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범초산장 이야기 856회) 올해 농사를 시작하다
2018년, 4월 22일, 일요일, 흐리고 비
(범초산장 이야기 856회) 올해 농사를 시작하다
지난 3월 23일에 감자를 심었지만 올해 본격적인 텃밭 농사는 이번 주부터 시작된다. 어제 금정농약종묘상에 가서 텃밭에 심을 모종을 사다 심었다.
호박 6포기, 오이 9포기, 가지 9포기, 일당귀 4포기 고추 32포기, 토마토 12포기, 옥수수 40포기, == 모두 3만 원이 들었다.
아내가 무엇이든 적게 심으라고 하는 것을 내가 우겨서 몇 포기씩 더 샀다. 너무 적게 심으면 먹고 말 게 없다.
이렇게 하루 수고해서 심으면 6월부터 10월까지 다섯 달이 즐겁다.
부산에서는 고추, 가지 등을 4월 20일 지나서 심으면 좋은데 배롱나무 싹이 나올 때와 거의 일치했다. 밤에 산장에서 잘 때, 어제 처음으로 소쩍새 소리를 들었다. 소쩍새가 울기 시작하면 고추, 가지 등을 심어도 되겠다. 모종을 다 심어 놓고 자려고 누웠더니 소쩍새 소리가 들렸다. 올해 처음 듣는 소쩍새 소리였다. 저 새 소리는 아무리 들어도 정겹기만 하다.
원래는 ‘소쩍, 소쩍’하고 울지만, 내게는 ‘모종 심었정, 심었정?’하고 묻는 것처럼 들렸다.
요즘은 돈 가치가 없어서 3만 원이 큰돈이 아닌데 모종값 3만 원이면 여름 내내 고추와 오이, 가지를 따 먹을 수 있으니 텃밭 농사가 참으로 행복하다.
글나라 달님반에 33살 김민영씨가 새로 들어왔는데, 한 달 수강료로 모종값을 해결할 수 있으니 감사한 일이다. 텃밭에는 모종을 심고 동화교실에는 사람을 심었다. 양쪽 다 잘 보살펴서 크게 키워 나갈 것이다.
(호장근)
모종은 심기만 하면 끝이 아니고 바람에 흔들리지 않도록 끈으로 일일이 묶어주어야 한다. 세심하게 보살펴주지 않으면 모종이 살아날 수 없다.
사람 가르치는 일도 마찬가지다. 사무적으로 가르치기만 하면 어느 날부터 오지 않는다. 지나친 관심도 곤란하지만 적당한 관심을 주면서 잘 이끌어야 동화교실에 꾸준히 다녀서 좋은 동화를 쓰게 된다.
범초산장에는 봄빛이 짙어가고 있다. 제비꽃도 이쁘게 피었고, 때죽나무도 연두빛 싹을 올림머리처럼 치장했다. 쑥이 하루가 다르게 부쩍 자라서 제자들이 몇 번이나 와서 쑥을 캐갔다.
모란꽃이 처음으로 꽃을 피웠다. 심은 지 3년 만이다. 세 그루를 심어 놓았으니 꽃을 많이 볼 수 있겠다. 아흐, 참 이쁘다!
둥굴레는 싹이 나오기가 무섭게 종같은 꽃등을 매달았다. 봄빛을 하루라도 놓치지 않고 열심히 자란 덕분이겠지.
삼백초 싹들이 무성하게 올라오고 있다. 조금 더 크면 꺾어서 된장에 찍어 먹을 생각이다. 대장암을 예방할 수 있는 약초다.
( 오봉산에서 본 호랑버드나무 꽃)
기온이 점점 올라가서 초여름 같은 날씨를 보이니 추위를 싫어하는 나무들도 잎을 거의 다 내밀었다. 대추가 늦게 나오는 편인데 잎을 내밀기 시작했고, 제일 늦게 나오는 석류가 잎을 내밀 채비를 하고 있다.
양하는 더워야 싹이 나오는지 아직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 삼지구엽초 꽃)
잎이나 싹이 빨리 나오느냐 늦게 나오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고 자신의 가치를 얼마나 간직하고 있느냐가 더 중요하다. 어느 물건의 가치가 크면 사람들은 비싼 값이라도 주고 사지만 가치가 떨어지는 것은 공짜로 주어도 가져가지 않는다. 사람도 가치가 별로 없는 사람이 아무리 떠들고 제 자랑을 해봐야 남이 알아주지 않는다.
조용히 있어도 가치가 높은 사람은 남들이 높이 평가한다. 글을 쓰든 그림을 그리든 노래를 하든 자신의 가치를 높여야 남에게 좋은 인상을 주고 환영받는다.
내가 좋아하는 명아주 나물이 나오기 시작했다. 돈 안 들고 공짜로 먹는 나물이다. 아이고 감사해라! 산장 흙이 좋아지니 명아주도 쑥쑥 잘 큰다.
메꽃을 번식시키려고 노력한 덕분에 산장 여기 저기에 자리잡았다. 남들은 잡초라고 볼 지 모르지만 내겐 귀한 약초다. 아무리 늘어나도 뽑지 않고 잎만 나물로 따 먹을 테니 안심하고 쭉쭉 자라거라. 널 보면 밀양 노루실 마을에서 뜯어 먹을 때가 생각난다. 여러 가지 좋은 효능이 많아 귀하게 대접할 만 하다.
어제 오후에 동래초등학교 제자들인 김태관과 박기덕, 허성필이 찾아왔다. 예고도 없이 갑자기 와서 더 반가웠다. 늘 그랬듯이 해산물을 듬뿍 사와서 덕분에 잘 먹었다. 그냥 빈손으로 오라고 해도 꼭 무엇을 들고 온다. 미안하면서도 고맙다. 제자들 덕분에 즐거운 오후 시간을 보냈다.
아내와 꽃모종을 사다 화분을 만들었다. 백일홍 4포기, 마가렛 2포기, 채송화 5포기 - 15000원이면 집앞이 아름다운 화원으로 변한다. 아내가 이쁘게 잘 만들어 놓았다. 아이고, 이쁜이 솜씨 좋네!
울산에 있는 동화작가 장세련씨가 쓴 <채욱이는 좋겠다>를 읽었다. 좋은 책을 보내주어서 감사하다.
채욱이가 동우 집에 놀러 갔다가 동우가 많이 갖고 있는 장난감이 탐이 나서 몰래 하나를 숨겨 온다. 나중에 동우가 없어진 것을 알아채고 채욱이에게 찾아와서 장난감을 돌려달라고 하지만 채욱이는 시치미를 뗀다.
( 정향풀과 냉초)
동우 부모님까지 찾아와서 장난감을 가져 왔으면 돌려달라고 부탁해도 막무가내로 아니라고 한다. 그랬는데, 채욱이 아빠가 동우 부모님한테 자기 아이는 절대로 남의 것을 훔칠 아이가 아니라고 말해놓고는 몰래 동우 집을 찾아가서 무릎을 꿇고 용서를 빈다. 채욱이 아빠가 아들의 자존심을 살려주고 남몰래 설득하기 위해 선택한 방법이다. 현명한 부모의 모습이다.
나는 이 책을 읽고 생각해 보았다. 아들의 체면을 생각한 것을 좋지만 절대로 이기적으로 키워서는 안 된다고. 요즘에는 가족 이기주의를 지닌 사람이 많다. 남들에게는 손톱만큼도 양보하지 않으면서 자기 자녀에게는 간이라도 빼줄 듯 헌신적이다. 그래서는 안 된다. 자기 자녀나 남을 똑같이 대할 수는 없더라도 남의 자녀도 내 자녀처럼 소중하게 여겨야 한다.
(겨자무)
오래 전의 일인데, 내가 초등학교 4학년을 담임하고 있을 때였다. 지금 같으면 어린이날에 부모가 선물을 만들어 학교에 가져올 수 없지만 그 당시는 그게 예사였다.
어느 해 어린이날을 하루 앞두었을 때 성욱이 엄마가 땀을 뻘뻘 흘리며 무슨 가방을 두 개나 들고 왔다. 풀어보니 손수 만든 꽃들이었다.
그때는 한 반에 50명이나 되었는데, 이틀 밤을 꼬빡 세워 꽃송이 51개를 만들어온 것이었다. 어찌나 정성스럽게 만들었는지 아주 이뻤고 살아 있는 꽃 같았다. 내 것까지 만들어 와서 가슴에 단 순간 가슴이 뭉클했다. 자식이 뭐라고 이렇게 정성을 다해서 친구들 것까지 만들어오다니! 나는 성욱이 엄마를 보고 큰 깨달음을 얻었다.
비단 내 자식만 귀한 게 아니라 남의 자식도 귀하다는 것을. 내 자녀에게만 사랑을 펑펑 쏟아부을 게 아니라 남의 자녀에게도 사랑을 나누어 주어야겠다는 것을. 세상은 더불어 살아가는 것이다. 나와 내 가족만 챙기는 사람들은 남들에게 좋은 인상을 받지 못한다. 사랑은 고루 나누는 것이지 한쪽으로만 쏠리면 집착이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