇지. 가지산에 눈이 없을 리 있나?

집에서 잠시 머뭇거렸지만 용기를 내어 나서길 참 잘 했다.

 

 

 

하얀 눈길 카페트가 나를 반겨주었다.

지난번에 쌓여 있던 눈은 녹고 새로 내린 눈이 쌓여 있었다.

오늘 새벽에 내린 눈인가 보다. 아무도 밟지 않은 눈길이었다.

    

 

언뜻 보면 똑같은 눈길도 자세히 보면 모두 다르다.

고즈넉한 눈길, 숨어 있는 눈길, 호젓한 눈길, 동화속 같은 눈길,

이야기를 나누며 걷고 싶은 길, 저절로 노래가 나오는 길,

곰곰이 생각하며 걷는 길, 지나간 추억이 생각나는 길 등.....

    

 

부지런히 걸은 끝에 쌀바위 대피소가 눈앞에 보였다.

한겨울에도 점심을 먹을 수 있는 고마운 장소다.

오늘도 라면 한 그릇을 부탁해서 밥하고 먹었다.

 

 

 

 

지난번에 본 풍산개 강아지들은 전부 분양되어 나갔고 어미 개만

쓸쓸하게 남아 있었다. 사람이든 개든 다 키우면 떠나보내야 한다.

언제까지나 데리고 있으려는 것은 부모 욕심이다. 부모 곁을 떠나야

독립심도 길러지고 제 살길을 개척할 수 있다. 부모가 자녀를 끼고

돌면 약해지고 자꾸만 부모에게 의지하게 된다. 부모는 자녀가 어릴 때는

사랑을 베풀고 다 크면 냉정해야 한다.

    

 

따뜻한 난로 옆에서 점심을 맛있게 먹고 되돌아섰다.

오늘은 석남사에서부터 올라왔으니 정상까지 가기는 힘들어서 내려왔다.

내려오는 길은 힘이 안 들어서 편하게 내려왔다.

올라갈 때는 2시간 15분이 걸렸는데 내려올 때는 한 시간 정도밖에

안 걸렸다.

 

 얼마쯤 내려오다가 바위 밑에서 고개를 내밀고 있는 노루발을 보았다.

 하고 많은 자리 중에서 왜 저런 곳에 자리를 잡았을까?

 처음에는 애처롭게 보았지만 오히려 잘 된 일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렇게 단단한 돌 밑에 있으니 누가 밟을 수는 없겠지.

 비나 눈보라도 피할 수 있을 거고.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시련도 행운이 될 수 있다.

 나는 그 노루발을 '행운을 거머 쥔 노루발'로 생각했다.

 튼튼한 집에 사는 노루발아 행복하게 살거라.  안녕!

 

 

 

석남사 주차장으로 내려와 버스를 타고 언양 터미널로 갔는데

갈 때와는 달리 양산 가는 직행버스를 탔더니 30분 만에 돌아올 수 있었다.

다음에는 언양 갈 일이 있으면 직행 버스를 타야겠다.

도시에는 아직도 해가 쨍쨍 내리쬐고 있었지만 하얀 눈길을 걷고 오니

부러울 게 없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지만 개선장군처럼 목욕탕으로 들어가는 이 기분!

누구나 돈만 내면 들어가는 목욕탕이지만 저들과 내가 어찌 똑같으랴.

이런 알량한 자부심이라도 갖고 있어야 다음에 또 산에 갈 거 아닌지?

목욕탕 물이 콸콸콸 흐르며 피로를 씻어준다.

그래, 역시 너는 알아주는구나!

                         (*)

    

출처 : 글나라
글쓴이 : 凡 草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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