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범초산장 이야기 857회) 한련화 꽃밥과 구기자 나물
2018년, 4월 23일, 월요일, 하루 종일 비
(범초산장 이야기 857회) 한련화 꽃밥과 구기자 나물
<산야초와 약초세상> 카페에서 금낭화님이 올린 글이다.
- 구기자 순을 뜯어 된장 한 숟갈을 물에 풀어 졸인 후 마늘 깨소금 매실엑기스 조금.. 참기름 넣고 조물조물.. 먹어본 나물 중에 최고인 듯, 밥도둑이네요. 식감이 아주 좋아요.
구기자 순을 먹는다고? 하긴 화살나무 잎은 홑잎나물이라 먹고 뽕잎도 먹지 않는가? 구기자 잎은 한 번도 먹어보지 않았는데 당장 따라해 보기로 했다. 범초산장에 구기자 나무가 많이 자라서 순을 뜯는 것은 문제 없었다.
새순을 따서 데친 뒤에 된장에 무쳐 먹어보니 정말 맛이 좋았다. 아하 이런 맛이었구나! 산장에 여러 가지 나무를 키운 보람이 있다. 잎은 따서 나물로 먹고 줄기는 물을 붓고 끓여서 구기자 차로 마시니 일석이조다.
아침 밥은 한련화 꽃밥을 해 먹었다. 범초산장에 여러 가지 꽃이 피니까 마음만 먹으면 꽃밥을 해 먹을 기회가 많이 있다. 미국제비꽃도 많이 피었는데 골담초 꽃밥을 자주 해 먹느라 아직 한 번도 안 먹었다. 동백꽃도 있으니 그것도 꽃밥으로 만들어봐야지. 앞으로 작약꽃, 금은화, 붓꽃, 해바라기, 배롱나무, 때죽나무꽃 등... 먹을 수 있는 꽃밥 재료가 줄줄이 기다리고 있다. 생각만 해도 행복하다.
아침부터 비가 계속 내렸지만 비옷을 입고 일하기도 하고 우산을 쓰고 일하다가 틈틈이 쉬면서 책을 읽었다. 윤인숙씨가 쓴 <마음을 정하다>라는 책인데, 산청 간디학교에 아들을 입학시킨 엄마가 학교 옆에 집을 빌려서 5도2촌 생활을 한 경험을 썼다. 책 속에서 본 좋은 글을 몇 가지 소개한다.
- 마당에 쪼그리고 앉아 잡초를 뽑으면 마음 공부가 되기도 했다. 오래 된 잡초는 뿌리가 사방으로 뻗어 발본색원이 불가능하지만 어린 잡초는 쏙쏙 잘 뽑힌다. 마음속 분노도 잡초랑 같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화 내고 마음속에 오래 담아두면 분노는 사방에 뿌리를 뻗어 그야말로 뒤끝작렬이지만 바로 알아차리고 표현하면 앙금이 금세 사라진다.
- 주말의 삶을 되새기며 글을 쓰다 보면 삶을 두 번 사는 것 같았다. 모든 일의 의미가 선명하게 다가왔고, 남들은 잊어버린 일도 나는 기억하게 되었다.
- 글로 남기자면 순간순간 깨어 있어야 한다. 글쓰기 덕분에 ‘지금 여기’를 충실히 살 수 있었다.
- 세상 모든 일은 일단 저지르고 도움을 받으며 그렇게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는 것 같다.
- 배움이란 건 학교 밖에서도 이루어지는 것이고, 열정이란 건 저절로 관심 가는 대상이 있는 곳에서 키워질 것이다.
- 도시에서만 살다가 시골을 경험한 지 1년, 그것도 주말뿐이었지만 그 짧은 기간 동안 배운 삶의 기술과 지혜가 지난 50년 세월보다 더 많은 듯 하다.
(더덕 줄기)
윤인숙씨가 쓴 것처럼, 관심 가는 대상이 있는 곳에서 열정이 생긴다는 말에 공감한다. 내가 범초산장을 좋아하기 때문에 비가 오는데도 비옷을 입고 일을 했다. 자기가 좋아하는 일은 누가 말려도 하기 마련이다. 그게 바로 ‘열정’이다. 사람이 살아가는 동안에 한 번도 열정을 못 느꼈다면 제대로 살았다고 할 수 없다. 사람에게든 나무나 식물에게든 그 어떤 일이든, 자신의 에너지를 푹 쏟아부어 봐야 한다.
오늘 한 일은 들깨 모종과 도라지 옮겨 심기와 뒷밭의 잡초뽑기였다. 도라지는 한 곳에 모아 두어야 꽃도 무리지어 볼 수 있다. 뒷밭에 있는 몇 뿌리를 앞쪽 밭으로 옮겨 심었다.
( 삽주)
어제 아내가 도라지밭을 매자고 해서 가보았더니 도라지밭이 아니라 쑥밭이었다. 쑥이 커서 도라지는 보이지도 않았다. 아내와 같이 쑥을 뽑다가 잔소리를 들었다. 나는 어린 도라지가 뽑힐까 봐 조심조심 손으로 쑥을 뜯었는데, 아내가 그걸 보더니 호미로 뿌리까지 캐내라고 했다. 아이고, 마누라 말이 법이네. 조금 듣기는 싫었지만 밭을 다 매놓고 나니 훤해져서 일한 보람이 있었다.
들깨 씨앗을 2주 전에 뿌려 놓았는데도 통 안 나오더니 이제야 깨알만한 싹이 나오고 있다. 뒷밭에 가보니 제법 큰 들깨 싹이 보였다. 그걸 호미로 살짝 파서 들깨를 키울 밭에 옮겨 심었다. 내가 뿌린 씨앗보다 저절로 자라는 싹이 더 크니 자연이 나보다 한 수 위다. 언제나 자연 앞에서는 겸손해질 수밖에 없다.
( 지느러미 엉겅퀴)
비가 조금 그치면 우산을 쓰거나 비를 맞으며 일을 했다. 기온은 조금 내려갔어도 이 정도는 아무렇지 않다. 나는 원래 비를 좋아했지만 요즘에는 비를 싫어하는 사람조차 미세 먼지 때문에 비를 좋아한단다. 비를 맞으며 일하는 것도 즐거웠다. 비가 올 때 모종을 옮겨 심고 씨를 뿌려야 잘 살아난다. 나 대신 하느님이 하루 종일 물을 주느라 몸살하지는 않을까? 저렇게 물을 줄 때 나도 때맞추어 씨를 뿌려야지.
딸이 스위트 바실을 좋아해서 씨를 사다가 뿌렸다. 이미 여러 가지 것을 다 심은 터라 마땅한 밭이 없어서 화분 4개를 만들어서 뿌렸다.
일하다가 쉬면서 보니 속단이 안 보였다. 얼마 전에 속단 싹을 분명히 보았는데 보이지 않아서 한참 뒤져보다가 발에 밟혀 쓰러진 것을 발견했다. 누군가가 쑥을 캐러 들어갔다가 모르고 밟은 모양이다. 다행히 죽지는 않았다. 그래서 속단을 조심하라고 막대를 꽂아두었다.
일을 다 하고 저녁을 먹으니 마음이 뿌듯했다. 비는 계속 내리고 봄비에 대한 노래가 라디오에서 흘러나오고... 비 때문에 일을 못하고 쉬었다면 찝찝하겠지만, 실컷 일하고 쉬니 빗소리가 피로를 풀어주는 음악처럼 들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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