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범초산장 이야기 783회) 붓꽃이 피는 계절
2017년, 5월 19일, 금요일, 맑음
(범초산장 이야기 783회) 붓꽃이 피는 계절
지난 토요일 저녁에 바다 장어를 쪄서 막걸리와 함께 먹고 잤는데 일요일 아침에 일어나니 머리가 어지럽고 열이 났다. 여러 번 토하기도 했다. 장어를 화명동 롯데마트에서 샀는데 바로 산장으로 가져와서 요리를 했더라면 아무 일이 없었을 텐데 하필 산장으로 들어오기 전에 부산아동문학 이사회에 갔다가 오느라 제법 시간이 지체되어 장어가 상한 모양이었다. 그런 줄도 모르고 맛있게 먹었다가 뒤늦게 고생을 했다. 앞으로는 음식 보관에 좀더 신경을 써야겠다.
일요일에는 동그라미 계원들이 왔는데 나는 아무 것도 먹지 못하고 아침 점심을 쫄쫄 굶은 채 매실 물과 소화제만 먹고 컨디션 조절을 했다. 요 근래 그렇게 아파보기는 처음이었다. 오후 늦게야 아내가 흰죽을 끓여 주어서 먹고 겨우 기운을 차렸다. 이번 경험으로 식중독이 얼마나 무서운지 알았다. 그래도 평소에 면역력을 길러 놓은 덕분에 병원에 안 가고 나았다.
월요일에는 평소와 다름잆이 산으로 갔다. 아내는 몸이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으니 무리하지 마라고 했지만 산에 가보니 아무 이상이 없었다. 그래서 금정산 최고봉인 고당봉까지 올라갔다. 조금 아파도 산에 가면 낫는데 컨디션이 좋아서 아무 문제가 없었다. 산을 거침없이 오를 수 있는 내 몸이 자랑스러웠다.
산 정상에서 준비해 간 도시락을 맛있게 먹었다. 살아가는 일이 별 거 있는가? 가고 싶은 곳에 가고, 먹고 싶은 것 먹고, 좋은 물 마시고, 맑은 공기 쐬면 그게 행복이다. 산 아래를 내려다 보니 온 세상이 내 품안에 있다. 내 작은 가슴도 산위에 서면 조금은 넓어진다.
고당봉에서 내려오다가 이런 풀이 많아서 무엇인지 한참 들여다보아도 알 수가 없었다. 여태 보지 못한 풀이라 할 수 없이 세울에게 물어보았더니 '애기수영'이란다. 수영은 본 적이 있는데 이게 바로 애기수영이었구나! 애기수영도 수영과 효능이 비슷한데 위장병과 관절염에 특별한 효험이 있다. 수영을 뿌리채 뽑아서 푹 끓인 다음에 맥주 컵으로 한 잔씩 밥 먹기 전에 마셔도 좋고, 수영을 뿌리채 끓인 다음에 엿기름을 삭혀서 단술로 만들어 마셔도 좋다. 오래 된 관절염이 나았다는 사례가 있다.
수영을 구하려고 밀양까지 간 적이 있는데 가까운 곳에 많이 있었구나! 길 가에 엄청나게 많았다. 씨가 맺히고 있어서 2-3주 뒤에 다시 가서 씨를 받아다 범초산장에 뿌릴 생각이다.
석산리 범초텃밭 부근에 마삭줄 꽃이 한창이다. 바람개비 모양으로 피었는데 향기도 많이 났다. 바람들이 여기 와서 한참 놀다 가지 않을까? 마삭줄 꽃은 바람들의 놀이터다.
범초텃밭에 갔더니 고수가 많이 자랐다. 지나간 일기에 썼는데, 그때 이웃집 밭에는 고수가 꽃을 피웠고 내 밭 고수는 이제 막 싹이 나왔을 무렵이어서 꽃 핀 고수가 부러웠는데 시간이 지나니 내 밭에 있는 고수도 뜯어 먹을 수 있을만큼 자랐다. 때가 되면 바라던 일이 다 이루이지기 마련이다. 단, 노력을 많이 했을 경우에만. 무작정 기다리기만 하면 이루어지지 않는다.
나는 고수 향을 좋아해서 상추와 함께 쌈을 싸 먹는다. 고수를 제법 많이 뜯었다.
석산리 범초텃밭은 75평인데 누가 보면 잡탕이다. 도대체 무엇을 심어 놓았는지 알기가 어렵다. 하지만 나는 다 안다. 아스파라거스도 있고, 인진쑥, 단삼, 꿀풀, 삼채, 가지, 오이, 제비꽃, 머위, 호박, 모시풀, 삼잎국화, 치커리, 민들레, 박하, 도라지, 엉겅퀴, 톱풀, 부지깽이나물, 명아주, 도꼬마리, 개미취, 돼지감자, 속단, 뚝갈, 삽주, 참취, 달맞이꽃, 양파, 마늘, 배초향, 메꽃, 초롱꽃 등... 갖가지 나물과 약초가 함께 자란다. 남들은 정신없다고 할지 몰라도 내 밭이 마냥 정겹기만 하다.
범초텃밭에는 평일 오전에 가서 관리하고 범초산장은 주말에만 돌본다. 밭이 두 군데나 있지만 별로 힘들지는 않다. 할 수 있는 만큼만 하니까. 여기에 가면 이것이 좋고 저기에 가면 저것이 좋다. 양쪽 다 장단점이 있으니 좋은 점만 취한다.
감꽃이 피었다. 조롱조롱 매달린 감꽃을 보니 참 귀엽다. 저렇게 작은 꽃봉오리에서 큰 감이 나온다니? 시골 아이들은 저 감꽃을 따서 목걸이를 만들어 걸고 다닌다던데 나는 마음으로 목걸이를 만들어서 걸었다.
보라빛 엉겅퀴 꽃이 피었다. 차를 끓여 마시려고 세 송이를 꺾었다. 내 밭에 핀 꽃이니 주저없이 딸 수 있었다. 올해도 작년처럼 엉겅퀴 꽃이 많이 필지 기대가 된다. 산딸기도 점점 익어가고 있다. 큰 딸이 미국에서 5월 24일에 들어올 예정인데 산딸기가 그때쯤 익으면 좋겠다. 큰딸이 둘째 딸 결혼식을 보고 6월 11일에 돌아가니까 충분히 가능할 것이다.
잔대도 여러 포기가 올라왔다. 여태 먹지 않고 아껴 두었더니 많이 번졌다. 윗 부분을 똑똑 따서 끓는 물에 데친 다음 된장에 무쳤더니 맛이 있었다. 예전에 강원도에 살던 어떤 사람이 몹시 허약하였는데 야생 잔대밭을 보고 잔대를 꺾어서 나물로 자주 먹었더니 몸이 강철처럼 단단해졌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었다. 그 글을 읽고 나도 잔대를 많이 키우고 싶었는데 제대로 되지 않았다. 몇 년 노력 끝에 이제는 잔대가 늘어났다.
요건 초석잠 밭이다. 머리를 맑게 해주는 초석잠. 아직까진 크게 필요하지 않아서 그냥 놓아두고 있다. 이것도 필요하면 언제든지 뽑아서 쓸 수 있는 구원 투수다. 다음에 필요할 때를 대비해서 미리 키우고 있다.
순복이가 범초산장에서 네잎클로버를 찾았다고 동시집 사이에 끼워두고 갔다. 나에게 행운이 오기를 바란다나...ㅎㅎ 순복아, 너 만난 것이 바로 행운이다. 내가 잘해준 것도 없는데 해마다 찾아와주어 고맙다.
이번 주에 스승의 날이 있어서 제자들한테 축하를 많이 받았다. 청탁금지법 때문에 학교 선생님들은 카네이션 한 송이 마음 놓고 못 받는데 이렇게 분에 넘치는 축하를 받아도 되는지 모르겠다. 쥐꼬리 만큼 가르쳐 놓고 해마다 축하를 받으니 여간 미안한 게 아니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 동화작가로 성장한 제자들이 나를 받들어주니까 나도 옹졸한 사람에서 조금씩 큰 사람으로 변해가는 듯 하다. 제자들을 두루 사랑해주는 선생이 되어야겠다.
범초산장 출입문이 신통찮아서 파리와 모기가 많이 들어왔는데 돈을 주고 원터치 방충망을 설치했다. 돈이 들어도 진작 이렇게 했어야 하는데.... 아주 편해서 들고 나는 것이 자유롭다.
범초산장에 가면 이런 밥 저런 밥을 번갈아 가며 해먹는다. 고구마밥도 하고, 뽕잎밥도 해먹는다. 오늘 저녁에는 곤드레를 데쳐서 나물로 무쳤다. 아귀찜을 해먹기 위해 사왔는데 상하지 않게 하려고 얼음을 받아서 채워 가지고 왔다. 덕분에 싱싱한 아귀찜을 먹을 수 있었다.
종이꽃 같이 생긴 스타치스 8포기를 심었다. 월동하는 꽃이라니 살아나면 좋겠다. 동화교실에서는 여러 제자를 가르치고, 산장에서는 다양한 꽃을 키우고 있다.
오늘 범초산장에 들어왔더니 때죽나무 꽃이 흐드러지게 피었다. 나 없는 사이에 피었다가 떨어져서 바위를 꽃방석으로 만들었다. 나를 얼마나 기다렸을까? 반갑다, 얘들아! 꽃 피우느라 수고 많았다. 바람이 괴롭혀서 힘들었지?
해마다 이때쯤이면 피는 붓꽃들! 올해도 곱게 피었다. 햐! 멋지다! 혼자 보기 아깝다. 지금 막 피어나는데 일주일 안에 지니까 많이 보아두어야겠다. 일 년에 한 번 볼 수 있는 붓꽃 잔치다.
계곡에 있는 노랑꽃창포가 피었다. 300밀리미터 폭우가 바위를 휩쓸고 갔는데도 떠내려 가지 않은 창포다. 그 대단한 생명력에 감동했는데 오늘 꽃을 보니 다시 한 번 더 눈길이 간다. 어디든 뿌리만 단단히 박으면 절대로 휩쓸려 갈 일이 없구나!
지난 주보다 염주가 조금 더 자랐다. 범초산장에 갈 때마다 요놈들 들여다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얼마나 컸을까? 기대하고 와서 보면 과연 더 커져 있다. 누가 막 잡아 당기는 것 같다. 비가 며칠째 오지 않아서 물을 떠다가 뿌려주었다.
치커리와 상추는 많이 컸는데 들깨는 아직 작다. 저게 언제 커서 쌈을 싸 먹지? 이렇게 생각하는 동안에 커서 또 따 먹는 날이 올 것이다. 더디게 자라는 것 같지만 쉬지 않고 자란다. 달팽이처럼 느리지만 꾸준히 크는 것이 참 무섭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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