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내가 좋아하는 밥상 (591회)
<범초산장 일기; 591회>
내가 좋아하는 밥상
<2014년 8월 10일, 일요일, 흐리고 비>
내가 주말마다 범초산장으로 가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몇 가지만 들어보면,
첫째, 공기 좋고 물 좋은 곳에서 느긋하게 쉴 수 있고, 둘째, 꽃과 나무를 가꾸며 생명이 왕성하게 뻗는 것을 즐기고, 셋째, 내가 좋아하는 나물과 약초를 먹을 수 있고, 넷째, 적당한 노동을 하며 땀을 흘릴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하얀 쌀밥을 별로 좋아하지 않고 고기도 자주 먹지는 않는다. 다른 사람과 같이 식당에 가서 밥을 먹어야 할 때를 빼곤 내가 직접 밥을 해서 먹는다. 현미쌀에 쥐눈이콩, 팥, 녹두, 수수, 율무 등을 넣고 뽕잎이나 뽕잎 가루를 넣어서 밥을 한다. 그러면 밥이 찰지고 쫀득쫀득하다. 이런 밥을 먹어야 제대로 밥을 먹은 것 같다.
반찬은 김치는 없어도 되지만 나물은 꼭 있어야 한다. 취나물, 가지, 호박, 무, 쇠비름, 비름, 상추, 차조기 등을 나물로 무치고 삼백초, 당귀, 천궁, 박하, 차조기, 상추, 깻잎 등을 쌈으로 싸 먹는다.
고기는 가리지는 않지만 생선이나 해산물을 더 좋아한다. 해산물 중에 내가 특히 좋아하는 것은 두투와 미역귀다리다. 두투는 구하기가 어려워서 잘 먹지 못하고 미역귀다리는 말려둔 것을 사두었다가 물에 불려서 데치거나 그냥 먹어도 맛있다. 미역귀다리를 물에 불리면 찐득찐득한 진이 많이 나오는데 이게 별미다.
민들레나 씀바귀, 왕고들빼기, 뽕잎, 초롱꽃, 엉겅퀴 등을 잘라보면 하얀 액이 나오는데, 이걸 ‘실리마린’이라고 한다. 실리마린은 사람 몸에 아주 좋다. 염증을 낫게 하고 암도 예방해준다. 나는 실리마린이 든 나물과 약초를 좋아하기 때문에 미역귀다리도 비슷한 느낌이라 잘 먹는다. 김씨라서 김은 물론 좋아하고.....
과일은 무엇이든 좋아하지만, 여름에는 토마토, 겨울에는 사과를 즐겨 먹는다. 과일이 없을 때는 오이나 가지를 대신 먹기도 한다.
나는 지금은 건강하지만, 젊을 때 몇 번이나 수술을 받은 적이 있어서 가능하면 건강을 위한 밥상을 차린다. 소금은 적게 넣어서 싱겁게 먹고 식초를 넣는 반찬을 만들어 먹는다.
위에 좋은 예덕나무
또 한 가지 식성으로 굳힌 것이 있는데, 되도록이면 섬유질이 많은 음식을 먹는다. 부드럽고 소화 잘 되는 것보다는 아주까리, 호박잎, 상추, 취나물, 톳, 미역귀, 금초(꼬시래기), 시레기 등을 자주 먹는다.
사람이 편하고 부드러운 것만 좋아하다 보면 그게 쌓여서 한꺼번에 큰 고생을 하게 될는지도 모른다. 평소에 운동하면서 땀 흘리고, 억세고 질긴 것을 먹어야 병에서 멀어질 수 있다. 진리는 먼 곳에 있지 않다. 비싼 것보다는 싸고 흔한 것, 화려한 것보다는 소박한 것이 건강에 더 좋다. 눈과 입에 좋은 음식만 찾지 말고, 장과 변까지 생각해야 한다.
차는 가끔 커피를 마시긴 하지만 자주 마시는 차는 내가 직접 만든 꽃차들이다. 오늘은 원추리 꽃차를 마셨다.
칡꽃
동그라미 계원이 범초산장에 놀러 와서 심심풀이로 작은 댐을 만들었다. 물막이 작업을 해서 물을 가두어 놓고 더위를 식혔다. 물속에 발을 담그고 장어를 구워 먹고 놀았다.
이홍식씨가 만들어 온 숫돌 받침대
나는 채소에 약을 안 치려고 했지만 아내가 빨간 고추를 만들기 위해서는 노린재를 잡아야 한다고 엄명을 해서 어쩔 수 없이 천연 농약을 만들어서 쳤다. 식초 반병과 매실 엑기스 한 컵, 미국자리공 으깨어 우려낸 물을 혼합해서 12리터 천연 농약을 만들었다.
작은 분무기가 자주 고장 나고 불편해서 35000원 주고 12리터짜리 분무기를 새로 샀다. 등에 지고 쳐 보니 아주 편했다. 왼손으로 공기를 공급하고 오른손으로 뿌리면 끝이다.
물총 쏘듯이 치익치익-. 야, 재미있다! 12리터가 눈깜짝 할 사이에 동이 났다. 이제 약치는 일을 놀이처럼 즐길 수 있게 되었다.
산장에 갈 때마다 호박만 보면 기분이 좋아진다. 올해는 호박이 잘 되어 몇 개를 키우고 있는데 보는 그 자체만으로도 기쁨을 준다. 참 신기한 일이다.
풍선 덩굴
당장 나에게 아무 것도 안 주는데 왜 이렇게 기분이 좋은 걸까? 언젠가 먹을 상상을 하지 않는데도 그냥 좋다. 호박만 보면.
더덕꽃
연꽃이 피더니 연밥이 영글어 가고 있다. 조그만 연못에서 연밥을 만든 연꽃도 대단하다. 널 심기만 했는데 잘 자라서 꽃을 피우고 연밥을 열다니! 네 할 일을 알아서 척척 하는구나.
등골나물 꽃
고추나물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