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凡草텃밭 이야기 666회)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 하는 채소들
(凡草텃밭 이야기 666회)
2015년 10월 10일, 토요일, 맑음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 하는 채소들>
범초산장에서는 배추를 심으려고 8월 중순에 고추와 토마토, 가지 등을 정리했지만, 범초텃밭에 있는 고추와 가지는 몇 포기 되지 않아서 그냥 놓아두었더니 \ 날씨가 쌀쌀해졌는데도 열매가 열리고 있다. 오늘 아침에는 부산 지방도 최저 기온이 8도까지 내려가서 제법 춥게 느껴졌다. 그런데도 밭에 있는 채소들은 완전히 얼기 전까지는 춥다 소리하지 않고 조금씩 크고 있다.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 하는 채소들이 훌륭하다.
오늘도 범초텃밭에 가서 마늘 모종을 심었다. 범초텃밭은 우리 아파트에서 4킬로미터 떨어져 있고, 범초산장은 15킬로미터 거리다. 부추처럼 여리게 보이던 대파가 점점 제 모습을 갖춰 가고 있다. 텃밭 입구에 심어 놓아서 갈 때마다 제일 먼저 들여다본다. 대파야, 안녕! 그동안 더 자랐구나! 반갑다.
이제 마늘은 어느 정도 심은 것 같다. 비가 와야 마늘이 싹을 틔울 텐데 가을 가뭄이 심하다. 마늘을 심느라고 잡초가 우거진 곳을 많이 정리했다. 아직 정리를 덜한 곳이 조금 남아 있는데 양파 모종을 심을 때 마저 손을 볼 생각이다.
텃밭 한 구석에 구절초가 피었다. 꽃은 먹는 것은 아니지만 마음을 넉넉하게 해주니까 텃밭에 꽃도 심어놓을 필요가 있다.
다음은 범초산장 소식. 텃밭 가꾸랴 산장 찾아가서 돌보랴 바쁘지만 양쪽 모두 흙을 만지며 놀 수 있어서 즐겁게 오고 간다. 텃밭은 주로 강의가 없는 평일 오전에 가고, 산장에는 주말에 간다. 어제 혼자 산장으로 가서 하루 자고 왔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저수지에 물안개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여름에는 없더니 날씨가 추워지니까 볼 수 있는 현상이다. 차가운 물에 청둥오리도 몇 마리 헤엄치고 있었다.
배추는 엄청 잘 크고 있다. 벌써 한 포기가 한아름이다. 달팽이와 배추벌레를 잡아주고 배추 포기 옆에 고개를 내민 풀을 뽑아주었다. 무도 하루가 다르게 커가고 있다.
산장에 단풍이 조금씩 들고 있다. 비가 안 오는데도 저수지 물은 생각만큼 마르지 않았다. 저수지와 계곡을 끼고 있는 천혜의 요새같은 산장이라 볼수록 정겹다.
까마중이 계속 열리고 있다. 아침을 먹고 과일 대신 한 줌 따서 먹었다. 쉬지 않고 열매를 매다는 까마중에게 미안한 마음마저 든다. 여태 고생 많이 했으니 이젠 좀 쉬어도 된다. 그만 열어라.
산장 위에 있는 약수터로 물을 뜨러 갔다. 약수터 부근에 또 하나의 저수지가 있는데 산속이라 호젓하다. 가을답게 나뭇잎이 동동 떠 있는 모습이 그림 같다.
산골짜기에는 어디서 흘러 내려오는지 물이 졸졸 흐르고 있다. 산은 도대체 물을 어디에 간직했다가 내려 보내는지 비가 오지 않는데도 물이 흘러내린다. 산은 저금통이다. 물을 간직해두는. 숲이 울창해야 물도 더 많이 흐를 것이다. 나는 글을 쓰느라 종이를 많이 쓰기 때문에 산장에라도 나무를 수십 그루 심었다. 해마다 나무를 꾸준히 심었는데 더 심을 자리가 없을 때까지 한 그루라도 더 심을 생각이다.
도라지집 상추밭이 보기 좋아서 한 장 찍었다. 그전에는 도라지를 많이 키우더니 별 이익이 없는지 요새는 상추를 심고 있다. 잘 큰 모습을 보면 내 상추밭이 아니라도 기분 좋다. 나는 화분 몇 개에 상추를 기르고 있는데 나와 아내가 뜯어 먹을 정도는 된다.
녹차 나무에 꽃봉오리가 엄청 많이 달려 있더니 꽃이 계속 피고 있다. 유진씨가 갖다 준 두 그루도 살아난 것 같다. 내년 봄에는 녹차를 자주 마실 수 있겠다.
머위는 봄이 아닌데도 잎이 무성하다. 가을에는 안 뜯어 먹어보았는데 오늘 바빠서 못 먹었다. 다음에 오면 시험 삼아 먹어봐야겠다. 가을에는 어쩐지 억셀 것 같아서 안 먹어보았다.
바위취가 많이 번졌다. 이것도 내년 봄이 기대된다. 아니지 봄까지 기다릴 게 아니라 다음주에 한 번 먹어봐야겠다.
금전초도 구해서 심었는데 제법 번졌다. 한지에 먹물 번져 가듯 마당으로 막 번져 가고 있다.
염증이 생기면 먹으려고 느릅나무를 사서 심었는데 두 그루는 계곡 근처에 심었다가 폭우로 휩쓸려 가고 밭에 심은 한 포기가 살아 남았다. 이젠 꽤 많이 컸다. 이 나무는 계속 잘 클 것 같다. 오늘 가지도 정리할겸 물 끓여 먹으려고 몇 가지 잘라왔다.
샤프란 구근을 5개 사서 9월초에 심었는데 산장에 갈 때마다 들여다봐도 싹이 나오지 않더니, 오늘 들여다보니 이제 촉이 나오고 있다. 참 더디게 나온다. 그러고 보면 무슨 일이든 때가 되고 무르익어야 제대로 되는가 보다. 재촉한다고 빨리 나오는 것도 아니고 서두른다고 제대로 되는 것도 아니다. 지그시 기다렸더니 때가 되니 올라온다. 이런 모습을 보면 다음주가 기대된다. 내가 없는 동안에 얼마나 자랐을까? 여러 가지를 심어 놓으면 이렇게 기대할 것이 많아진다. 사람은 기다리면서 살아야 사는 보람이 있다. 어떤 사람은 복권을 사는 재미로, 사서 맞춰 보는 재미로 한 주일을 보냈다는데 나는 산장과 텃밭에 가서 식물이 크는 것을 보는 재미로 산다. 사람은 머리속에서 자라기 때문에 표가 나지 않으니 사람 키우는 재미는 식물만큼 느낄 수가 없다. 어느 날 갑자기 상을 받으면 그때야 성장한 줄 알지만 평소에는 얼마나 늘었는지 가늠하기가 힘든다.
도담 안덕자씨가 두 번째 낸 동화책을 들고 화명동 달님반에 왔다. 부산문화재단에서 올해의 작품으로 뽑은 <아빠와 나의 행복한 방>이다. 도담은 글나라에 12년 동안 다녔는데 내가 아끼는 제자 중의 한 명이다. 도담은 남편 말고는 가족 모두를 글나라에 보낸 것으로 유명하다. 인성도 좋아서 문우들과도 두루 잘 지낸다. 신세계에도 들고 왔는데 달님반까지 들고 와서 고마웠다.
화명동 동화교실 달님반에는 내가 6학년 때 가르쳤던 지은이가 9월부터 다니고 있다. 초등학교 때 가르친 제자가 동화교실에 배우러 온 것은 지은이가 처음이다. 지은이를 보니 6학년 때로 타임머신을 타고 돌아간 듯 하다. 저녁 시간에 다니기 힘들 텐데 멀리서 용기를 내어 찾아온 지은이가 참 고맙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