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창작

[스크랩] (凡草산장 이야기 729회) 꿈을 이룬 사람들

凡草 2016. 9. 7. 06:15




 

2016년, 9월 6일, 화요일, 흐림

 

(凡草산장 이야기 729회) 꿈을 이룬 사람들  

 

어떤 사람은 처음부터 꿈을 갖고 열심히 살아가고

또 어떤 사람은 처음에는 꿈이 없었지만

어떤 일이 좋아서 꾸준히 하다보니 뒤늦게 꿈이 생기기도 한다.

어쨌거나 자신의 적성에 맞는 일이나 취미를 선택하여

남보다 성실하게 하면

언젠가는 생각지도 않았던 결실을 거두게 된다.



나도 처음부터 동화작가가 되려고 했던 것은 아니었다.

초등학교 교사로 일하다 보니 우연히 문예반을 맡아 지도하게 되었고

아이들을 잘 가르치기 위해 아동문학 관련 서적을 읽게 되었다.


그러다가 나도 동시를 한 번 써볼까? 하는 생각이 떠올라

동시 습작을 시작했다.

무엇이든 한 번 시작하면 도중에 싫증내지 않고 꾸준히 하는 것이 내 장점이다.

머리는 그리 좋은 편이 못 되지만

동시 습작을 시작한 뒤부터는 퇴근만 하면 집에 와서 동시를 썼다.

동료 교사들은 퇴근하고 나면

하루의 피로를 풀기 위해 술을 마시러 다니거나 

모여서 고스톱을 치기도 했지만

나는 그런 시간이 아까웠다.

어떤 날 밤에는 동시를 서너 편이나 쓰기도 했다.


그런 노력 덕분에 동시 작가로 등단했고,

그 다음에는 내 성향에 동화가 더 맞는 것 같아서

동화 습작을 또 시작했다.

신춘문예를 모집하는 가을철에는 가족 나들이도 자제하고

오로지 글쓰기에만 매달렸다.

아내는 내가 집에 오기만 하면 책상 앞에 앉아서 글을 쓰니까

처음에는 화를 내고 바가지를 긁더니

나중에는 그런 사람이려니 하고 내버려두었다.


혼자 이렇게도 써보고 저렇게도 써보고

말도 안 되는 동화를 계속 쓰다 보니 점점 늘어서

결국 칠전팔기 끝에 동화작가로 등단했다.


동화창작교실을 열어 후배들을 가르치기 시작하면서부터는

동화창작보다 동화 지도에 더 열성을 쏟았기 때문에

정작 내 동화는 그리 많이 쓰지 못했다.


국내에 동화창작 이론서가 많지만

거의 다 읽어보았는데

내가 만든 지도 자료보다 더 나은 것은 없다고 자부한다.

23년 동안 동화지도를 해 오면서 가장 좋은 지도법을 연구하고

계속 자료를 보완해 왔기 때문이다.

언젠가는 내가 만든 동화창작 지도 자료를 책으로 만들 계획이다.


동화 지도를 하면서 후배들과 '동화지기'라는 모임을 만들어

매달 합평회를 십년 정도 했는데

나는 거의 결석하지 않았고,

한 번은 큰딸이 결혼식을 올린 날,


(주례는 그 당시 부산아동문학인협회 회장을 맡았던 주성호 선배에게 부탁했다.

 딸은 동시 쓰던 주성호 선배를 전혀 몰랐지만 내가 아동문학을 사랑했기 때문에

 주례도 동시 작가로 선택했다.)


결혼 예식을 마치고

하필 2-3시간 뒤에 동화지기 모임이 있어서

혼주가 어디 가느냐는 친척들의 만류에도 무릅쓰고

아내에게 접대를 부탁하고 동화지기 모임에 참석한 일도 있었다.

극성이라고 하면 극성일 수도 있겠지만

내 삶의 최우선 순위에 동화를 두었기 때문이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이 있다면

거기에 모든 촛점을 맞추고 열정을 쏟아부어야

꿈을 이루고 큰 수확을 거둘 수 있을 것이다.



이번에 한정기씨가 13번째 동화책을 펴낸 것을 기념하기 위해

화명동 글나라 동화교실과 신세계 동화교실에 와서

자신의 경험담을 들려주었는데

후배들에게 참 뜻깊은 시간이 되었다.

<플루토 비밀결사대>를 쓴 유명 작가가 직접 찾아와서

이야기를 해준 것만으로도 꿈과 같은 일이다.

귀한 시간을 내어서

해님반과 달님반에 두 번이나 와준 한정기씨에게 감사드린다.



한정기씨가 처음 글나라에 다닐 때를 되돌아보면

참 적극적이고 부지런히 썼다.

별다른 과제를 내어주지 않고

그냥 시간이 나면 해보라고 권했는데도

한 해에 대학 노트 3권을 손으로 써서 다 채웠고

좀처럼 결석도 하지 않았다.



어느 날은 7-8명 정도 다니던 회원들이 모두 바쁜 일이 있는지 결석하고

한정기씨만 유일하게 출석한 적이 있었는데

교실에서 단 둘이 공부하기가 멋쩍어서

부근에 있는 찻집에 가서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눈 적도 있었다.


그때 다니던 회원 중에서는 한정기씨가 유일하게 동화작가로 등단했고

글나라 초등학생들의 전설적인 회원인 서자민 ( 2학년부터 6학년까지 다녔고,

 '승'이라는 제도를 만들게 된 동기가 된 학생이다.)의 엄마인 박영란씨가

수필가로 등단했다.

박영란씨는 퀼트나 바느질은 잘 했어도

글을 쓰러 올 마음이 전혀 없었는데

딸 자민이가 하도 다녀보라고 성화를 부려서 다니게 된 에피소드가 있다.




한정기씨 말고도

글나라 동화교실에 다녀서 꿈을 이룬 사람들이 많은데

배유안, 허명남, 박현숙, 신지은, 이하은, 이은 김경남, 수아 곽미영, 우애란,  최경희, 정갑숙,

안덕자, 조희양, 이영득, 소산 황미숙, 윤자명, 한아, 차영미, 이마리, 양경화, 정현정 등.....

일일이 다 언급할 수 없을 만큼 많다.


거리가 멀어서 직접 오지 못하고

인터넷으로 동화를 지도받은 회원 중에서는

김영숙, 김하늬, 한영미, 최은순, 문성희, 박소이, 서화교,

남주희, 임근희, 신원미, 신혜경, 김영주, 권은정씨 등이

꿈을 이루었거나 꿈을 이루어가고 있는 중이다.


범초산장에서 풍선덩굴을 키워 보았는데

씨앗 몇알이 싹을 틔워 잘 자랐는데

풍선을 하나 둘도 아니고 수십 개를 맺었다.

풍선 하나를 터뜨려 보았더니

한 풍선 하나에 씨앗이 몇 개나 들었겠는가?


겨우 2-3개뿐이었다.

씨앗 2-3개는 너무 적으니 많은 씨앗을 얻기 위해서는

무수히 많은 풍선을 맺어야 한다는 결론이다.

사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자신의 노력이 결실을 맺기 위해서는

무수히 많은 시행착오를 거쳐야 하리라.





범초산장에서 지난 일요일에 있었던 일이다.

연갑씨와 아내, 나 -  셋이 영지를 따러 갔다.

처음에는 아무리 헤매도 안 보이기에

그날은 헛수고를 하는 줄 알았다.

영지가 있을 만한 능선을 죄 훑고 다녀도 없었다.



그러다가 하나를 발견하게 되자

잇달아 영지가 보였다.

무엇이든 첫 수확의 길은 멀고 험하다는 것을

그날 체험에서도 알았다.



그날 나는 작은 것 하나만 겨우 찾았고

운지버섯을 따는 것으로 만족했는데

연갑씨와 아내가 큰 것을 찾아내었다.

사람이 애를 쓰고 노력하면

절대로 헛탕을 하는 일은 없다.

겨우 두 시간 헤매었을 뿐인데

적잖은 수확을 거두었다.




동화 쓰는 일도

영지 따는 것과 똑같지는 않지만 이치는 다르지 않다.

얼마나 끈기있고 꾸준히,

그리고 남보다 조금 더 부지런히 하느냐가 관건이다.


꿈을 가졌건 안 가졌건

그건 중요하지 않다.

어떤 일이 자기 적성에 맞아서 시작했다면

끝장을 볼 때까지

모든 열정을 쏟아부어 볼 일이다.

단 한 번 뿐인 인생,

보람있게 살다가 가야 하지 않을는지....    (*)









출처 : 글나라
글쓴이 : 凡草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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