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범초산장 이야기 827회) 하늘에서 내려준 보물
2017년, 12월 25일, 월요일, 맑음
(범초산장 이야기 827회) 하늘에서 내려준 보물 부산에 두 달 이상 비다운 비가 내리지 않아 범초산장 계곡물이 엄청 줄어들었다. 작은 바가지로 간신히 퍼낼 정도였는데 일요일 오전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천둥도 심하게 치고 겨울비치고는 요란하게 내렸다. 화장실에 갔다가 내다보니 빗줄기가 제법 굵었다. 햐, 이거 얼마 만에 보는 비냐? 비가 뭔지 모를 만큼 잊고 있었는데 이제야 내리는구나!
비가 오기 전에 아내가 청소해 놓은 계곡 모습이다. 토요일에 범초산장으로 들어온 아내는 얼음을 깨고 낙엽을 모두 걷어내었다. 그래야 깨끗한 물을 받을 수 있다면서.
하우스 안을 깨끗하게 청소하고 무나물, 배추나물 등... 반찬도 여러 가지 만들어 놓았다. 아내가 오니 산장에 한층 훈기가 돈다. 혼자서도 얼마든지 살 수 있다고 자신만만했는데 아내가 와서 하는 것을 보니 혼자서는 안 되겠다.
비가 그친 틈을 타서 아내와 계곡을 더 넓혀 놓았다. 혼자보다 둘이 하니 진도가 더 잘 나갔다. 나는 여태 들통으로 모래를 퍼 날랐는데, 아내가 수레를 가져 와서 거기에 담아 나르자고 했다. 훨씬 더 편하고 일이 빠르게 진행되었다. 역시 나보다는 일머리가 낫다. 월요일 아침에 계곡으로 가 보니 아니 이게 어찌된 일인가! 물이 엄청나게 불어나 있었다. 어제 비가 오고 난 뒤에 금방 물이 늘어나지 않아서 20밀리미터 정도 내린 비로는 아무 도움도 안 될 줄 알았는데 밤 사이에 서서이 물이 흘러내려 왔나 보다. 계곡을 가득 채운 물을 보니 하늘이 내려준 보물 같았다. 내가 아무리 기다리고 간절히 바라도 내리지 않던 비가 어느 날 순식간에 내려왔고 하루 종일도 아니고 두 세 시간 내린 비가 이렇게 고이다니......
물이 늘어나자 아무 걱정이 없다. 감질나게 바가지로 조금씩 퍼내던 물이라 한 동이 물이 아까워서 설거지 하기도 쉽지 않았는데, 양동이 가득 쉽게 떠올 수 있으니 하룻만에 기적이 일어났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그래도 한 가지 명심해야 할 일은 손 놓고 우두커니 비를 기다리기만 했다면 이렇게 많은 물을 얻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비가 내리기 전에 최대한으로 계곡을 확장해 놓은 덕분에 더 많은 물을 확보할 수 있었다. 사람이 자기 할일 하지 않고 하늘만 바라봐서는 안 된다. 자기 할일을 먼저 해 놓고 결과를 기다려야 한다. 하늘에서 내려오는 보물이 어찌 물 뿐이겠는가! 나무 열매도 알고 보면 해가 비춰준 햇살 덕분이고, 공기 역시 하늘이 준 보물이다. 글나라를 찾아준 사람들도 큰 보물이고.... 하늘이 도와주지 않으면 사람은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내가 잘 나서 비가 오는 것이 아니고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이 달린 일이라 비가 내리는 것이리라. 항상 겸손한 마음으로 자연에 감사하며 살아야겠다.
개옻나무가 다른 나무를 가릴만큼 크게 자라서 톱으로 잘라주었다. 옻이 오를까 봐 저수지 쪽으로 쓰러뜨렸다.
아내와 진이를 데리고 약수터에 물 뜨러 갔다. 왕복 40분 정도로 거리가 적당하다. 진이도 살맛 나는지 낙엽 속에 들어가 장난을 쳤다. 그랬는데, 금요일부터 오늘까지 세 번이나 약수터에 갔다 왔더니 진이가 발을 절룩거렸다. 가만히 보니 오른쪽 발이 휘어졌다. 그전에 내가 산에 무리하게 데리고 다녀온 뒤로 진이 발이 고장났다며 야단을 많이 맞았는데 요 며칠 다 나은 것 같아서 안심했더니 또 상태가 나빠졌다.
마침 크리스마스 파티를 하러 왔던 딸이 보더니 당장 동물병원에 데리고 가잔다. 내가 잠시 망설였더니 자기가 돈을 내줄 테니 어서 가잔다. 할 수 없이 차에 싣고 양산에 있는 <힐스 동물병원>으로 갔다. 우리는 골절이나 인대가 늘어났을까 봐 걱정을 했는데 수의사가 보더니 구루병이란다. 한창 발육할 때라 영양분이 모자라서 발이 그렇게 되었단다. 영양분이 부족하거나 회충에게 영양분을 빼앗겨도 그렇고 햇빛을 못 쬐어도 그런 병이 생긴다고 했다. 영양분이 많은 사료를 권해주고 영양제를 처방해주었다. 회충약도 5일 간격으로 먹이라고 다섯 알을 받았다. 간 김에 예방주사도 맞고... 11만 원 정도 들었지만 병명을 알고 나니 안심이 되었다.
다시 산장에 데려다 놓고 집으로 돌아왔다. 당분간 심한 운동을 시키면 안 된다고 해서 가벼운 산책만 시킬 작정이다. 요사이에 갑자기 덩치가 커지더니 그 부작용인가 보다. 우리는 너무 잘 먹여서 몸이 비대해졌나 걱정했는데 도리어 영양 부족이라니 어리둥절했다. 딸 덕분에 크리스마스 점심을 잘 먹었다. 나도 살이 많이 찌면 구루병 걸릴지 모르니 적당히 먹어야지. ㅎㅎ 광주에서 동화를 쓰고 있는 윤미경씨가 새로 낸 책을 보내주었다. 어제 저녁에 산장에서 읽었는데 가슴이 북바쳐서 나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다. 내가 책을 읽고 눈물 흘린 적이 잘 없는데.... 갈등을 잘 만드는 윤미경씨라 기대를 하고 읽었는데 역시 실감나게 잘 썼다. 참 잘 쓴 글이라 감사하다고 카톡을 보냈다.
크리스마스 이브에는 아내와 영화 두 편을 보았는데, 두 편 다 수작이었다. 사랑이 얼마나 소중한 지 느낄 수 있는 영화였다. <어느 멋진 순간>과 <블라이드 가이>는 재미와 감동을 함께 느낄 수 있는 영화인데 안 보신 분은 꼭 보기를 추천한다. 아내에게 모처럼 좋은 영화를 골랐다고 칭찬을 들었다.
12월 23일 토요일에는 연산로터리 bh건물 6층 홀에서 다섯 제자들의 합동 출판기념회가 있었다. 올해 첫 책을 낸 강경숙, 김나월, 김영주, 이상미, 이자경 - 다섯 사람이다.
안덕자, 양경화, 이분희, 강기화, 황미숙, 우리아 등... 여러 제자들이 힘을 모아 출판기념회를 준비했다. 나는 이런 행사가 있으면 어떨까 의견만 내었는데 몇 사람이 모여서 머리를 짜내고 애쓴 덕분에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알차고 짜임새 있는 행사가 되었다. 형식적인 출판기념회가 아니라 오래 기억에 남을 만 했다. 장소가 비좁아서 많은 사람을 초대하지는 못했고 장편동화를 지도하는 김문홍 박사와 동시교실을 지도하는 박 일 선생님, 그리고, 젊은 작가들이 주축이 되어 20여 명이 모였다. 두 선생님이 좋은 덕담을 해주었고, 한 사람씩 돌아가며 인사말을 했다.
나는 다섯 제자들이 들풀 씨앗 같다고 비유했다. 등단하고도 오래 책을 내지 못하다가 드디어 책을 내었으니 도깨비바늘이나 도꼬마리가 사람 옷자락에 딱 달라붙어 있는 것과 비슷하다고. 오랜 세월동안 털려 나가지 않고 아동문학 판에 붙어 있는 것이 눈물겹다. 부디 이 날의 감동을 잘 간직하여 아동문학을 오래 사랑했으면 좋겠다.
글나라 제자들이 점점 늘어가니까 이런 좋은 전통은 계속 살려나가야 할 것이다. 나보다는 남을 더 배려하며, 한 두 사람보다는 전체를 생각하는 작가들이 되길 바란다. 나 또한 제자들을 뒤에서 지켜보며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조언을 할 생각이다. 여태까지는 제자들이 책을 내어도 개인적으로 축하를 해주었을 뿐, 이런 큰 행사를 열지는 못 했는데 제자들이 많이 늘어난 덕분에 가능하게 되었다. 글나라 해님반과 달님반, 신세계 동화교실 팀이 일을 나누어 맡았다. 책을 낸 다섯 제자들에게 한 번 더 축하의 인사를 전하며 행사를 준비하고 수고한 제자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다음에도 축하해줄 일이 있으면 함께 모여 축하해주고 기쁨을 나누었으면 좋겠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