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凡草 텃밭 이야기 631회) 봄날의 공연
(凡草 텃밭 이야기 631회)
2015년 3월 15일, 일요일, 맑음
<봄날의 공연>
어제는 아침부터 밤까지 하루가 참 길었다. 아침을 먹고 석산에 가서 단삼 모종을 심었다.
그동안 워낙 많은 것을 심어서 심은 곳을 파고 또 심는 일마저 있었다. 아내는 이런 나를 보고 구획을 잘 나누어서 짜임새 있게 하라고 누누이 부탁하지만, 나는 생겨 먹은 게 그렇지를 못해서 그냥 대충 대충 여기 저기 심는다. 그러다 보면 질서가 없긴 하지만 텃밭을 어떻게든 채워 나간다. 남 보기 좋게 하려고 텃밭을 가꾸는 게 아니고 내가 알아서 뜯어 먹고 잘 이용하기만 하면 되니까 큰 문제는 없다. 문제는 좁은 땅에 온갖 것을 많이 심어서 이제는 더 심을 것이 없는데도 자꾸 심고 있으니 점점 포화 상태가 되고 있다. 이제는 심는 욕심을 좀 자제해야 할 것 같다.
미니 창고를 끈으로 묶어서 안정감 있게 만들어 놓았다. 안에는 싱크대 공장에서 공짜로 주워온 나무를 깔아서 깨끗하게 해놓았다. 비가 한 번 와야 안에서 비를 피하며 커피든 약초차든 마실 수 있을 텐데.... 은근히 비가 기다려진다.
블랙커런트에서 잎이 나오고 있다.
원동에 매화꽃이 가득 피었다.
텃밭을 돌보다가 집에 가서 점심을 먹고 이상미씨를 만나러 장전동으로 달려갔다. 지하철 거리가 멀어서 지각이다. 한정기씨가 남편인 박종규씨 사진 전시회 개막할 때 와서 축사를 해달라고 했는데, 지각을 하는 바람에 겨우 얼굴만 내밀었다. 잘 찍은 사진들이 많아서 전문 사진작가 못지 않았다. 박종규씨는 아내가 동화를 잘 쓰도록 배려해주었고, 한정기씨는 남편이 사진을 찍도록 같이 따라다니는 등, 부부가 화합하며 살아온 날들이 참 아름답다.
박종규씨는 그전에 등산도 같이 하고 야생화도 보러 간 적이 있는데 틈틈이 취미 삼아 찍은 사진 솜씨가 늘어서 이렇게 전시회까지 열게 되었다. 한정기씨는 동화작가로 남편은 사진작가로 함께 예술을 하는 모습이 보기 좋다.
김문홍, 김재원, 한정기, 박종규, 이상미
사진 전시회를 보고 김문홍 박사를 따라 남천동에 있는 공간소극장에 연극을 보러 갔다. 신인들이 두 달 동안 연기 연습을 한 뒤에 처음으로 공연을 하는 날인데 연극 용어로는 워크샵 공연이라고 했다. ‘오토바이 옆에서’라는 연극이었는데 오랜만에 연극을 보니 기대가 되었다.
어두컴컴한 객석에서 연극이 시작되기를 기다리는 시간은 마치 땅속에서 씨앗이 싹이 트기를 기다리는 시간과 같다. 연극 배우들은 주로 지하실에서 연습하고 공연을 하는데, 잠자리가 땅속에서 7년을 보내고 땅 위로 올라가 잠자리가 되는 과정도 흡사하다. 탈피하는 날을 기다리며 진땀 흘리는 배우들. 이윽고 배우들이 나와서 연극이 시작되었다. 영화는 필름이 돌아가지만 연극은 살아있는 사람이 눈앞에 나와서 말하고 움직이며 연기를 한다. 휴대 전화를 무음으로 해놓아야 할 정도로 진지하고 생동감이 넘치는 분위기다.
스토리는 리얼리티가 조금 부족했지만 배우들이 신인답지 않게 열연을 해서 재미있게 보았다. 연극을 보고 느낀 점인데 예전에는 이런 연극을 보아도 그냥 좋다 나쁘다 라고 생각했지만, 동화 공부를 오래 하다 보니 전체적으로 내용 분석이 가능해서 어디가 좋고 나쁜지 이해할 수 있었다.
김문홍 박사 덕분에 연극을 보고 나서 가까이에 사는 배유안씨와 함께 술을 마시러 갔다.
가오리찜을 안주로 시켜서 술을 마시며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연극 이야기, 배유안씨 강연 다닌 이야기, 동화 이야기 등... 우리들의 화제는 아주 다양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어졌다. 시간이 꽤 흘러서 다음을 기약하고 헤어졌다.
나는 지하철을 타고 남천동에서 부산대양산캠퍼스역까지 오는 동안에 한영미씨가 보내준 <나는 슈갈이다>를 읽었다. 반 친구를 따돌리는 학교 폭력을 소재로 썼는데 퍽 리얼해서 마지막에 어떻게 해결이 될는지 궁금하였다. 나에게 인터넷으로 동화를 배웠던 한영미씨가 이제는 중견 작가가 되어 좋은 동화책을 많이 쓰고 있어서 반가웠다. 집에 돌아오니 밤 10시 50분이었다. 아침부터 하루 종일 밖에서 보내고 잠을 자러 집으로 들어왔다. 날씨가 풀린 봄이어서 가능한 일이다. 몸과 마음에 봄빛이 가득한 날이었다.
오늘은 산장에 가서 동그라미 계원들과 맛있는 고기도 먹고 즐겁게 보냈다. 할미꽃 꽃대가 힘차게 올라오고 있었다. 봄햇살이 자석처럼 할미꽃을 위로 끌어 올리고 있다.
삼잎국화와 머위가 막 올라오고 있어서 나물로 먹으려고 뜯었다. 매화꽃도 슬슬 피어나고 있다.
드디어 내가 좋아하는 봄이 막을 열었다. 산장에서 봄나물을 즐겨 먹는 시즌이 시작되었다. 겨우내 기다려온 봄날의 공연이다. 초록문을 열고 들어가면 나만의 객석이 놓여있다. 하늘 감독의 지도 아래 새싹 배우들이 펼치는 열연을 본다. 내가 애써 만들어 놓은 무릉도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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