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범초산장 이야기 832회) 처음 본 생선회 케이크
2018년, 1월 15일, 월요일, 맑음
(범초산장 이야기 832회) 처음 본 생선회 케이크
지난 주 월요일에는 몸 컨디션이 안 좋은데다 비가 와서 등산을 못 가고 쉬었다. 오늘은 강추위도 잠시 물러가고 포근해서 등산 가기 위해 도시락을 준비했다. 일 보러 나가려던 아내가 나를 보고 말했다. "감기 나아갈 때 무리하면 덧날 수 있으니 무리하지 말아요." "알았어. 가까운 곳에 갈게." 아내 말대로 무리하지 않고 집 근처 오봉산 둘레길을 걸으려다 범초산장으로 가서 진이와 등산하기로 했다. 토요일에 윈드와 경주로 딸기를 따러 가기로 했으니 오늘 안 가면 진이는 7일 만에 보게 된다. 몸이 안 좋을 때 산으로 가서 더 안 좋아진 경우는 거의 없다. 나는 감기도 털어버리고 진이와 등산도 할겸 범초산장으로 갔다. 지하철을 두 번이나 환승해서 범어사 역에 내린 다음에 마을 버스를 갈아 탔다. 승용차로는 우리집에서 범초산장까지 30분 정도지만, 지하철을 타면 왕복 3시간 정도가 걸린다. 그런데도 진이를 찾아가는 것은 나를 무척 반갑게 맞이하기 때문이다. 누가 나를 보고 그렇게 반가워할까? 사람도 나를 진이처럼 그렇게 환대한다면 없는 시간이라도 짜내어 찾아갈 것이다. 진이는 나를 보자마자 펄쩍펄쩍 뛰고 난리가 났다. 좋아서 어쩔 줄 모르는 녀석을 보며 오기를 잘했다고 생각했다. 공덕산 계곡을 끼고 올라갔다. 날씨가 어찌나 포근한지 봄날 같았다. 계곡에는 아직 얼음이 얼어 있었지만 얼음장 밑으로는 물이 흐르고 있었다. 아무리 힘든 일이 닥쳐 오더라도 정신만 차리면 이겨낼 수 있다는 것을 얼음이 말해주고 있다. 맨발에 춥지도 않은지 얼음판 위에 올라가서 얼음을 핥아 먹는 진이. 추울까 봐 준비해 간 물을 종이컵에 따라 주었더니 할짝할짝 잘 마신다. 열이 많은 개라고 하지만 얼음물을 마시게 할 수는 없지. 영하 9도의 강추위에서도 방석을 물어내고 맨바닥에 자는 걸 보니 입고 있는 모피 코트로 감당이 되나 보다. 말티즈 같은 작은 애완견들이야 밖에서 살 수 없겠지만 진돗개는 끄떡없이 겨울을 나고 있어서 대견하다.
진이가 9월 15일 생이니 아직 4개월 밖에 안 되는데 몸집을 보면 거의 어른이 다 되었다. 등산을 가도 이제는 펄펄 난다. 나보다 더 빨리 달려가서 내가 못 따라 가면 꼭 뒤돌아본다. 주인을 팽개치고 혼자 멀리 가지 않는 걸 보면 진돗개 잡종이라도 진돗개 피가 섞여 있어서 충성심이 대단하다. 점심 먹을 때도 절대로 어디 가지 않고 내 옆에서 맴돈다. 그런 맛에 진돗개를 키운다. 내가 점심 먹는 동안에 진이가 심심할까 봐 고구마, 감, 과메기 등을 간식으로 주었다. 진이는 간식을 받아먹고 나뭇잎에 목욕도 하고 벌러덩 드러누워 있기도 했다. 내가 안 왔더라면 혼자 하루 종일 줄에 묶여 있었겠지만 나와 같이 산을 누비니 신이 났다. 똑같은 개라도 도라지집 개들은 언제나 줄에 묶여 있다. 키워서 잡아 먹기 때문에 정을 안 준다고 하는데 그 집 개에 비하면 진이는 주인을 잘 만났다. 범초산장에서 철마산 입구까지 왕복 3시간 정도 산행을 했다. 그전에는 진이가 어린 탓인지 발을 절룩거리고 잘 못 걷더니 이제는 등산도 문제 없이 한다. 앞으로는 더 높은 산에 도전해볼 생각이다. 범초산장 계곡에는 물이 고여 있어서 언제든지 퍼낼 수 있다. 내일 비가 온다니 물이 더 불어나겠다. 당분간은 물 걱정 안 해도 되니 좋다. 겨울에는 물통을 다 비워버리고 물을 길어다 쓰지만 나는 불편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이런 주말 농장도 없는 사람에 비하면 이건 호사니까.
참샘회 회원들이 모임을 시작한 지 20주년이 된다고 나와 아내를 초대했다. 해운대 중동에 있는 일식당 <삿뽀로>에 갔다. 참샘회 회원들은 글나라 출신으로 모임을 만들었는데 처음에는 10주년에만 초대하였다. 그러다가 몇 년 전부터는 해마다 초대를 해주었다. 몇 번 사양을 했는데도 자꾸 오라고 불러서 감사한 마음으로 참석하게 되었다. 음식이 나오는 것을 보니 깔끔하고 정갈했다. 여태 보지 못한 고급 음식들이었다. 맛도 있었지만 참 아기자기한 차림새였다. 소라 모양, 조개 모양의 그릇을 얼려서 그 위에 두터운 무를 얹고 생선회를 올려놓았다. 문어를 팥으로 무쳐 놓은 것도 처음 먹어보았다.
내가 사립초등학교에 교사로 있을 때는 경기가 좋을 때였고 김영란법도 없을 때라 잘 사는 학부모들한테 고급 식당으로 초대를 많이 받았는데 이번에 받은 상은 최고급 수준이었다. 이런 고급 식당에는 어쩌다 한 번 갈 수 있기에 아내도 기분이 좋은 모양이었고 미국에 있는 딸에게 자랑하려고 사진을 여러 장 보냈다. 이 식당의 하이라이트는 얼음 케이크 위에 생선회를 붙여 놓고 촛대도 회를 감아서 그 위에 초를 세워 놓았다. 이런 생선회 케이크는 처음 보았다. 재밌는 아이디어였다. 이런 식이라면 파프리카 케이크, 호박 케이크, 딸기 케이크, 오리 케이크, 닭 케이크, 메추리알 케이크도 가능하겠다. 모두들 이 케이크를 사진으로 담느라고 샷터를 바쁘게 눌렀다. 강숙씨는 손녀가 태어나서 참석하지 못했고 이명순, 구문희, 김수미, 황미향, 류명순씨가 참석했는데 봄에 참샘회 회원들을 범초산장으로 초대해서 빚을 갚을 생각이다. (*) 2018년 1월 12일 부산일보에 발표한 글 어른들이 주는 상처 <얼룩말 무늬를 신은 아이> 윤미경 / 중앙출판사 한결이 귀에 얼룩말 울음소리가 자꾸만 들린다. 한결이는 왜 그런 소리가 들리는지 처음에는 영문을 모른다. 학교에 가다가 어떤 꼬마를 만났는데 양말을 사라고 했다. 얼룩말 무늬 양말이었다. 사탕 두 알을 주고 그 양말을 샀는데 그 뒤부터 이상한 일이 벌어진다. 어느 순간 자신도 모르게 얼룩말처럼 막 달려가게 되는 것이다. 그 의문을 풀기 위해 배고픈 다리 동물원을 찾게 되는데, 거기에서 얼룩 무늬가 사라진 얼룩말을 만난다. 그 얼룩말이 얼룩무늬를 돌려달라고 하고, 한결이는 왜 여태까지 자신의 귓가에 얼룩말 울음소리가 들렸는지를 알게 된다. 이 책은 추리소설처럼 이야기를 특이한 형식으로 풀어나간다. 처음에는 무슨 말인지 이해가 안 되고 황당하게 보이지만 점점 읽어나갈수록 퍼즐 조각을 맞추듯이 전체 내용을 이해하게 된다. 작가가 정교하게 얽어 놓은 구성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한결이는 친 엄마와 새 엄마 사이에서 마음의 갈등을 겪고 있다. 부모의 이혼은 어른들의 문제지만 그 충격은 오래도록 아이 가슴에 큰 상처를 남긴다. 어른들은 하루아침에 새 엄마를 엄마라고 부르라 하지만 준비가 안 된 아이는 당황스럽다. 그래도 이 책에 나오는 새엄마는 친엄마 못지않게 좋은 분이라 그나마 다행이다. 한결이가 재혼한 엄마를 만나러 갔다가 아기를 업고 있는 것을 보고 말없이 돌아서는 장면을 읽을 때는 가슴이 먹먹해졌다. 아이들이 어른들 때문에 마음의 상처를 입고 고통을 당해서는 안 되겠다. 얼룩말은 동물원에서 자유롭게 뛰놀아야 하고 아이들은 화목한 부모 밑에서 마음 편하게 커야 한다. 김재원 (동화작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