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스크랩] (범초산장 이야기 781회) 결혼기념일 1박 2일 여행 (군위-영양)

凡草 2017. 5. 7. 07:33

 

 

   2017년, 5월 6일, 토요일, 맑음


  (범초산장 이야기 781회)  결혼기념일 1박 2일 여행 (군위- 영양)  

 

  5월 5일은 결혼기념일이다.

 초등학교에서 교사로 일할 때 결혼을 했기 때문에

 하루라도 수업을 빼먹지 않으려고 어린이날에 결혼식을 올렸는데

 해마다 쉬는 날이라 결혼기념일을 기억하기도 쉽고

 아내와 어디 놀러가기에도 좋다.

 그 당시에는 담임했던 반 아이들을 위해 공휴일에 결혼식을 올렸지만

 결국은 나에게도 좋은 일이 되었다.

 이렇듯 남을 위하면 나에게도 좋은 일이 돌아온다.

 

 올해 결혼기념일에는 군위와 영양으로 여행을 갔다.

 군위는 부산아동문학 회원들과 가을 여행을 갔던 곳인데

 아내가 가보고 싶어해서 한 번 더 가기로 했다.

 영양에는 글나라 동화교실 제자 박민애씨가 귀농을 해서 살고 있다.

 이번 기회에 여행도 할겸 군위를 거쳐서 박민애씨 집에 가기로 했다.

 

 양산 우리 집에서 군위 제2석굴암을 네비게이션에 쳤더니

 신대구 고속도로를 거쳐 팔공산 나들목으로 나가는 길을 안내했다.

 한티재를 지나갔는데 한국의 아름다운 숲길로 선정될만큼 멋진 길이었다.

 아내가 울창한 숲길을 보며 참 행복하다고 말해서

 이 코스를 선택한 보람이 있었다.

 

 팔공산 자락인 한티재를 넘어가자 제2석굴암이 나왔다.

 나도 작년에 제2석굴암을 보고 감탄했는데

 아내도 경주 석굴암보다 낫다고 하였다.

 바위 굴을 뚫어 부처님을 모셔 놓았는데 대단한 정성으로 만들었다.

 연휴 중인데도 관람객이 별로 없어서 여유있게 구경했다.

 

 

  다음에는 한밤(대율리) 돌담 마을을 찾아갔다.

 <남천 고택>을 쳐서 가면 되는데 가을에는 단풍이 멋있지만

 봄에도 돌담들이 정겹게 보였다.

 

  <화본역>은 시인들이 가보고 싶어하는 간이역이다.

  아내가 여기는 좀 싱거운지 대충 둘러보더니 가자고 했다.

  젊은 사람들은 제2석굴암보다 훨씬 많이 와서 역장 모자를 쓰고 사진을 찍기도 하며

  즐겁게 놀고 있었는데.....

 

  그나 저나 점심을 먹어야 하는데 그럴듯한 맛집이 보이지 않았다.

  내가 미식가가 아니라서 맛집을 미리 검색하지 않고 온 것이 후회되었다.

  명색이 결혼기념일인데 싸구려 식당에 들어가기는 그렇고

  아무리 보아도 괜찮은 식당이 보이지 않았다.

  화본역 앞에 있는 한식뷔페라도 들어갈까 하다가 그냥 돌아섰는데

  인각사까지 가는 동안에 좋은 식당을 찾지 못했다.

 

 그러다가 인각사로 접어드는 어귀에서 <길목식당>을 발견했다.

 다른 식당 앞에는 차가 하나도 없어서 들어가기가 꺼림칙했는데

 길목 식당 앞에는 차가 많아서 안심하고 들어갔다.

 메뉴를 보고 청국장과 정식을 시켜서 둘이 나누어 먹었다.

 값에 비해 반찬도 잘 나왔고 맛이 좋았다.

 이 집에 들어오기를 잘했다고 둘이 만족해하며

 인각사로 향했다.

 

 인각사는 일연 스님이 삼국유사를 마무리한 절이다.

 일연스님은 효자라서 노모를 모시기 위해 고향 마을인 이곳으로 왔다.

 절 부근에 기린 뿔 같은 바위가 있어서 <인각사>라는 이름이 붙었는데

 내 눈에는 절 앞에 있는 학소대가 기린 뿔처럼 보였다.

 봄에 갔더니 가을에 왔을 때와는 분위기가 또 달랐다.

 돌부처 앞에 금낭화가 만개하여 그 또한 보기에 좋았다.

 

  절 앞에 고은 시인이 쓴 <일연 찬가>가 있어서

 찬찬히 읽어보았다. 읽는 동안에 가슴이 훈훈해졌다.

 일연 스님이 후대에까지 칭찬받는 이유는 불교에서 인정받는

 고승이기 때문이 아니라 <삼국유사>라는 책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일연 스님은 그냥 들은 이야기를 쓴 것이 아니라 직접 찾아가서

 눈으로 보고 확인한 내용을 썼단다.

  몽고가 고려를 침략하여 나라가 풍전등화처럼 위기에 처했을 때

 조상들의 자랑스러운 역사를 들려주어 용기를 주기 위해 삼국유사를 썼다 하니

 쓰게 된 동기 또한 민족정신이 강하다.

  작가는 글을 쓰면서 자신의 영혼을 치료하고, 수많은 사람에게 용기와 감동을 주어야 한다.

 

  그 당시 입으로 전해지던 향가를 넣은 것도 시인다운 모습이다.

  한 마디로 일연 스님은 보통 스님이 아니라 문학가와 같다.

  글을 썼기 때문에 일연 스님이 위대한 것이지 종교적으로 뛰어나서가 아니다.

  그러므로 글은 위대하다. 글을 쓰는 사람도 위대하다.

  평범한 사람도 글을 쓰면 더 나은 사람이 된다.

 

    <일연찬가>

                         고 은


   오라
  화산기슭 인각사로 오라
   하늘아래
  두 갈래 세 갈래
   찢어진 겨레 아니라
  오직 한 겨레 임을
  옛 조선 단군으로부터 내려오는
  거룩한 한 나라였음을
  우리 자손 만대에 소식 전한 그이
  보각 국존 일연선사를 만나 뵈러
  여기 인각사로 오라

 

  아 여든 살 그이
  촛불 밝혀
  한 자 한 자 새겨간
  그 찬란한 혼 만나 뵈러
  여기 인각사로 오라

  오라
  위천 냇물 인각사로 오라

 
  통곡의 때
  이 나라 온통 짓밟혀
  어디나 죽음이었을 때
  다시 삶의 길 열어
  푸르른 내일로 가는 길 열어
  정든 땅 방방곡곡에
  한 송이 연꽃을 들어 올린 그이
  보각국존 일연선사를 가슴에 품고
  여기 인각사로 오라

   

  일연 스님이 모시던 어머니도 가고

  일연스님도 가고

  인각사를 찾던 수많은 사람도 다 가고 없지만

  인각사 마당에는 민들레 씨앗이 무수하게 맺혀 있었다.

  나라를 지키려는 수많은 민초들의 소원인가?

  권력을 쥔 사람들이 아무리 짓밟고 억눌러도 민초들은 쓰러지지 않는다.

 

  학소대 앞에서 학생들이 돌을 던지며 놀고 있었다.

  꼬마들은 물속에 들어가서 물놀이를 하고 있었고....

  시냇물이 끊임없이 흐르듯이 역사는 쉬지 않고 흐른다.

 

  거기서부터 아내와 운전을 교대하여

 부근에 있는 <일연 공원>을 찾아갔다.

 군위댐과 붙어 있어서 경치가 퍽 좋았다.

 

 아내가 갑자기 배가 사르르 아프다고 해서

 공원 안에 있는 풀밭으로 갔다.

 살갈퀴 빨간 꽃에 벌이 많이 있어서 세 마리를 잡아

 합곡혈에 벌침을 한 방 놓아 주었다.

 나 같으면 중완혈과 단전에도 놓을 텐데 거기는 안 맞겠다고 해서

 남은 두 방을 내가 맞았다.

 

  군위 관광을 이 정도로 하고

  영양으로 방향을 잡았다.

  가는 도중에 바위가 멋진 <아미산>을 보았다.

  도깨비들이 모여서 놀던 산일까?

 

  목적지인 영양군 청기면 쪽으로 들어가자

 <선바위>가 보였다. 특이한 돌산이다.

 시간만 있으면 정자에 가서 쉬고 싶었는데

 민애씨 집에 빨리 도착하려고 발길을 재촉했다.

 

 드디어 청기면 토구길에 있는 민애씨 집에 도착했다.

 똑똑한 네비게이션이 주소대로 정확하게 데려다주었다.

 집앞에 진돗개 <김바람)이 있었다. 개 이름표는 처음 본다.

 개를 존중하는 주인의 성품을 엿볼 수 있어서 흐뭇했다.

 

 

 

 민애씨 집이 마을보다 높은 곳에 자리잡고 있어서

 정면으로 바라보이는 풍경이 좋았다.

 다락에서 보면 산들이 해바라기 꽃잎처럼 보인다고 했다.

 집도 잘 지어놓았다.

 나도 이런 집에 살고 싶었는데.......

 

  민애씨 신랑인 유진씨를 만나서 농사 현황을 들었다.

  주요 작물이 고추인데 7천 포기를 심는다고 해서 놀랐다.

  더구나 비탈밭이라 기계를 운전하기가 쉽지 않다고 해서 힘든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래도 수학 학원을 운영하던 것보다 마음이 편하다고 해서 공감이 갔다.

  나도 전원 생활을 하려고 

   잘 하고 있던 해운대 글나라를 정리하고 화명동으로 옮긴 적이 있으니까.

 

  하우스 안에 부어놓은 들깨 모종도 보고

  밭 위에까지 올라가 보았다.

  밭 옆에 두릅 나무가 많이 있는데 순이 여전히 남아 있는 것을 보고

  아내가 순을 뜯어도 되느냐고 물었더니

  유진씨가 다음날 아침에 많이 뜯어서 우리가 나올 때 선물로 주었다.

 

  저녁 식사를 함께 먹었다.

  내가 좋아하는 반찬들이 많아서 행복했다.

  부산에서 보기 힘든 어수리 나물에다 두릅, 상추와 돼지고기 요리.

  이만하면 최고의 시골밥상이다.

  아내는 남의 집에 가서 신세 지지 말자고 하지만

  밥을 같이 먹고 잠도 자야 서로 친해지지

  차만 마시고 나와 다른 곳에서 잔다면 형식적인 만남이 아닐는지.

 

 

    민애씨에게 부담을 좀 주기는 했지만 나는 즐거웠다.

   특히 민애씨를 보러 갔다가  제자는 뒷전이고

   유진씨와 막걸리를 마시며 밤늦게까지 이야기를 주고 받았다.

   서로 통하는 점이 많아서 이야기가 길게 이어졌다.

   귀농한 이유, 연고도 없는 곳에 정착하게 된 과정, 시골살이, 아들 이야기 등.....

   집을 짓다가 다친 일을 들을 때는 긴장이 되었다.

   그런 시련을 다 이겨내고 시골에 정착한 유진씨가 대단해 보였다.

 

   다만 민애씨가 남편과는 달리 시골살이에 적응을 못해서 힘들어했는데

   요즘 들어 새로운 일을 찾아서 하고 있고,

   조금씩 시골에 적응한다고 해서 마음이 놓였다.

   부부가 행복하게 살려면 조금씩 양보해서

   서로를 배려하는 수밖에 없다.

   

    민애씨 부부가 솔직해서 여러 가지 질문을 해도 숨김없이 다 들려주었다.

    나도 그런 편이기 때문에 더욱 공감이 되었다.

    가식적인 사람보다는 마음을 털어 놓는 사람에게 더 정이 간다.

 

  

         민애씨 집에서 두 사람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니

   나는 얼마나 아내를 배려했는지 새삼스레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 여보, 당신도 나 때문에 힘든 적이 많았지? 미안해. 나도 더 잘해줄게.'    

 

   민애씨 집에서 하룻밤을 잘 자고

  다음날에는 아침을 먹은 뒤에 주실마을로 갔다.

 

  거기에는 조지훈 시인의 생가와 문학관이 있었다.

  조지훈 시공원에 갔더니 시비가 많이 있어서 하나 하나 읽어보았다.

  글에 관심이 있는 분은 꼭 가보면 좋겠다.

  조각과 시비가 잘 어우러졌고

  백당나무 꽃이 한창 피고 있어서 경치도 좋았다.

 

담쟁이도 시를 읽고 싶은지 시를 더듬으며 올라가고 있었다.

애기똥풀 꽃도 시를 흥얼거리며 읽고 있었고...

 

 

 

   조지훈 문학관 옆으로 외씨 버선 길이 이어져 있어서

   다음에 시간을 내어 <외씨 버선> 길을 걸어보고 싶었다.

   부근에 있는 <시인의 숲>도 아름다웠다.

   청록파였던 조지훈 시인이 48세까지밖에 살지 못했는데도

   좋은 시를 쓴 덕분에 마을 전체가 명소로 조성되고

   많은 사람이 찾는 관광지가 되었다.

   여기서도 글의 힘이 얼마나 큰지 짐작할 수 있었다. 

 

  다음에는 우리나라 3대 정원의 하나인 서석지를 보러 갔다.

  담양 소쇄원, 보길도의 부용원과 더불어 영양의 서석지가 3대 정원으로 꼽힌다.

  여러 개의 바위가 물속에 잠기도록 되어 있어서

  서석지라고 이름을 지었다.

  크기는 작았지만 오밀조밀하게 잘 꾸며 놓은 정원이었다.

  나도 나름대로 잘 꾸며 놓은 범초산장이 있어서 부럽지는 않았다.

 

  마지막으로 이문열 생가가 있는 두들 마을로 가서

  문학 카페를 둘러보았다.

  군에서 무료로 운영하는 카페라 차를 공짜로 마셨다.

  군위에서부터 영양을 도는 동안에 입장료를 한 번도 낸 적이 있어서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다른 곳에서는 돈을 받는데 여기는 도무지 돈을 받지 않으니

  기분은 좋았지만 군 재정이 걱정되었다.

 

  더 볼 곳이 많았지만 아내가 피곤하다고 해서

  그 정도로 만족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1박 2일 동안에 제자 집을 둘러보고 여행도 할 수 있어서 좋았다.

  여느 관광지는 수박 겉핥기처럼 눈요기만 하고 돌아오지만

  지인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고 나를 돌아보며 여러 가지를 생각할 수 있어서

  큰 의미가 있었다. 

  나를 환대해준 민애씨와 유진씨에게 감사드린다.

  부디 시골살이가 쉽지 않더라도 서로 격려하고

  작은 행복에 만족하며 알콩달콩 잘 살기를 바란다. (*)

 

 

출처 : 글나라
글쓴이 : 凡草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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