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꽃

[스크랩] (凡草산장 이야기 763회) 일 년에 한 번 보는 변산바람꽃

凡草 2017. 2. 21. 07:57



2017년, 2월 20일, 월요일, 비 온 뒤에 맑음

 

(凡草산장 이야기 763회)  일 년에 한 번 보는 변산바람꽃



일요일에는 범초산장에 갔다.

아직 바람은 차갑지만 저수지와 계곡에 있던 얼음은 다 녹았다.

우수가 지나고 나니 햇살이 한결 더 포근하게 느껴진다.



양지 바른 곳에서는 머위와 엉겅퀴가 조금씩 올라오고 있었다.

따 먹으려면 더 기다려야 하지만 눈꼽만한 파란 잎을 보아도 반갑다.

봄편지처럼 보이니까.


으름 덩굴에도 파란 싹이 나오려고 꿈틀대고

길마가지 나무도 꽃봉오리가 한껏 벙글었다.

그냥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매화 꽃봉오리가  터지기 시작했다.

산 아래에서는 진작 피었지만 범초산장 매화들도 봄이 온 것을 직감했나 보다.

자명종 소리도 들리지 않았는데

저가 스스로 알아채고 꽃봉오리를 터뜨리는 것을 보면 신기하다.

이번 주말에는 더 많이 필 것 같다.

벌들도 떼를 지어 날아오겠지.


화명동 부산은행 건물 옆에서 장사하는 할머니가 있다.

건물 옆에 자리를 깔아 놓고 노점 장사를 한다.

나는 종종 지나다니면서 그 할머니를 유심히 살펴본다.

오늘은 얼마나 팔았을까? 저걸 다 팔면 얼마나 벌까?


가끔 그 할머니가 파는 채소를 사기도 하는데

며칠 전에 지나가다가 쭈글쭈글한 완두콩을 보았다.

한 그릇 정도 되었다.

"저거 모두 얼마예요?"

"2천 원 주세요."

내가 달라고 했더니 다시 들여다보더니 고개를 저었다.

"이거 상태가 너무 안 좋네요. 그냥 가져 가세요."

나는 그 말을 듣고 이 할머니가 참 좋은 분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자기 잇속만 차리는 사람은 인간미가 없다.

자신이 손해를 보더라도 베풀어야 남이 좋아한다.

값이야 얼마 안 되지만 자기 양심에 부끄러운 짓을 안 하겠다는 할머니가

예사 사람으로 보이지 않았다.

나는 억지로 2천 원을 쥐어 주고 완두콩을 샀다.

완두콩이 품질은 좋아보이지 않았지만 밭에 심는 데는 지장이 없어 보였다.


그 완두콩을 보관하고 있다가

일요일에 산장으로 들고 가서 밭 두 고랑에 심었다.

배추를 심었다가 뽑아낸 자리에 구멍만 파고 넣었다.

콩은 거름이 필요하지 않으니 그대로 심어도 될 것이다.

범초산장에서 이른 봄에 완두콩을 심은 것은 처음이다.

저 할머니 주름살같은 완두콩들이 과연 싹을 내밀까?

요것도 행복한 기다림이다.


아궁이 뒤에 나무를 어수선하게 쌓아놓은 것을 보고

아내가 지저분하다고 종종 말했는데

시간이 날 때  깨끗이 정리하기로 마음먹었다.

내 결점이 정리를 잘하지 못하는 것이다.

귀신이 나올만큼 잔뜩 쌓아두었던 나무를 하나 하나 자르고 포개서

깔끔하게 정리했더니

십 년 묵은 체증이 내려가는 것 같았다.

이처럼 보기 좋은 것을 왜 그렇게 어지럽게 쌓아두었을까?



이웃 농장에서도 감자를 심으려고 밭을 다듬고 있었다.

거름을 뿌리고 경운기로 밭을 일구고...

여기 저기서 봄내음이 물씬 풍긴다.



오늘은 차가 있는 글나라 제자들과 변산바람꽃을 보러 갔다.

산에는 늘 혼자 다니는 편이지만

작년에 한 번 같이 간 일이 있어서

올해도 시간을 맞추어 함께 갔다.

제자들이 많아도 시간 맞추어

차를 얻어 타고 가긴 쉽지 않다.


아침에 비가 주룩주룩 내려서 바람꽃을 못 보는 줄 알았다.

꽃들은 대개 비가 오면 꽃을 피우지 않는다.

바람꽃도 비가 오면 못 볼 줄 알고 걱정했다.

일 년에 한 번 딱 이맘때 보는 꽃인데 못 보면

한 해를 공치는 셈이다.

제발 햇빛이 나와야 할 텐데......


바람꽃을 보는 곳은 넓지 않아서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기 때문에

비가 그치기를 기다릴겸

천성산 편백나무 군락지에 들렀다가 가기로 했다.

편백나무 숲에서 마시는 커피맛은 더욱 특별하다.


우리 일행을 위해 누군가가 앉을 자리까지 만들어 놓아서

편하게 앉아서 커피를 마시고 간식을 먹었다.

숨만 쉬어도 초록물이 파르르 젖어들 것 같다.


커피를 마시고 나서

누군가가 준비해 온 캔맥주까지 마시고 나니

세상에 부러울 게 하나도 없다.

아, 참 좋다!


그러는 사이에 날이 개이고 햇빛이 환하게 내리쬐었다.

이야, 신 난다!

이러면 바람꽃을 볼 수도 있겠다.

모처럼 시간을 내었더니 하늘도 도와주네!

나 혼자 갔다면 비가 막 쏟아졌을지도 모르지.

한껏 기대를 하면서 울주군 변산바람꽃 군락지를 향해 달려갔다.


계곡으로 들어가니 변산바람꽃이 빼꼼이 화사한 얼굴을 내밀고 있었다.

오, 오늘 같은 날씨에 너를 볼 수 있다니!

비 온 뒤에도 나와 있구나!

정말 감격스러웠다.

고맙다! 너를 볼 수 있어서.



이 작은 꽃을 보려고 멀리서 찾아온 우리 성의도 가상하지만

비를 맞고도 함초롬히 웃고 있는 저 이쁜 얼굴을 보니

큰 선물을 받은 것만 같다.

일 년에 한 번 보는 변산바람꽃이지만

여태 오늘이 오기를 손꼽아 기다린 보람이 있다.

오늘이 지나면 다시 내년을 기약하겠지만

2017년 오늘 한 번 본 것만으로도 한없이 기쁘다.


만약에 사람이 일부러 가꾸었다면 이토록 감동스럽지는 않으리라.

억지로 거름을 주어 가꾸었다면

이보다 몇 백 배 풍성하다 해도 품격이 떨어질 것이다.

사람이 가꾼 게 아니라 저 혼자 스스로 자란 꽃이기에

신통하고 경이롭다.

아무도 돌보지 않았는데

이 작은 꽃이 돌 틈에서 고개를 내민 것을 보면

자연이 위대하다는 것을 새삼 확인할 수 있다.



작년에는 영하의 추운 날에도 변산바람꽃이 땅 위로 나왔는데

다행히 올해는 포근한 날씨라 덜 애처로웠다.

여기도 방긋, 저기도 방긋,

비탈길에 쫙 널려 있어서 발길에 밟히지 않도록 조심하며

변산바람꽃을 두루 돌아보았다.

변산바람꽃 군락지가 공사판 때문에 작년보다 반으로 줄어든 것이

좀 아쉬웠지만

그래도 볼 것은 다 보았다.



이 아름다운 모습을 마음 속에 간직하며

또 일 년을 살아갈 것이다.

하루 본 꽃으로도 일 년을 충분히 살 수 있겠다.


꽃을 보고 나서 늦은 점심을 먹으러 갔다.

목적지는 양산 지하철역 부근 주택지에 있는 산정생오리집.

저렴한 맛집이 그곳에 숨어 있었다.

정식 5천 원에 반찬이 스무가지나....

맛도 있고 푸짐해서 좋았다.

꽃을 보고 나니 밥에서 꽃향기가 풍긴다.

오늘은 꽃점심을 먹는 셈이다. ㅎㅎ

달콤한 밥을 꿀맛처럼 잘 먹었다.

참으로 감사한 하루다. (*)



출처 : 글나라
글쓴이 : 凡草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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