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이야기

[스크랩] (범초산장 이야기 854회) 작은 고장도 감사해

凡草 2018. 4. 13. 11:09


  

  2018, 413, 금요일, 맑음

 

  (범초산장 이야기 854) 작은 고장도 감사해

 

49일 월요일에는 머위 쌈밥을 도시락으로 싸서

진이를 데리고 산으로 갔다.

멀리까지 갔다가 산에서 점심을 먹고 돌아올 생각이었다.

진이는 오랜만에 나들이를 해서 그런지 이리 뛰고 저리 뛰고

제 세상을 만난 것처럼 좋아했다.

한 곳으로만 얌전하게 가는 것이 아니라 숲으로 들어갔다 나오고

개울물도 밟고 다니고 자기가 하고 싶은 데로 다 했다.

그래도 나를 벗어나 아주 멀리 가지는 않아서 데리고 다닐 만 했다.

 

  점심을 먹을 때는 내 옆에 오지 않도록 주의를 주고

저만치 떨어진 곳에 간식과 먹을 것을 놓아주었더니

조금 떨어진 곳에 앉아서 쉬었다.

 

  머위 쌈밥을 맛있게 먹고 커피까지 한 잔 마신 다음에

다시 숲속을 걸었다.

 청미래 덩굴이 엄청 많은 곳을 지나다가

초피나무 잎을 발견하고 조금 뜯었다.

 밥 먹을 때 초피잎을 된장에 찍어 먹으면 입안이 개운하다.

 돌아오는 길에는 어느 농장 옆을 지나는데

사나운 개가 우리를 보더니 길길이 뛰다가

그만 줄이 끊어져 버렸다.

그 개는 악착같이 짖으며 울타리 쪽으로 달려왔다.

그물이 처져 있어서 당장 나오지는 못했지만

이를 드러내고 무섭게 짖어대었다.

나는 그 개가 나오지 못하도록 막대기를 주워서 휘둘렀는데

이번에는 진이가 그물 밑으로 들어가려고 해서 말리느라 애를 먹었다.


두 개가 마주 보고 으르렁대서 진이 목줄을 바투 쥐고 뛰었다.

그곳에 계속 있다간 어떤 험악한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었다.

한참 달려서 내려왔더니 다행히 사나운 개는 따라오지 않았다.

, 십 년 감수한 기분이었다.

진이를 산책시키는 것은 좋은데 가끔 다른 개를 만나면

싸울까 봐 겁이 난다.

 

  그래도 진이가 산에서 어떤 사람을 만났을 때

물려고 덤비지 않고 반가워해서 안심이 되었다.

사람을 만날 때마다 물려고 달려든다면 데리고 다닐 수가 없을 것이다.

 길을 잘못 들어 찻길로 내려오게 되었는데

진이가 차를 보더니 달아나려고 기를 써서 제지하느라 힘들었다.

 찻길 옆을 한참 걷고 나서야 조금 적응이 되었는지 날뛰지 않았다.

 

  어쨌거나 진이를 데리고 4시간 정도 걷고 돌아와서

솔잎효소를 담았다.

 솔잎을 따서 바구니채 담아 흐르는 계곡물에 담가놓았다.

하루나 이틀 정도 놓아두면 좋은데 그럴 시간이 없어서

한 두 시간 뒤에 건져서 유리병에 넣었다.



  솔잎은 물기가 적기 때문에 설탕 시럽을 만들어서 담으면 좋다.

물과 설탕을 1:1로 섞은 다음에 솔잎을 넣으면 된다.

 발효를 시작하게 되면 가스가 나오기 때문에 병마개를

꽉 닫아두면 안 되고 느슨하게 열어두어야 한다.

 솔잎 효소는 고혈압, 혈액순환, 동맥경화에 좋은 약재가 된다.

 

  솔잎효소를 담고 나서 집으로 돌아오려고

범초산장에서 내려오는데 길가에서 공사하는 것을 보았다.

이웃에 있는 밭을 새로 산 사람이 하수구를 정비하고 있었다.

그전 같으면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차마 못하고 그냥 지나쳤을 텐데

이제는 비위가 늘어서 포크레인 기사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수고 하십니다. 작업을 많이 하시네요.”

  그러자 포크레인 기사를 잠시 일을 멈추고 나를 돌아다보았다.

무슨 일이 있느냐는 눈치였다.

저는 저 위에 사는 사람인데요. 이 구간이 너무 좁아서

가끔 초보 운전사들이 운전 미숙으로 차바퀴를 빠뜨립니다.

작업하는 김에 큰돌 몇 개를 길 옆에 넣어주면 안 될까요?

그러면 차가 빠지지 않아서 좋을 텐데요."

 기사는 내 말을 들어보더니 물 빠지는데 지장이 없겠냐고 되물었다.

하수구를 다 메우는 게 아니고 큰돌을 듬성듬성 놓으면

물 내려가는 데는 지장이 없을 거라고 했더니 그러면 해보겠다고 말했다.


 범초산장으로 들어 가는 길 중에서 이 구간 10미터 정도가 위험했는데

보완이 될지도 몰라서 기뻤다.

  아예 안 될 거라고 시도하지 않는 것보다

밑져야 본전이니 무슨 일이든지 시도하는 것은 바람직하다.

 

  410일 화요일에는 아내와 밀양 종남산에 진달래를 보러 갔다.

원래는 월요일에 진이와 등산을 했기 때문에 시간이 날 때

석산밭을 둘러보러 갈 참이었는데,

 아내가 텔레비전에서 밀양 종남산 진달래 축제 소식을 듣고

가보자고 했다.

 아주 오래 전에 종남산에 진달래를 보러 간 적이 있는데

그때 진달래가 얼마나 흐드러지게 피었는지

흡사 꽃바다 속에 빠진 기분이었다.

 그때를 상상하며 차를 타고 밀양으로 달려갔다.

 

   하지만 큰 기대를 안고 산을 올라가는데 벌써 올라갔다가

내려오는 등산객 말로는

며칠 전에 꽃샘추위가 몰아닥쳐 정상 부근의

진달래들이 꽃봉오리채 얼어서 다 떨어졌다는 것이었다.

아이코, 그럼 꽃구경은 다 했구나.


  올라가보니 정말 그랬다. 진달래는 얼마 피어있지 않고

텅빈 가지만 남아 있었다.

 공연히 헛걸음한 셈이었지만 그래도 좋았다.


                    복숭아꽃(복사꽃)


                        사과꽃


                   수수꽃다리 (라일락)


 모처럼 아내와 등산을 했고 산에서 준비해간 도시락을 잘 먹었고,

초피나무 잎도 딴 데다 멋진 복숭아꽃을 볼 수 있어서 만족스러웠다.

꿩이 아니면 닭이라고 했으니....

 

   딸 봉현이가 대만에서 열리는 락페스티발에 참가했다.

작년 4월에는 자비를 들여서 갔지만

 올해는 문센트 밴드의 실력을 인정받아서

비행기표와 호텔 숙박을 주최측이 지원해주었다.

 나도 그렇지만 딸도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어서 보기에 좋다.

 

   411일 해님반 동화교실에서 수업을 하고 있는데

교실 바닥에 물바다가 되어서 소동이 벌어졌다.

냉온수기에서 물이 흘러나온 것이었다.

 제자들은 기계가 고장나서 물이 흘러나온다고 했지만

오후에 내가 실험해보니 생수병에 문제가 있었다.


  꽂아두었던 생수병을 뽑아내고 비어 있던 병에 물을 채워 끼워보니

전혀 물이 흐르지 않았다.

  그래서 생수 배달 업체 직원에게 전화를 했더니

드물기는 해도 그런 일이 벌어진다고 인정했다.

 위에 구멍이 나면 압력이 세어져서 물이 저절로 흘러내리게 된다고....


 그러면서 화요일에 새로운 생수 한 병을 무료로 갖다주겠다고 했다.

나는 원인을 알았으니 괜찮다며 내가 돈 주고 사겠다고 했다.

기계가 고장 났으면 돈이 더 들어갔을 텐데 생수 한 병이야

5000원이니 내가 내어도 그만이다.

 그런데도 생수 직원은 그냥 주겠다고 해서 감사했다.

나야 한 사람이니 별거 아니지만 수많은 고객을 일일이 응대하려면

얼마나 힘들 것인가!

 큰 고장이 아니라 작은 고장이 났으니 도리어 감사해야 할 일이다.

 

  생전에 어머니는 남에게 베풀기를 좋아하셨다.

비록 가난했지만 이웃과 작은 것이라도 나누어 먹었고,

설과 추석에는 신세진 분들에게 고무신 한 켤레라도 선물로 드렸다.

 나도 그걸 보고 자란 탓인지 학교에 있을 때는

명절마다 웃어른들과 청소부, 일꾼들에게 선물을 챙겨드렸다.

그게 사람의 도리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런지 주위 사람들에게 좋은 평을 들었다.

 

 종남산 등산을 마치고 양산으로 돌아와

우리 집에서 가까운 센텀사우나에 갔을 때였다.

어찌된 일인지 목욕료가 6500원에서 500원이 내려 6000원이었다.

알고 보니 여름 하절기에 목욕객이 줄어들 것을 예상하여

500원 할인 행사를 하는 모양이었다.

 어쨌거나 두 사람이면 천 원 이익이라 감사하다고 인사를 했더니

돈 받는 분이 내린 뒤로 인사를 받아보기는 처음이라며 웃었다.

돈이 적으면 인사를 안 하고 많으면 인사를 한단 말인가!

사람은 작은 것에 감사할 줄 알아야 한다.

 별거 아니라도 크게 감정 표현을 하면서 기뻐하면 기분이 한층 더 좋아진다.

500원을 5만 원 이익처럼 기뻐했더니 목욕하는 것도 더 즐거웠다.

 

   수요일 오후에는 동기들과 부부계를 했다.

한 달에 한 번 만나는 반가운 얼굴들이다.

 사직동 장어구이 집에서 저녁을 맛있게 먹었다.

다들 약을 먹거나 건강이 안 좋아서 술을 피했는데

나 혼자 막걸리 한 병을 마셨다.

 건강하니까 막걸리를 마실 수 있는 것도 큰 기쁨이다.

                      (*)

 


출처 : 글나라
글쓴이 : 凡草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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