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집

[스크랩] (凡草산장 이야기 731회) 하우스 천장이 15줄 악기

凡草 2016. 9. 17. 16:07

 

 

 

2016년, 9월 17일, 토요일, 많은 비

 

(凡草산장 이야기 731회) 하우스 천장이 15줄 악기

 

새벽에 자다가 빗소리에 잠이 깨었다.

시계를 보니 새벽 3시 25분.

요란하게 비가 내린다.

여기는 양산 아파트가 아니라 범초산장 하우스다.

어제 나혼자 여기로 들어왔다.

아내는 조카들과 어울려 논다고 나만 왔다.

조카들과 모이면 화투나 칠게 뻔해서 

나는 산장으로 향했다. 

 

혼자 빗소리를 들으며 누워 있으니

흡사 유배당한 사람같아서 피식 웃음이 나왔다.

이건 내가 좋아서 선택한 유배라서 괜찮다.

아내와 늘 같이 자니 어쩌다 떨어져 자는 것도 새롭다.

 

지붕에 세찬 비가 퍼부으니

누군가가 음악을 연주하는 것 같다.

하늘이 15줄 현악기로 연주하는 생음악이다.

타다다다- 딩딩딩- 동동동-

쿵자락작 쿵작-

여러 번 들어봤지만 들을 때마다 다르다.

이 소리 들으려고 어제 산장을 선택했다.



혼자라도 오길 참 잘 했다.

빗소리에 잠이 깨었지만 전혀 불편하지 않았다.

멋진 음악 들으라고 초대해준 것 같아 기뻤다.

 

한동안 빗소리를 감상하다가

다시 잠이 들었다.

눈을 떠보며 6시 반이다.

계곡물이 얼마나 불었나 가보니 작은 폭포 수준이다.

 

 

이제 산장을 한 바퀴 돌아봐야지.

아파트 생활이야 컴퓨터나 텔레비전 말고는 단조롭지만

산장에 오면 볼게 많아서 눈이 호강한다.

흠흠- 상큼한 공기!

코도 맑은 공기에 즐겁고,

주말마다 봐도 같은 모습이 한 번도 없다.

늘 다른 모습이라 호기심을 자극한다.

 

 

상사화가 피어서 날 맞아준다.

여름내 안 보이더니 가을이 되자 피었다.

가을에 선보이는 범초산장의 새로운 신인이다.

글나라 동화교실 가을 학기에 새로운 신인들이 몇 명 왔는데

여기도 마찬가지다.

 

다음에 등장하는 신인은 누린내풀!

이름은 별로지만 꽃은 정말 화려하다.

난 이 꽃을 처음 보고 반해서 해마다 이 꽃이 피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꼭 이때쯤이면 피는 가을꽃이다.

미인의 속눈썹처럼 아름답다.

  

내가 일부러 심지도 않았는데 산에서 다른 모종을 파올 때

씨가 딸려왔던 모양이다.

처음에는 시시한 잡풀인 줄 알고 뽑아낼 뻔 했는데

모르는 야생초라 이름을 알고 뽑아내려고 기다렸다가

꽃을 보게 되었다.

파란 꽃이 핀 것을 보고서야 그 가치를 알게 되었다.

사람도 겉모습이나 초보 시절만 보고 지레 짐작하면 안 될 것이다.

이제는 잘 보호해서

해마다 꽃이 늘어가고 있다.

 

 

 


지난 주에 담은 말벌술은

색깔이 한층 더 짙어졌다.

730회 범초산장 일기를 보고 많은 이들이 걱정을 했는데

아무리 독한 말벌이라도 준비만 잘하면 문제 없다.

벌에 대해서 잘 아니까 조심해서 작업했는데도

보는 사람들은 마음이 안 놓였나 보다.

 

 


수요일에 석산리 범초텃밭으로 가 보았더니

배추 모종이 여러 포기 죽어 있었다.

고라니가 그런 줄 알았는데

동네 사람들한테 물어보니 까치 짓이란다.

불러다 야단칠 수도 없고 그냥 넘어갈 수밖에.


약을 쳤으면 피해가 덜할 텐데

비를 피해 일일이 약을 칠 수도 없고

무농약을 고집하니 어쩔 수가 없다.


 

 

그나마 다 쪼아 먹지는 않아서 다행이다.

대파는 맛이 없는지 아예 입을 대지 않았다.

그렇다고 대파만 심어 놓을 수도 없는 노릇이고...

농부들이 밭에 허수아비나 흔들거리는 조형물을 설치하는 이유를

이제야 알았다.

그게 바로 새를 막기 위한 방책이라는 것.

 


고려엉겅퀴(곤드레) 꽃이 피었다.

엉겅퀴와 닮은 보라색이다.

고려엉겅퀴는 일반 엉겅퀴와 달리 가시가 적은 편이다.

까치들아, 곤드레도 좀 뜯어먹지 그래.

 

여름 가뭄에 다 말라죽었던 상추 대신

새 상추 씨앗을 뿌렸더니 소복하게 돋아나왔다.

밭일이라는 것이 늘 그렇다.

실패하면 다시 뿌리고

밭을 갈아 엎고 또 뿌리고.......

뜻대로 안 되기도 하고 잘 되기도 하고

그러면서 살아간다.


잘 될 때 좋아만 할 게 아니라

잘 되지 않았을지라도 씩 웃으며 넘기는 게 삶의 지혜다. 

나도 속이 좁은 편이지만 범초산장을 오가며

조금씩 마음을 넓히고 있다.


 

석산리 범초텃밭의 배추는 3분의 1이 사라졌지만

범초산장의 배추는 멀쩡해서 마음이 놓였다.

사람은 항상 두 가지 전략을 짜야 할 것 같다.

하나만 믿고 있다가 실패하면 복구할 길이 없지만

미리 다른 하나를 준비해 놓으면

한 쪽이 실패해도 다른 하나가 있으니 의지할 수 있다.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서 다른 하나를 마련해두는 전략은

인생 살이에서도 종종 필요하다.

 

까치 녀석들아, 석산리 범초텃밭만 쪼아대지 말고

여기도 와봐라, 메롱!

30분 이상은 날아와야 할 테니 쉽지는 않을 거다.


 

 

하하, 요 배추 좀 봐.

내가 밥 주고 물 준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잘 자랐지?

정말 쑥쑥 크네. 쑥쑥 커.

아무리 보아도 신기하다. 거 참!

 

 

범초산장에도 상추 밭을 새로 만들었다고

지난 일기에 썼는데

오늘 보니 상추씨가 깜빡깜빡 눈을 떴다.

역시 그전에 있던 묵은 밭에 뿌리지 않고

밭을 갈아서 씨를 뿌리기를 잘 했다.

 


아까시 발효액을 걸러내고

그 병에 까마중 줄기와 열매를 뜯어서  발효액을 담았다.

안토시아닌이 풍부한 까마중이라 발효액으로 담으면 좋은데

여태까지는 까마중이 많이 없어서 못 담았는데

올해는 까마중이 많이 번식하여 담을 정도가 되었다.

 

 


범초산장에 가면 즐거운 일만 있는 게 아니라

때로는 힘든 일도 있다.

가을에는 환삼덩굴이 기승을 부린다.

여름내 세력을 넓혀서 동아줄처럼 질긴 줄기로

천하장사 타이틀을 노리는 씨름선수처럼 한 판 붙자고 덤빈다.

만만하게 보았다간 큰코 다친다.

낫으로 베어내도 금방 또 자란다.

동아줄처럼 굵은 줄기를 파내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


사람들이 시골을 싫어하는 것은

거름냄새와 온갖 벌레들, 귀찮은 잡초들이 많기 때문이다.

어두운 밤이 있기 때문에 낮이 더 빛나듯이

귀찮고 힘들게 하는 것들도 장매물이 아니라

디딤돌로 생각하면 별로 힘들지 않다.


나는 벌레와 악착같은 환상덩굴을 보면서

그들 뒤에 숨어 있는 열매와 꽃을 상상한다.

그들이 나에게 보물을 갖다주는 심부름꾼이라면 밉게 볼 이유가 없다.


어젯밤에도 귀뚜라미가 이부자리 옆으로 돌아다녀서

한 마리를 파리채로 때려 잡았다.

혹시 잘 때 머리맡으로 뛰어든다면 유쾌한 일이 아니다.

혹시 또 올라올까 봐 계피물을 뿌려두었다.

다소 불편한 점이 있어도 그러려니 생각하면 된다.

그런 것이 하나도 없는 곳에서는 꽃이나 열매도 있을 수가 없다.

불편하고 나쁜 일조차 담담하게 넘기면

좋은 일이 선물로 찾아온다.

 

 



 점심으로 먹은 요리는 닭도리탕이다.

 예덕나무와 박하, 빨간 고추, 로즈마리, 꾸지뽕나무, 금강초,

 비단풀, 고추장 등을 풀어 넣고 끓여서 먹었다.

 맛이 그런대로 좋았다.

 어디서도 볼 수 없는 나만의 닭도리탕이다.

 아내가 맛보았다면 뭐라고 했을까?  (*) 


 

   마의 줄기에 열린 주아도 집어 넣었고..  

 

   

  

 

출처 : 글나라
글쓴이 : 凡草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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