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누린내풀, 냄새는 나쁘지만, (594회)
<범초산장 일기; 594회>
누린내풀, 냄새는 나쁘지만,
<2014년 8월 28일, 목요일, 구름>
범초산장에 누린내풀이 꽃을 피웠다. 누린내풀이 아직 어릴 때는 도무지 무슨 풀인지 알 수가 없었다. 들꽃 전문가에게 물어도 왕모시풀인지 뭔지 잘 모르겠다고 그 이름 모를 풀이 꽃을 피우니 비로소 이름이 밝혀졌다. 꽃은 이름표와 같다. 잎만 보고는 알 수 없는 풀도 꽃을 보면 이름을 알 수 있다. 사람이나 풀이나 똑같다.
사람도 목표를 이루어 성공하면 꽃을 피웠다고 하고 풀도 꽃을 피워야 씨를 맺어 다음 생을 기약할 수 있다.
<누린내풀>
줄기와 잎에서 누린내가 난다고 해서 이런 이름이 붙었는데 냄새는 나쁘지만 꽃은 아주 이쁘다. 냄새가 좀 나면 어떻겠는가? 꽃이 이쁘니 그만한 것은 참을 수 있다.
사람 역시 그러하리라. 얼굴이 못 생겼거나 어떤 결점이 있더라도 하는 짓이 이쁘고 장점이 많으면 좋게 봐줄 수 있다. 한두 가지 단점 때문에 그 사람 전체를 나쁘게 보면 안 되겠다. 나 또한 몇 가지 결점이 있지만 장점을 더 많이 늘려 나가도록 노력해야겠다.
배유안씨가 새로 펴낸 <뺑덕>을 축하하기 위해 몇 사람이 배유안씨 집에 모였다.
저녁을 같이 먹고 <뺑덕>에 대한 이야기를 먼저 나누고, 그 다음에는 <못골 뱀학교>, <우주목욕선 푸른고래호>, <콜라요괴>등에 대하여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모처럼 문우들과 광안대교가 내려다보이는 집에서 맛있는 저녁을 같이 먹고, 동화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니 행복했다. 앞으로도 이런 자리가 자주 있기를 바라면서 집으로 돌아왔다.
배유안씨 서재
지난 8월 25일에는 등산을 못 가고 그 대신 사하구에 있는 사하초등학교에 가서 동화시가 있는 정원 제막식에 참석했다.
이 행사는 사하초등학교와 부산아동문학인협회가 힘을 모아 이루어졌는데, 부산의 동화작가들이 짧은 동화를 써주고 사하초등학교에서는 이쁜 작품으로 만들어 정원에 게시했다.
사하초등학교는 역사가 오래 된 학교라 큰 나무가 많아서 정원이 아름다웠는데 그 안에 동화시를 게시하니 보기에도 좋았다.
부산에서는 동화시를 이처럼 정원에 게시한 학교가 처음이라 뜻깊은 행사였다.
이번에 게시된 작품들을 파일로 모두 받아 소개한다.
<사과가 하는 말> 정진채
가을이 되자 사과가 빨갛게 익었어요. -맛있게 먹어드릴게요. 아빠 까치가 말했지. -남들이 다 따먹는데도 구경만 하는 사과나무는 바보인가 봐. 엄마 까치도 깔보는 말투로 깍깍거렸지. 사과나무는 까치가 떠들거나 말거나 파란 하늘만 보고 있었어.
한 떼의 아이들이 사과밭에 들이닥쳤고 주인아저씨와 사과나무도 반가운 낯빛이었단다. -자아, 어서 많이들 먹고 훌륭한 사람이 되거라. 주인아저씨가 사과를 나누어 주었지. 한 아이의 입 속으로 들어가던 사과 하나가 달콤새콤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어. -자아, 우리는 아이들의 피가 되고 살이 되는 거야. 그리고 함께 훌륭한 사람이 되는 거야.
<학의 울음> 솔마 김상남
아득한 옛 적 하늘과 땅의 문이 열리자 여기저기 봉우리가 치솟고 골짝마다 물이 넘쳤다. 커다란 새는 깃을 칠 자리를 찾아 두리번거렸다. 강머리에는 갈대가 하늘거리고 개펄에는 지렁이가 꼬물거리고 모래톱은 햇볕을 뿜어댔다. 새가 날갯죽지를 털며 큰소리를 내자 온 사방이 울렸다. 수십억 년 흐른 지금도 가만히 귀를 쫑그리면 들린다. 학의 울음소리가 들린다. 푸른 하늘을 날고 싶은 학이 날갯죽지를 펼치듯 책장을 넘기는 소리 글 읽는 소리 -힘이 되고 빛이 되리라 학의 꿈을 지닌 아이들의 재잘거림.
<일하는 나무> 한샘 윤옥자
하얀 눈이 펄펄 내리는 추운 겨울이었어요. 여름엔 초록 나뭇잎 옷을 겹겹이 두껍게 껴입더니 앙상한 가지만 남은 나무가 가여웠어요. “나무야, 너 바보니?” “아니.” “나무야, 춥지 않니?” “춥긴 더운데.” 진짜 바보 같아 또 물어 봤어요. “어째서 덥지?” “땅속에서 내 뿌리가 열심히 일을 하니까 덥지.” 너무나 신기해서 좀 큰 소리로 급히 물었어요. “뿌리가 땅 속에서 무슨 일을 하지?” “봄에 싹을 틔우고, 가을에 열매 맺을 준비를 한단다.” 빈이는 너무나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었죠. “무슨 준비를 어떻게 하는지 설명 좀 해봐.” “잔뿌리들은 여기저기서 물을 길어 올리고, 큰 뿌리들은 거름을 빨아올려 나뭇가지들에게 영양을 공급해 준단다.” “옳아. 그러니 정말 많이 덥겠구나.” 빈이는 큰 소리로 외쳤어요. “한겨울에 발가벗고 일하는 나무 정말 장한 나무.” 그렇지만 속으론 부끄러웠데요. 왜 그럴까요?
<민들레가 곁을 지키다> 김문홍
엄마와 함께 부산역 광장을 지나치다 아직 차가운 맨바닥에 누워 잠을 자는 노숙자 아저씨 모습에 발걸음이 멈추고 때에 절은 철 지난 옷이 추워 보이는데 그 옆에 노란 민들레가 맨발을 지키고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는데 오직 혼자서 호호 따사한 입김으로 맨발을 녹여주니 햇살도 그 모습이 너무 대견스러운지 그들 가까이 다가가려 안간힘을 쓰는 어느 봄날의 아름다운 풍경 하나.
<털보 선장의 배> 배익천
잔잔한 바다의 해질녘은 황금벌판의 해질녘 화물선 큰바다호의 털보 선장은 해질녘 바다를 제일 좋아했습니다.
평화롭던 어느 날, 커다란 해를 먹고 붉은 노을을 토해 내던 아름다운 바다가 조금씩 흔들리다가 마침내 허옇고 커다란 입을 벌린 산으로 변했습니다. “구명보트를 내려라!” 커다란 바다는 큰바다호를 삼켰다가 거세게 토해 내기를 되풀이했습니다. “선장님도 보트를 타십시오!” “이 배는 내 몸이야. 빨리 내려!” 화물선 큰바다호가 기억하는 털보 선장의 마지막 목소리였습니다.
스믈스믈스믈―. 이상한 소리와 함께 크고 작은 불빛이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깜빡이며 점점 커다랗게 다가오는 불빛은 이상하게 생긴 물고기, 수천수만 마리의 물고기 머리에서 나오는 불빛이었습니다. 고기떼는 한 덩어리 커다란 불빛이 되어 선장실로 쳐들어갔습니다. “훌륭한 먹이 냄새가 난다!” “안 돼. 멈춰라!” “너희들이 아무리 흉측한 물고기일지라도 내 말을 새겨 들어야해. 여기에는 너희들이 상상도 못할 만큼 훌륭한 분이 계시다. 그 분은 많은 선원들을 살리고, 나를 위해 이 깊은 바다에 남으셨어. 눈도 감지 못한 채…….” 흉측한 물고기들은 무엇인가 깊이 생각하는 듯 눈만 껌뻑거렸습니다. “너희들이 생각을 할 줄 안다면, 우리 털보 선장님이 편히 눈을 감도록 해줘.” “그런 일이라면 얼마든지 할 수 있어.” 큰 불빛이 앞장서자, 다른 불빛도 함께 따랐습니다.
<산속의 배> 김영호
햇살이 화살처럼 내리꽂히는 한낮입니다. 초록 들판을 가로 질러 트럭 한 대가 달립니다. 아스팔트길이 비좁습니다. 길가의 풀잎들이 화들짝 놀라며 아우성을 칩니다. 맑은 냇물 흐르는 다리를 건너고 꼬불꼬불 산 고개도 넘습니다. 트럭 위에 실린 낡은 어선 한 척이 하늘 구경을 합니다.
나는 이렇게 산으로 왔습니다. 낡고 쓸모없어져 산으로 왔습니다. 산속의 양어장을 지키는 뗏목이 되었습니다. “야아, 배다 배!” “바다에 있어야 할 배가 산으로 왔네.” 아이들은 나를 보고 이렇게 소리칩니다. 그 때마다 나는 바다가 그립습니다. 내 이름을 불러주던 바닷가 아이들이 보고싶습니다. 그러나 나는 슬프지 않습니다.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있기에 외롭지도 않습니다. 산속에 있지만 오늘도 나는 바다를 꿈꾸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오늘 어떤 꿈을 꾸고 있나요? 발은 땅을 딛고 살지만 꿈은 하늘만큼 높은 곳에, 그런 행복한 꿈을 꾸고 있나요?
<말의 씨앗> 손수자
모두가 잠든 밤이었어요. “미워” 하는 말의 씨앗이 꽃밭으로 소르르 내려앉았어요. “싫어” 하는 말의 씨앗도 그 곁에 팔랑 내려앉았지요. 피곤한가요? 달님이 물었어요. 아니에요, 너무 힘들고 괴로워서요. 우리도 기분 좋은 말이 되고 싶거든요. 기분 좋은 말이 되고 싶다고요? 그건 자신이 노력하는 것뿐이에요. 기분 좋은 말들 곁에서 가만히 지켜보세요. 기분 상하게 하는 말들이 두더지처럼 치고 올라와도 얼른 알아차리고 휘파람 불듯 따라 해 보세요. 네, 달님! 노력할게요. 그래요, 늘 지켜볼게요.
<여름 냇가> 凡草 김재원
냇가에 물풀들이 자란다. 봄이 되면 물고기들이 물풀 밑에 알을 낳는다. 진흙 속에 모래 속에 수많은 알주머니를 숨겨 놓는다. 봄비가 내리고 햇살이 따뜻하게 품어주면 아기 물고기들이 태어난다.
꿈틀꿈틀, 불끈불끈. 아기 물고기들은 헤엄치며 놀다가 배가 고프면 먹이를 찾는다. 물벼룩, 물풀, 새우, 이끼, 장구벌레, 실지렁이 등... 물속에는 먹을 게 하늘의 별만큼 많다.
아기 물고기들이 점점 살이 찌면 아이들이 몰려온다. 이른 아침부터 해지는 저녁까지 한 다래끼씩 잡아 간다. 그래도 물고기들은 없어지지 않는다. 비늘이 끝없이 반짝거린다.
우르르 쾅- 장대비가 내리고, 윙윙윙- 태풍이 불어도, 물고기들은 휩쓸려 가지 않는다. 냇물이 굽이굽이 흘러가듯이 물고기들도 생명의 숨결을 줄기차게 이어간다.
실잠자리 한 마리가 날아와 물풀 끝에 앉아 물속을 들여다본다. 돌 틈 사이로 진흙 사이로 수많은 알들이 방울방울 눈 뜨고 있다.
글나라에 다니는 아이들 방학 중에도 열심히 와서 책 읽고 글을 쓴다.
우리집 고양이 <달리> - 장난을 잘 치고 호기심이 많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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