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집

[스크랩] (범초산장 이야기 873회)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살구

凡草 2018. 6. 29. 20:20

 

 

      2018년, 6월 29일, 금요일, 흐림

 

    (범초산장 이야기 873회)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살구

 

    

   김해 대동 수안마을에서 수국 축제가 열린다는 것을

부산일보에서 보고 구경하러 갔다.

우리 집에서 16킬로미터라 그리 멀지 않았다.

수안 마을 회관 부근에 차를 대어 놓고 올라갔다.

    

   올해가 첫 행사라 그런지 약간 엉성한 부분도 있었지만

나름대로 열심히 준비한 흔적이 보였다.

  뭐든지 처음부터 잘할 수는 없다.

처음에는 미약하더라도 차차 해가 거듭될수록 발전하면 되니까.

    

   손님들은 바람처럼 달려와서 이러쿵 저러쿵 평가하고 가버리지만

축제를 열기까지 마을 사람들과 행사 담당자들은 얼마나 고생 많았을까!

감사한 마음으로 행사장을 둘러보았다.

    

      오다가 양산 시장에 들러 장을 보고

  범초산장으로 들어왔다.

  지난주에도 덜 익었던 살구가 오늘은 다 익었다.

나무에 열린 살구를 따 먹어보니 참 맛이 있었다.

새콤하고 달달해서 아주 먹을 만했다.

그 자리에서 열 개쯤 먹었다.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살구는 내가 직접 키운 것이다.

마트를 거쳐서 며칠 걸려 유통이 된 살구가 아니라

나무에서 바로 따 먹는 신선한 살구다.

    

   내가 범초산장에 살구나무를 심게 된 것은

정완영 시조시인이 쓴 시조 때문이다.

 예전에는 이 시가 교과서에 실려 있었는데 아주 마음에 들었다.

 

 

<분이네 살구나무>

                              정완영

 

 

동네서

젤 작은 집

분이네 오막살이

 

동네서

젤 큰 나무

분이네 살구나무

 

밤사이

활짝 펴올라

대궐보다 덩그렇다

    

    집은 작고 보잘 것이 없지만

커다란 살구나무에서 꽃이 피니 부러울 게 없다는 의미다.

 시의 힘은 위대하다.

  나는 이 시를 읽고 살구나무를 커다랗게 키우고 싶었다.

그래서 밀양 노루실에 시골집을 갖고 있었을 때도

3년생 살구나무를 사다 심었는데 잘못 키우는 바람에 죽었다.

    

   시골집을 팔고 부산에 범초산장을 만들게 되자

역시 제일 먼저 살구나무 두 그루를 심었다.

작년까지만 해도 살구를 10개도 따 먹기가 어려웠는데

드디어 올해 살구가 다닥다닥 열렸다.

 분이네 집처럼 범초산장에도 살구꽃이 환하게 피었다.

이제 범초산장도 분이네 오막살이가 부럽지 않다.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살구를 먹고 있으니 정말 행복하다.

    

  지난 월요일까지만 해도 계곡에 물이 줄어서 바닥이 드러나려 했는데

수요일부터 비가 온 덕분에 다시 물이 찼다.

 화수분처럼 비우면 다시 채워지는 계곡물을 보니 감사하다.

하늘은 적당할 때 비를 내려서 살아가게 해준다.

  이건 내가 잘나서가 아니라 사람을 살려주는 자연의 섭리다.

항상 감사하는 마음을 갖고 살아가야겠다.

    

       모싯대와 치자꽃이 곱게 피었다.

해마다 이맘때면 피니 그들을 기다렸다.

 반가운 친구들이다.

    

   도라지꽃이 피어서 도라지꽃밥을 만들어 먹었다.

 기침에 좋은 약밥이고,

 하늘에서 내려온 별밥이다.

    

    mbn 자연인 프로에서 <산을 사랑한 작은 거인 김형국씨> 편을 보니

만두를 만들어 먹는 장면이 나왔다.

 나는 그걸 보고 유여사에게 만두를 만들어 먹자고 졸랐다.

 “그게 얼마나 일이 많은지 알아요?”

 “그래도 한 번 해먹자. 내가 많이 도와줄게.”

아이처럼 조르자 아내가 못 이긴 듯이 해먹자고 동의했다.

    

    그래서 두부, 돼지고기를 사 와서

범초산장에 있는 부추, 양파 등을 넣어 소를 만들고,

밀가루를 반죽하여 치댄 다음에 막대로 밀어서 피를 빚었다.

얇게 저민 만두피에 소를 넣고 봉하면 만두가 된다.

아내와 함께 웃어가며 찰흙 놀이하듯이 만두를 만들었다.

둘이 만두를 함께 만든 것은 결혼하고 처음이었다.

난 만두를 좋아하지만 아내가 그리 좋아하지 않는데다

만드는 과정이 번거로워서였다.

 오늘 직접 만들어 보니 생각보다 재미있었다.

 귀찮은데도 애써 만들어준 유여사가 고마웠다.

   

   “여보, 종종 만두 만들어 먹자.”

   “말은 하기 쉽지만 일이 많아요.”

  “내가 도와줄게. 난 하나도 귀찮지 않은데.”

 다 만든 다음에 쪄서 점심으로 먹었다.

 

 

 

  약간 두꺼운 만두도 있었지만 직접 만든 만두라 맛있게 먹었다.

이제는 혼자서도 얼마든지 만들 수 있겠다.

 한 번도 안 해봐서 하는 방법을 몰랐지만

체험해보니 그리 어렵지는 않았다.

 나 혼자 꼭 만들어 볼 것이다.

 

    고추가 막 열리기 시작했다.

올해는 세 가지 종류의 고추를 맛보고 있다.

아삭이 고추, 일반 고추, 비타민 고추다.

비타민 고추는 처음 먹어보는데 맛이 제일 상큼했다.

내년에는 이 품종을 더 심어야겠다.

    

   지난주에 심은 청화쑥부쟁이와 장미봉선화는 다 살아났다.

비가 내린 덕분에 그냥 둘러보기만 해도 되니 편하다.

    

    맨드라미 35포기도 다 살았다.

힘없이 드러누워 있던 맨드라미들이 땅 기운을 받고 꼿꼿하게 일어났다.

저걸 보면 지칠 때가 있더라도 다시 기운차게 일어나야겠다.

    

       노나무 꽃이 피었다.

  그늘에 심었는데도 조금씩 커지고 있다.

    

     냉초꽃도 피었다.

  긴꼬리처럼 생겼다.

    

    호박과 고추, 오이, 토마토가 무성하게 뻗어가고 있다.

여름에는 채소 마트가 바로 옆에 있다.

소쿠리만 들고 나가면 싱싱한 채소가 줄서서 기다리고 있다.

  바로 이런 게 소확행이 아닐는지?

내가 살아오면서 제일 잘한 일이 범초산장을 일구어낸 것이다.

돈이 많아서 쉽게 살 수 있었다면 그렇게 값진 일은 아닐 거다.

우여곡절을 거치고 온갖 장애물을 지나온 끝에 간신히 만들어냈다.

그래서 더 소중하고 가치가 있다.

 

 

 

    진실로 귀한 것은 쉽게 주어지지 않는다.

죽을 만큼 애를 써야 비로소 눈앞에 실체를 드러낸다.

고생하지 않으면 허깨비처럼 멀리서 겉돌 뿐이다. (*)

 

 

 

 

출처 : 글나라
글쓴이 : 凡草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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