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凡草텃밭 이야기 701회) 잎도 꽃 못지 않다
(凡草텃밭 이야기 701회) 2016년 4월 22일, 금요일, 맑음
< 잎도 꽃 못지 않다>
메꽃 모종을 20포기 정도 구해서 4월 20일에 석산 범초텃밭에 심었는데 오늘 가보니 살아나고 있었다. 밀양 노루실 마을에 전원주택을 갖고 있을 때 대문 앞에 메꽃 싹이 많이 돋아나서 나물로 뜯어 먹은 적이 있다. 그때는 아무 생각 없이 먹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메꽃에 아주 좋은 성분이 많아서 어지간한 약초보다 나았다. 그래서 많이 번식시켜 놓으려고 이번에 모종을 구해서 심었다. 내가 원하는 것이 있으면 항상 관심을 갖고 구하려고 애를 쓰니 결국은 내 손에 들어왔다. 두드리면 열리고, 애써 찾으면 반드시 손에 넣을 수 있다.
범초산장에 여러 가지 꽃이 피어나고 연두빛 잎들이 번져가고 있다. 소설가 이윤기씨가 쓴 책 가운데 <잎만 아름다워도 꽃 대접을 받는다>가 있다. 그 책에 이런 말이 나온다. "나는 꽃이 아닌 것이 거의 확실하다. 그러나 꽃 대접 비슷한 걸 더러 받은 걸 보면, 잎이라도 예쁘게 피워 올리려고 무진 애를 쓰기는 한 모양이다. 그러면 되었지 뭐." 모두가 꽃이 되려고 애를 쓰고, 꽃이 되어야만 귀한 대접을 받는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꽃이 되지 못하더라도 최선을 다했다면 잎도 꽃 못지않다. 잎이 아름답다면 꽃 대접을 받을 수 있다. 시시한 꽃보다는 오히려 잎이 더 이쁠 수도 있다. 잎으로 살더라도 자책하거나 부끄러워 할 필요는 없다. 잎이 없으면 꽃도 있을 수 없다. 잎은 스스로를 자랑스러워해야 한다.
뽕잎이 올라왔다. 뽕나무에 가서 뽕잎을 따고 있는데 눈앞에 굵은 뱀이 스르르 기어가고 있었다. 독사 같았다. 나는 동물을 좋아하는데 유독 뱀만은 싫어한다. 차라리 쥐 열 마리를 가까이 할지언정 뱀은 한 마리라도 멀리 하고 싶었다. 독이 있어서 사람을 물기 때문이다. 독이 없는 뱀이라도 징그러웠다. 뱀이 부근에서 어정거리면 언젠가는 하우스 안으로 들어올 수도 있다. 괭이를 휘둘러 멀리 쫓아버렸다.
범초산장에서 <A touch of spice>라는 그리스와 터키의 합작영화를 보았다. 음식과 향신료를 소재로 애잔한 사랑 이야기를 펼쳐 놓은 영화였다. 그리스판 시네마천국을 보는 것 같았다. 이 영화 속에 이런 대사가 나온다. <하늘엔 우리 눈에 보이는 것 외에도 보이지 않는 것들이 많아. 언제나 남들이 못 보는 것을 얘기하렴. 안 보이는 것들의 얘기를 사람들은 듣기 좋아해. 맛있는 음식처럼. 소금과 후추는 안 보여도 맛이 있으면 좋아하잖니?> 글을 쓸 때도 남들이 미처 못 보는 것을 써야 좋은 평을 받는다. 남들이 안 하는 상상을 할 수 있어야 하고. 연잎이 올라오고 있다
2월 28일에 범초산장에다 노나무를 심어 놓았는데 아무리 봐도 싹이 나지 않았다. 저 나무가 죽은 것은 아닐까? 다른 나무는 싹이 나는데 나지 않으니 의아했다. 그런데 4월 17일에 보니 이제야 좁쌀만한 싹이 나오고 있었다. 아하, 노나무도 추위를 싫어하는 모양이구나. 날씨가 따뜻해져야 싹을 내민다.
호박은 4월 20일 이후에 심어야 하는데 지난주에 심었다. 아직 죽지는 않았다. 호박을 키우는 방법은 다음과 같다. 호박 구덩이를 한 달 전에 파서 거름을 충분히 넣어준다. 모종을 심을 때는 하나만 외톨이로 심으면 잘 크지 않는다. 반드시 세 포기 이상을 가까이 심어 놓아야 서로 의지하며 잘 큰다. 그리고 호박은 흙바닥에 바로 심는 것보다 짚을 깔아주어서 폭신하게 해주는 것이 좋다. 방석을 깔아주듯이. 흙바닥보다는 조금 높게 북을 만들어주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평지보다는 언덕이나 경사진 곳을 타고 뻗어가도록 해야 한다. 나는 호박잎 쌈을 좋아하기 때문에 범초산장에 9포기, 범초텃밭에도 9포기를 3-4포기씩 나누어 심었다.
석산 범초텃밭에 뽕나무가 있었는데 그 전 주인이 학대를 하여 뽕나무가 다 죽어가던 것을 내가 살려내었다. 뽕나무는 은혜라도 갚으려는 듯이 잎을 싱싱하게 매달았다. 고맙다, 뽕나무야 잎을 조금 따갈게. 나물로도 무쳐 먹고 뽕잎밥도 해먹을 수 있어서 감사했다. 블랙베리 꽃이 피었다 돌나물을 일부러 키우지 않았는데도 저절로 수북하게 자랐다. 뿌리만 빼고 손톱으로 끊어서 초장에 무쳐 먹었더니 밥도둑이다. 새콤달콤하고 아삭아삭한 돌나물. 잎에 딸려 나온 뿌리는 버리지 않고 돌이 많은 곳에 다시 심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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