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 범초텃밭 이야기 706회 ) 백초 효소 담는 법
2016년 5월10일, 화요일, 비
하얀 꽃이 보기 좋고 향기도 그윽하다. 해마다 이맘때쯤이면 아카시 꽃 효소를 담는다. 5월 8일 어버이날 전후로 일주일 정도가 아카시 효소를 담기에 가장 적합한 기간이다. 이때를 놓치면 아카시 꽃이 다 져 버려서 효소를 담을 수가 없다. 5월 7일 토요일에 한정기씨가 남편 박종규씨와 함께 범초산장을 찾아왔다. 오랜만에 보아서 반가웠다. 정기씨는 10년째 효소를 담아왔다고 했다. 그날도 나를 만나 안부도 묻고 효소를 담으려고 찾아온 것이었다. 우리는 5월 하순에 하려고 했는데 정기씨가 효소를 담는다고 해서 떡본 김에 제사 지낸다고 같이 효소를 담기로 했다. 서로 이야기를 나누며 재료를 구하러 다니니까 심심하지도 않고 일도 더 능률적이었다. 정기씨 덕분에 즐거운 놀이처럼 효소 재료를 구해서 좋았다. 내년에도 아카시 꽃이 필 때쯤 또 만나 효소를 같이 담아야겠다. 나는 여태까지 산장에서 구하기 쉬운 쑥이나 삼백초, 삼잎국화 같은 재료로 담았는데 정기씨와 함께 효소 재료를 찾으러 다니다 보니 솔순, 금은화 줄기, 청미래덩굴 등을 구할 수 있어서 이 참에 백초 효소 만들기에 도전해보기로 했다. 나는 야생화에 대해서 제법 알기 때문에 백초 효소 만드는 것은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었다. 먼저 산에서 구할 수 있는 것을 수집한 다음에 산장으로 돌아와서 나머지 재료를 찾았다. 하지만 100가지 재료를 한 번에 다 구하는 것은 시간도 많이 걸리고 체력적으로도 힘든 일이다. 우선 1차적으로 최대한의 재료를 구해서 효소를 담아 놓은 뒤에 발효가 되어가는 상황을 보아가면서 나머지 재료를 차차 더 집어 넣기로 하였다. 효소를 한 번에 다 담지 않고 추가로 집어 넣더라도 효능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1차적으로 구한 재료는 다음과 같다. 가막살나무, 가죽나무, 개망초, 개옻나무, 구기자, 구릿대, 금은화, 기린초, 긴병꽃풀, 꾸지뽕, 꿀풀, 눈개승마, 당귀, 달맞이, 돌나물, 떡갈나무, 머위, 명아주, 민들레, 미국자리공, 미나리, 미역취, 바위취, 박하, 배초향, 부추, 뽀리뱅이, 뽕잎, 사상자, 삼잎국화, 삼백초, 삽주, 상추, 섬쑥부쟁이, 속새, 솔순, 쇠무릎, 쑥, 아카시, 어성초, 엄나무, 예덕나무, 오가피, 오이풀, 오죽, 엉겅퀴, 익모초, 인진쑥, 으름, 제비꽃, 질경이, 짚신나물, 천궁, 청미래덩굴, 초롱꽃, 초석잠, 초피나무, 취나물, 큰뱀무, 톱풀, 파드득나물, 풍년화, 환삼덩굴, 회향.........., 모두 64가지다. 다음주에 와서 재료가 얼마나 발효되어 가라앉았는지 살펴보고 2차, 3차로 재료를 더 집어 넣을 생각이다. 야생화에 대해 잘 모르는 분이라면 재료를 어렵게 구하지 말고 주위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과일이나 채소를 넣어도 된다. 예를 들면, 양배추, 포도, 복숭아, 수박, 참외, 자두, 오이, 수세미, 석류, 돌복숭아, 돌배, 양파 등........ 원래는 독이 없는 재료만 집어 넣어야 하는데 백초 효소를 만들 때는 설령 독이 조금 있는 식물이 들어가도 큰 문제가 없다. 여러 가지 재료들이 서로 섞여서 중화가 되기 때문이다. 백초 효소가 완성되면 이것은 거의 약이나 다음없다. 건강한 사람에게도 좋고 아픈 사람에게는 체력을 회복하는데 큰 도움을 준다. 백초 효소를 담는 과정은 다음과 같다. 재료들을 구한 다음에 계곡에서 깨끗이 씻었고, 큰 통을 옆에 놓고 아내와 내가 도마에 재료들을 올려놓고 식칼로 썰었다. 그런 뒤에 설탕에 버무리고 설탕과 재료가 잘 혼합이 되어 숨이 좀 죽으면 항아리에 차곡차곡 담았다. 칼이나 작두로 썰지 않고 바로 담으면 항아리에 많은 재료를 담기가 어렵다. 설탕으로 버무려 놓고 숨이 좀 죽은 뒤에 항아리에 담는 것도 요령이다. 효소를 담는 그릇은 유리병에 해도 괜찮지만 항아리에 담아 놓으면 더 좋다. 항아리는 숨을 쉬기 때문에 미생물 발효에 더 효과적이다. 항아리에 64가지 재료를 담고 나서 자리가 모자라 아카시 꽃은 할 수 없이 유리병에 담았다. 64가지 재료를 구해서 물에 씻고 설탕에 버무려 담느라 아카시 꽃을 많이 따지는 못했다. 아카시 꽃으로 효소를 만들면 향이 끝내준다. 토요일 오후 늦게까지 효소를 담고 나서 쉬다 보니 어느새 밤이 되었다. 다음날 아침 일찍 아카시 꽃을 따서 효소를 담으려고 아카시 나무 밑에 가 보니 가지가 너무 높아서 따기 힘들었다. 갈퀴를 들고 가서 가지를 잡아 당겨 놓고 아카시 꽃을 땄다. 그런 방법도 아주 높은 가지에는 통하지 않았다. 손이 닿는 곳만 꽃을 따 왔는데 아침을 먹고 나서 저수지 둑을 바라보니 거짓말 같은 일이 일어났다. 조금 전까지도 멀쩡하게 서 있던 아카시 나무가 스르르 쓰러져 버린 것이다. 엄청나게 큰 나무였는데, 무슨 일로? 알고 보니 저수지 둑이 오래 되어 물이 샌다고 금정구청에서 인력과 장비를 동원하여 저수지 둑을 손보는 중이었다. 일꾼들이 작업을 하는데 방해가 된다고 아카시 나무를 확 베어 버린 것이었다. 나는 쓰러진 나무에 가서 힘 하나 안 들이고 아카시꽃을 땄다. 내가 진정으로 필요하면 누군가가 도와준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실감했다. 참 희한하다. 내가 아카시 효소를 담고 싶어 하자 그 당당하던 아카시 나무가 눈 깜짝 할 사이에 쓰러지다니...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 지난 주에 심은 고구마 모종이 다 살아났다. 고구마 모종을 눕혀서 심었는데 그때는 다 죽은 것만 같았다. 그런데 힘없이 쓰러져 있던 고구마 모종들이 몸을 일으켜 고개를 들었다. 병든 몸처럼 힘없이 보이던 모종들이었는데 강인한 의지를 지녔기에 다시 일어났다. 저토록 약한 모종이 죽지 않고 살아나는 것을 보면 나는 벌써 고구마를 다 캐어 먹은 것만 같다. 고구마 순의 강한 의지를 확인했으니 무엇이 더 필요한가? 실의에 빠진 사람들이 고구마 모종을 한 번 심어보면 많은 것을 깨달을 것 같다. 호로파 씨앗을 구해서 심었는데 드디어 싹이 나왔다. 요건 처음 보는 식물이다. 콩과에 속하는 식물인데, 체중조절, 혈당조절에 도움이 되고, 신장과 방광에 좋은 효능이 있으며 복통에도 효과가 있다. 씨앗부터 줄기, 잎까지 모두 먹을 수 있다니 어서 자라면 좋겠다. 조금씩 커가는 모습을 보는 것이 기쁘다. 호로파가 몸에 좋다고 하지만 먹는 것은 다음 일이고 눈으로 키우는 즐거움이 크다. 무럭무럭 자라라, 산장에 들어온 새 식구라 환영한다. 화명동 동화교실 해님반 회원 몇 명이 9일 저녁에 놀러 오기로 했고, 화요일 오전에는 해님반 수업을 범초산장에서 야외수업으로 대신하기로 했다. 나는 동화교실 회원들이 범초산장에 오는 것을 기다릴 겸 5월 7일부터 10일까지 3박 4일간 범초산장에서 지내기로 했다. 아내는 일요일 저녁에 양산 아파트로 돌아가고 나 혼자 남아서 아카시 효소도 담고 약초 쌈도 먹으면서 3박 4일을 보냈는데 참 즐거운 시간이었다. 하우스 밖으로 나가기만 하면 온갖 식물들이 나를 반긴다. 작은 수목원이며 나만의 비밀화원인 범초산장! 초록의 낙원에서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3박 4일을 보내고 나니 머리가 맑아지고 몸이 한층 더 건강해진 느낌이 들었다. 다음에 또 시간을 내어 산장에 오래 머물러야겠다. 나의 이니스프리에서 잘 지내고, 화명동 글나라에 가서 오후 수업을 한 뒤에 집으로 돌아왔다. 범초산장이 있기에 또 갈 수 있다는 희망이 있어서 좋다. 기다려라, 또 갈 게. 5월이 신록이 범초산장에서 무르익고 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