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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범초산장 이야기 894회) 왕의 길을 걷고 왕이 된 날

凡草 2018. 10. 6. 14:35

 

    

   2018년, 10월 6일, 토요일, 비

 

  (범초산장 이야기 894회) 왕의 길을 걷고 왕이 된 날

    

10월 2일 화요일

 

유여사와 경주로 갔다.

왕의 길을 걷기 위해서였다.

 

<왕의 길>은 추령터널 부근에 있는데 신문왕이 수중왕릉에 묻힌

아버지 문무왕을 찾아보러 간 길이다.

  그 당시 역사의 흔적이 지금도 지명에 남아 있는데,

마차가 다니던 모차골(마차골), 수레가 넘어가던 수렛재,

임금이 손을 담그고 세수한 세수방,

 말이 넘어질 만큼 험한 길이라고 말굽부리 등이다.

  나는 검색을 잘못해서 추원사 절 앞에 차를 대어 놓고 걷기 시작했는데,

알고 보니 <왕의 길> 주차장이 더 깊이 들어가면 따로 있었다.

추원사에서 <왕의 길>이 시작되는 지점까지는 1.7킬로미터나 되고

아스팔트여서 유여사는 이런 길은 걷기 싫다고 하였다.

 나는 시골 풍경을 보면서 걸어가니까 좋던데...ㅎㅎ

 

 

 

<왕의 길>이 시작되는 곳에는 <호국행차의 길>이라는 간판이 붙어 있었다.

신문왕이 마차를 타고 넘어간 길이라니 더욱 호기심이 생겼다.

<왕의 길> 주차장에서부터 바로 숲길로 이어졌다. 여름에 가도 무성한

숲속을 걸을 수 있는데, 깊은 계곡을 따라 걷는 길이어서 가는 동안에

개울을 여러 번 건널 만큼 물길이 길게 이어졌다.

 

  경주 <왕의 길>은 함월산, 토함산, 동대봉산 사이에 있는 골짜기를

지나가는 길이라 지금도 오지에 속한다. 전화가 불통되는 구간이 많다.

지금도 오지라면 그 옛날에는 얼마나 험한 곳인지 짐작이 가는데,

이런 오지 숲속을 뚫고 부왕을 찾아간 신문왕의 효성이 참 대단하다.

죽어서까지 나라를 지키겠다고 바다 속에 묻어 달라고 한 문무왕의

애국심은 더 말할 필요가 없고. 지금도 일본이 우리나라를 넘보고 있는데

신라 시대에도 왜구가 많이 쳐들어 왔던 모양이다. 용이 되어서까지

나라를 지키려고 했던 문무왕이었으니 삼국통일보다 왜구가 더 골칫거리

였을 것이다.

 

 

 

왕의 길에는 도토리가 지천으로 널려 있었다. 발에 밟히는 것이 도토리였다.

왕이 타고 가던 수레바퀴에도 도토리가 많이 밟혔을 것이다.

길은 부드럽고 순하게 이어지다가 조금씩 올라가기도 하고 수렛재 부근에서는

약간의 오르막까지 있어서 지루하지 않았다. <왕의 길>이라는 명성에 걸맞게

트레킹 코스로도 최상급이었다.

 

유여사와 숲속에서 준비해간 도시락을 먹고 다리를 쉴 때는 간식도 먹었는데

신문왕이 지나간 길을 따라 가고 있노라니 마치 왕이 된 기분이었다.

유여사는 왕비가 되었고.

 

 

 

  평일이라 사람도 그리 많지 않아 호젓한 가을 숲속을 기분 좋게 걸었다.

왕의 길 초입부터 용연폭포까지는 3.9킬로미터. 거기서 1킬로미터만

더 가면 기림사가 있다. 내 체력으로는 기림사까지 갔다 와도 문제없지만

유여사가 힘들까 봐 용연폭포까지만 갔다.

 

 용연폭포는 왕자가 옥대에 있는 용의 비늘 무늬를 떼어 던졌더니

용으로 변해 하늘로 올라가면서 생긴 폭포라고 하는데,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크고 웅장한 규모였다.

  거기를 끝으로 다시 되돌아 나왔다.

 

 

              감보다 작은 고욤 열매

 

 

  왕이 세수를 하던 개울에서 손도 씻어보고 왕이 탄 수레가 지나갔을

곳을 따라 걸으며 혹시 지금도 바퀴 자국이 남아 있을까 살펴보기도

했다. 길바닥에 무수히 떨어져 있는 도토리와 상수리를 들여다보다가

왕과 도토리를 엮어서 쓰려고 동화 글감까지 하나 얻었다.

 

  삼국유사에도 기록된 왕의 길을 걷고 나니 역사의 현장을 둘러보아서

뿌듯했고 다리 힘을 기를 수 있어서 좋았다.

오가는 동안에 운전 잘하는 유여사가 차를 책임져서 편하게 다녀왔다.

    

  범초산장 주변에도 올해는 도토리가 많이 떨어졌다.

왕의 길 정도는 아니지만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주울 만큼 널려 있다.

나는 산에 가도 여태까지는 도토리를 잘 줍지 않았다. 다람쥐나 청설모 같은

산짐승들이 먹을 양식을 빼앗는 것 같아서 야박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고,

도토리묵을 해 먹으려면 많은 양을 주워야 하는데다 삶고 우려내고 껍질

벗겨야 하는 등, 일이 많아서 번거롭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올 가을에 윈드를 따라 갔다가 어느 교장선생님한테 좋은

정보를 들었다.

  도토리를 밥에 몇 알씩 넣어 먹으면 건강 식품으로 최고라는 것이다.

도토리가 중금속 해독에 그만이라는 말은 이미 들어서 알고 있었지만

밥에 넣어 먹을 생각을 못했는데 그런 방법도 있구나!

밥에 몇알씩 넣는 정도라면 그리 많은 양이 아니어도 되고 손도 많이 가지

않으니 시도해볼 만 했다. 그래서 범초산장 계곡물 속에 떨어진 도토리를

장화 신고 들어가서 한 됫박 정도 주웠다.

 

  먼저 살짝 한 번 삶은 다음에 한나절 떫은 물을 우려내고 햇볕에 바짝

말렸다. 그걸 망치로 때려 껍질을 벗겨낸 뒤에 속알맹이 열 알 정도를

밥 할 때 넣었다. 밥을 퍼서 먹어보니 그리 고소하지는 않았어도 먹을 만

했다. 쓴 맛은 전혀 나지 않았다. 조금 굵은 콩 같았다. 밥할 때마다

도토리 콩을 몇 알씩 넣어서 해먹고 있다.

    

  자연인 프로에서 박경숙씨가 천연 화장품을 만들어 쓰는 것을 보았다.

당장 따라해 보기로 했다.

  박경숙씨가 쓴 재료는 쇠비름, 돌나물, 달맞이꽃 - 세 가지인데,

산장을 둘러보니 쇠비름은 이미 시들어서 보이지 않았다. 할 수 없이

돌나물과 달맞이꽃에 느릅나무 잎을 조금 넣어서 끓였다.

 

 

  물이 반으로 줄어들면 식혀서 미니 분무기에 넣고 화장수로 사용한다.

쉽게 말하자면 보습제이고 물로션이다.

 얼굴에 뿌려보니 촉촉하고 매끈매끈했다.

  내가 만든 천연화장품이라 안심하고 사용할 수 있다.

 냉장고에 넣어두고 자주 쓰기로 했다.

    

  마늘 심을 때가 되어서 고구마를 캐기로 했다. 시험 삼아 한 포기를

캐어보기로 했는데 이런 것을 <밑보기>라고 한다.

내가 써 놓은 일기를 보니 지난 5월 14일에 고구마 줄기를 심었다.

그러면 4개월이 넘었으니 충분히 영들었을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제법 굵은 고구마가 나왔다. 조금 뒤에는 아이 머리통

만한 고구마도 캐었다. 여태 농사 지은 고구마 중에서는 제일 굵다.

고구마는 참 좋은 농작물이다. 잎은 나물로 무쳐 먹고, 줄기도 반찬으로

먹고 뿌리까지 먹으니 버릴 게 없다. 줄기가 무성해지면 잡초까지 제압해

주니 일석사조다.

  사람 가르치는 일이나 농사짓는 일이나 비슷하다. 여리디 여린 고구마

줄기를 심어놓았는데 몇 배로 커서 보답을 해준다. 사람도 잘만 키워

놓으면 언젠가는 보답을 한다.

 

고성에 있는 <동시동화나무의 숲>에서 초대장이 왔다.

열린아동문학 가을호 <이 계절에 심은 동화나무> 코너에 내 특집이 실렸는데

10월 13일에 저녁밥을 대접하고 하루 재워준단다.

 예원 박미숙님이 서화를 만들어서 보내준 것도 정성이 기득해서 감사했다.

 하필 이 날이 계몽아동문학회 황금펜 시상식과 겹쳐서 난감했다.

계몽아동문학회 시상식에는 해마다 갔는데 올해는 어떡하지?

 

  나는 고민하다가 결국 열린아동문학 행사에 가기로 했다. 내 아들과 딸도

심어주지 않을 나무를 고성에 있는 동시동화나무의 숲에서 내 이름이 새겨진

돌과 함께 심어준다고 하니 당연히 가야 하지 않겠는가!

선비는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서는 목숨도 바친다고 한다.

나도 나를 인정해주고 지면을 내어준 열린아동문학에 진심으로 감사한다.

특별한 일이 없으면 해마다 열린아동문학 행사에 참석할 생각이다.

    

  동화 공부 열심히 하는 제자가 있어서 약초삼계탕을 만들어주었다.

멀리 있는 제자는 일부러 오라고 하기가 쉽지 않지만, 마침 가까이에 있고

아들까지 글나라에 보내고 있어서 나도 먹을겸 만들었다.

약초는 범초산장에 널려 있으니 만드는 일은 어렵지 않다.

조금 수고했더니 세 사람이 맛있게 먹을 수 있었다.

덕분에 나도 모처럼 몸보신을 했다. 남을 위해주면 나도 좋다.

    

문정옥씨가 쓴 <나도 낙타가 있다>는 청소년 소설을 읽었다.

동화를 쓰는 분이 쓴 책인데 아주 마음에 들었다.

잘 사는 집의 중학생 딸 수리가 겪는 이야기인데, 반 아이들이

돈을 가져오라고 괴롭히고, 엄마는 자신의 뜻대로 딸을 끌고 간다.

온갖 수업을 시키고 영국 유학까지 보내서 특별한(?) 사람을 만들려고

한다. 그러나 수리는 힘들어하고 삶의 의미를 못 느낀다.

마치 사막에서 외롭게 걸어가는 낙타처럼. 수리는 무리와 떨어진

낙타가 된 기분이다.

 

<말똥개가 달리 보였다. 하찮아 보이는 말똥개도 거대한 인간에게

팔을 들어 저항하는데 나는 나를 위협하는 것들과 맞서 본 적이 없었다.

부끄러웠다.>

 

수리는 친구 새나와 습지 견학을 갔다가 말똥게를 보고 자신을 괴롭히는

친구들과 무조건 밀어붙이는 엄마에게 저항하지 못한 것을 부끄러워한다.

 

<나는 길을 잃었다. 등에는 내 몸뚱이보다 더 큰 짐들이 나를 짓누르고

있다. 눈과 귀가 있지만 볼 수도 들을 수도, 혼자서는 절대로 걸을 수도

없는 병든 공주 인형이다.>

 

자신이 하고 싶지 않은데 무작정 부모가 시킨다고 좋은 결과가 나올까?

그건 불행이다. 풍요 속의 빈곤이나 다름없다.

 

<난 사람들 틈에 살면서 늘 사막을 꿈꾸곤 했어. 오아시스는 내가 살아가는

이유야. 내가 그 물 냄새를 기억하는 한 나는 누가 뭐래도 낙타야.>

 

낙타는 사막을 걸어가지만 오아시스라는 탈출구가 있기 때문에 견디고 있다.

그 오아시스에서 풍겨오는 물 냄새를 그리워하며 현실을 이겨낸다.

사람도 누구나 자신만의 오아시스가 있다. 그게 없다면 살아갈 의미가

없다. 나에게는 동화와 동화교실, 범초산장이 오아시스다. 이들이 있기에

살아갈 의미가 있고, 여기서 힘을 얻는다.

 

       고추잎을 따서 나물로 먹으려고 살짝 데쳐서 건조기에 말렸다.

 

 

   씨앗편지에서 영랑님에게 정보를 얻어 목초액을 옥션에서 샀다.

  20리터에 19300원 주고 샀다.

   1:500배로 희석해서 농작물에게 해질 무렵에 뿌려 준다고 하니 아주 오래

쓸 수 있겠다. 목초액이 좋다는 말은 많이 들었는데 사서 써 보기는 처음이다.

 농약 대신 쓸 수 있으니 효과가 기대된다.

 

 

  범초텃밭에 갔다가 아피오스 꽃이 핀 것을 보았다.

 범초산장에서는 6-7월에 꽃이 피었는데 여기는 이제야 피었다.

품종이 다른 모양이다. 꽃차를 하려고 꽃을 따서 모았다.  (*)

출처 : 글나라
글쓴이 : 凡草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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