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凡草산장 이야기 773회) 벚꽃 하늘 유채꽃 바다
2017년, 4월 5일, 수요일, 흐리고 비
(凡草산장 이야기 773회) 벚꽃 하늘 유채꽃 바다
4월 2일 아침이었다. 범초산장에서 자고 일어났더니 저수지에 물안개가 피어 오르고 있었다. 저수지가 산장 앞마당이라 문만 열면 바로 보인다. 일교차가 심한 날에 안개가 끼는데 저수지 물안개는 주로 늦가을에 피고 봄에는 보기가 드문 편이다. 자욱한 안개가 아니라도 보기 좋았다. 아침 최저 기온이 7도라 조금 쌀랑해서 잠을 설치긴 했어도 물안개를 보상으로 받았다. 세상 이치가 그렇다. 뭐든 다 좋을 수는 없고 하나가 좋으면 다른 것은 나쁠 수 있다. 석산 범초텃밭에서는 한 번도 뱀을 보지 못했는데 그 점은 좋지만 물이 귀해서 농사 짓기에 불편하다. 범초산장은 물이 풍부하지만 어쩌다 뱀을 볼 수 있으니 피장파장이다. 그러니 세상 살아가면서 양손에 떡을 쥐려고 욕심부리지 말아야겠다. 좋은 일은 감사히 생각하고 안 좋은 일은 그림자로 생각하면 되겠다. 이른 아침에 산장을 한 바퀴 둘러보는 일은 마음으로 보약을 먹는 것과 같다. 푸릇푸릇한 새순과 하늘로 높이 뻗은 나무를 보면 싱싱한 기운이 충만해진다. 아파트에서 일어나면 텔레비전 뉴스나 보지만 여기서는 자연이 보여주는 생방송 다큐멘타리를 본다. 실시간 중계방송이다. 이런 풍경을 보려고 쾌적한 아파트가 아닌 산장에서 자는 것이다. 미국제비꽃이 많이 번져서 다니는 길에도 가득하다. 밟지 않으려고 요리조리 건너 뛰어야 할 판이다. 몇 포기는 캐내어 화단에 옮겨 심었다.
산장에서 자고 일어나면 날씨가 어떻든 기분이 좋다. 맑으면 맑은 대로 공기가 상쾌해서 좋고, 비가 오면 비가 오는 대로 분위기가 좋다. 산장에서 자고 일어났을 때 기분이 언짢았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눈을 뜨면 몸이 개운하고 어서 나오라고 무수한 생명들이 부르는 듯 하다. 그러니 머뭇거릴 여유가 없고 무슨 일이 있어서 하우스 안에 머무르고 있으면 몸이 근질근질하다.
오래 전에 심은 꽃과 나무는 얼마나 잘 컸나 살펴보고 최근에 심은 것은 뿌리를 잘 내렸는지 들여다본다. 한 번 뿌리를 실하게 내리고 나면 하루가 다르게 쑥쑥 커 간다. 내가 심고 가꾼 노력을 칭찬하기라도 하듯이 이쁜 꽃을 보여주기도 하고 맛있는 열매를 주는가 하면 몸에 좋은 약을 아낌없이 나누어준다. 산장 한가운데 서 있으면 꽃집에 들어와 있는 것 같기도 하고, 한약방을 방문한 기분이 들기도 하며, 쌈채소 농장을 통째로 빌려온 것 같아 마음이 넉넉해진다.
눈요기를 실컷 하고 나면 이제 일을 해야 할 차례. 좋은 풍경, 맛있는 먹거리가 나오기까지는 그만한 노력이 따라야 한다. 공짜로 얻을 생각만 하면 잠시는 가능해도 오래 지속될 수는 없는 법-. 일하고 맛보는 휴식이 더 달콤하다.
쪽파밭이 잡초로 뒤덮여 있어서 김을 매기로 했다. 그대로 놓아두면 파가 잡초에 덮여서 숨을 못 쉬겠다. 큰개불알풀과 광대나물이 어찌나 번졌는지 뿌리를 뽑기가 쉽지 않았다. 진작에 제거하지 않고 놓아둔 것이 잘못이다. 농사 일을 해보면 늦게 미루어둘수록 손해다.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는 것과 같다. 일찍 잡초를 뽑으면 힘도 덜 들고 편한데 미적거리다가 기회를 놓치면 뒤에 가서 몇 배로 고생한다. 환상덩굴도 마찬가지다. 어릴 때 뽑으면 별게 아닌데 귀찮다고 가만히 놓아두면 점점 자라서 나중에는 손을 들고 만다. 실처럼 어린 줄기가 한 두 달 뒤에는 밧줄처럼 강해져서 뽑을 수가 없다. 그래서 나는 환상덩굴 싹을 보면 <초록 폭격기>라고 부른다. 두 날개를 활짝 편 모습이 마치 폭격기가 출격을 기다리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저게 점점 자라면 밭을 폭격하듯이 엉망으로 만들어 버린다. 작은 싹이라고 무시했다간 큰코 다친다. 놀이하듯이 하나 하나 쏙쏙 뽑았더니 200개 이상 뽑았다.
나쁜 일은 미리 미리 조심해야 한다. 커피 한 잔을 우습게 알고 마구 마시다가는 위가 나빠질 수 있고, 술 한 잔을 예사로 여겼다간 간경화로 고생하게 된다. 게임이나 스마트폰이 무서운 줄 모르고 빠져 들게 되면 눈 나빠지고 시간을 허비한다. 결국 자신을 통제할 줄 모르는 사람은 남에게 끌려 다닐 수밖에 없다. 환삼덩굴 싹 하나가 그런 이치를 나에게 가르쳐준다.
묵은 밭을 삽으로 뒤집어 놓고 거름을 뿌렸다. 무엇인가를 심으려면 이렇게 준비해 놓아야 한다. 딱 당해서 허둥지둥 심어보았자 수확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미리 미리 준비하고 느긋하게 기다려야 한다.
부산 외곽 순환 고속도로가 착착 진행되고 있다. 김해에서 금곡을 지나 노포동과 철마까지 가는 도로인데 범초산장과 가까운 곳에 나들목이 건설되고 있어서 기대된다. 올해 12월에 완공이 되면 양산에서 범초산장까지 10분도 걸리지 않을 것이다. 지금은 국도로 가면 30분쯤 걸리는데 교통이 더 편리해질 전망이다. 내가 산장을 열심히 가꾸고 있으니까 누군가 나를 도와준다.
내 밭에는 제비꽃도 키운다. 꽃을 보아서 좋고 나물로도 이용할 수 있으니 일석이조다.
밭을 삽으로 뒤집어 놓았는데도 어성초가 올라오고 있다. 어성초는 추위에는 약하지만 생명력은 아주 강하다. 머위와 바디나물과 달맞이가 뒤섞여 있어도 상관하지 않는다. 아내는 늘 깔끔하게 종류별로 구분해서 키우라고 충고하지만 한 두 고랑은 이렇게 마음대로 놓아둔다. 그게 식물들에겐 더 자유스럽지 않을까? 내가 심지도 않았는데 쇠뜨기가 올라오고 있다. 무단세입자다. 몇 개는 뽑았지만 기를 쓰고 안 나가면 봐줄 수밖에 없다. 나도 예전에 집 없는 설움을 겪어 봐서 남의 일 같지 않았다. 조뱅이 어린 싹을 양산 도로변에서 발견했다. 몇 포기 뽑아와서 밭에 심었다. 하나라도 살아나면 다행이다. 어떤 일이든 안 하는 것보다는 시도해보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
당귀 모종 25포기를 사다가 심었다. 8천 원 어치다. 저렇게 어린 싹이 제대로 살아날까 걱정되지만 작은 싹 안에 숨어 있는 생명력을 믿고 심는다. 더러는 말라 죽기도 하겠지만 한 두 포기라도 살아난다면 애써 심은 보람이 있다. 자녀를 키워서 독립시키듯이 저 작은 모종도 홀로서기를 기대할 수밖에 없다. 죽이지 않으려면 그만한 노력을 기울어야 하겠지만. 벚꽃이 피는 철이라 글나라 화요일 해님반 회원들과 야외수업을 하러 갔다. 장소는 대저 생태공원이다. 도시락을 싸서 갔는데 도착하자 마자 눈이 휘둥그레졌다. 샛노란 유채꽃이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한 마디로 유채꽃 바다였다. 이렇게 많은 유채꽃은 처음 보았다. 얼마나 장관인지 연신 감탄사를 내뱉었다. 대단하다, 대단해! 꽃피는 4월이라더니 때 맞추어 잘 갔다. 회원들이 기뻐하는 모습을 보니 하루 수업을 빼먹더라도 가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야 사진 찍는 것을 좋아하지 않지만 대체로 사진 찍는 것을 좋아해서 엄청 찍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도착한 지 얼마 안 되어 밥을 먹자고 야단이다. 어른이나 애들이나 밖에 나가면 똑같다. ㅎㅎ 하긴 준비하느라 아침을 설치고 온 사람도 있을 테니. 도시락을 펼쳐 놓으니 이건 보통 도시락이 아니라 거의 출장 뷔페 수준이었다. 솜씨 좋은 순기씨의 강된장, 시레기국, 고등어찌개에다 은영씨의 상추와 양배추쌈, 영희씨의 당귀쌈, 유채겉절이, 헌주씨의 카레 요리, 내가 무쳐간 나물 반찬, 거기에다 지경씨의 부대찌개..... 야외 소풍에서 부대찌개를 먹은 일은 태어 나고 처음이다. 그 외에도 많은 반찬이 등장했는데 너무 많아서 다 기억나지 않는다. 하여간 어느 뷔페 못지 않게 잘 먹었다. 재치있고 베풀기 좋아하는 회원들 덕분에 맛있게 먹고 좋은 구경 많이 했다. 밥을 먹고 나서 벚꽃을 보러 맥도 생태공원으로 갔다. 거기는 또 다른 분위기였다. 유채꽃이 바닥에 깔려 있다면 벚꽃은 하늘에 널려 있었다. 유채꽃도 보고 벚꽃까지 보아서 꽃잔치를 제대로 즐겼다. 미리 받아 놓은 날짜가 다행히 맑고 화창해서 행복한 나들이가 되었다. 이렇게 가까운 곳에 꽃단지를 두고도 평소에는 왜 오지 못했던가? 사는 게 뭐라고... 그래도 모처럼 마음 맞는 사람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이런 게 바로 인생의 화양연화가 아닐는지.... 화려한 벚꽃을 보러 평일인데도 많은 사람이 몰려 왔다. 추운 겨울 동안 땅속에서 준비한 벚꽃들의 특별한 이벤트가 갈채를 받는 순간이다. 우리도 벚꽃처럼 애써 준비하면 활짝 필 때가 있겠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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