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4번째 동화 )
* 아동문예 2005년 7월호에 발표한 작품입니다.
땅에 묻은 돈
凡草 김재원
덜커덩- 덜커덩-
아파트를 짓는 공사장입니다.
포크레인 두 대가 땅을 열심히 파고 있습니다. 곽기사는 그 중의 한 대를 운전하는
노총각입니다. 곽기사는 잠시 운전대를 놓고 연신 땀을 닦았습니다.
초여름인데도 햇살이 어찌나 따가운지 포크레인 천장이 금방이라도 흐물흐물 녹아 내려앉을
것만 같습니다.
"에휴, 벌써 이렇게 더우면 올 여름을 어떻게 보낸담?"
곽기사는 땀을 닦고 나서 다시 운전대를 잡았습니다.
대게의 집게발처럼 생긴 커다란 삽이 땅을 박박 긁었습니다.
삽날이 바위에 부딪치자 불꽃이 팍팍 튀었습니다.
삽이 몇 차례 들락날락하자 땅에 큰 구덩이가 생겼습니다. 곽기사는 더 깊이 파려고
삽을 구덩이 속으로 쑥 집어넣었습니다.
흙더미를 수북하게 떠서 땅에 주르르 부었을 때 까만 덩어리가 언뜻 보였습니다.
그것은 흙 속에 파묻힌 채 한쪽 귀퉁이만 빠꼼 내밀었습니다.
"아니, 저게 뭐지? 돌멩이는 아닌 것 같은데."
곽기사는 기계를 정지시켜 놓고 밖으로 나갔습니다.
가까이 다가가서 살펴보니 그것은 두툼한 비닐 봉지였습니다.
곽기사는 까만 비닐 봉지를 흙 속에서 꺼낸 다음에 매듭을 풀었습니다.
"억! 이, 이런……."
곽기사는 비닐 봉지 속에 든 것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너무 놀란 곽기사는 혹시 누가
보나 싶어서 좌우를 휘둘러보았습니다. 다행히 부근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저쪽에서 일하는 포크레인 기사 한씨가 이쪽을 안 보았는지 계속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제발 한 기사가 눈치를 채지 말아야 할 텐데."
곽기사는 가슴이 벌렁벌렁 뛰었습니다. 곽기사는 숨을 크게 한 번 들이쉬고는
주위를 휘둘러보다가 비닐 봉지를 안고 번개같이 포크레인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비닐 봉지가 묻혀 있던 흙더미에서 포크레인까지는 5미터도 채 되지 않았지만
몇십 킬로미터처럼 멀게 느껴졌습니다. 포크레인 안으로 들어온 곽기사는 한숨을 길게
내쉬었습니다.
"후우-. 후-."
곽기사는 이마에 흘러내리는 땀을 닦고 나서 까만 비닐 봉지 안을 다시 한 번 더 살며시
들여다보았습니다.
그 안을 들여다 본 순간, 곽기사는 교회에 나가서 기도하던 일이 떠올랐습니다.
곽기사가 사는 아파트 바로 옆집에는 김장로님이 살고 있었습니다.
김장로님은 곽기사만 보면 교회에 나오라고 입버릇처럼 말했습니다.
얼마나 끈질기게 달라붙는지 정말 귀찮을 정도였습니다.
"장로님, 교회에 가면 노총각 신세도 면할 수 있고 돈도 벌 수 있나요?"
곽기사가 퉁명스럽게 내뱉자 김장로님은 당장 교회로 끌고 갈 듯이 손을 덥석 잡았습니다.
"아이구, 그럼요. 하느님한테 간절히 빌어서 안 되는 게 있나요? 어떤 소원이든지
다 이루어질 겁니다."
"좋아요. 교회에 나가볼 게요. 만약에 제 소원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장로님이 책임지세요."
"그 대신 꾸준히 나와서 빌어야 합니다. 하루 이틀에 소원이 이루어지는 건 아니니까요."
"알았습니다. 일주일에 한 번 교회에 나가는 게 뭐가 어렵겠어요? 제 소원이 이루어지기만
한다면요."
그때부터 곽기사는 김장로님을 따라 교회에 나갔습니다. 곽기사는 교회에 가기만 하면
눈을 감고 이렇게 중얼거렸습니다.
"하느님! 제발 상금이 두둑한 복권이나 하나 걸리게 해주세요! 저는 돈이 많이 생기면
이쁜 아가씨와 결혼을 할 겁니다. 그 다음에는 실컷 놀아보고 싶습니다.
하루도 빠짐없이 일터에 나와야 하니까 이젠 정말 신물이 납니다.
그리고 친구들한테도 아무 때나 한턱을 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하느님, 제발……."
교회에 나갈 때마다 손을 싹싹 비비며 기도를 하였지만 거의 1년이 다 되어가는데도
아무런 소식이 없었습니다.
그 동안 복권을 여러 장 샀지만 모두 '꽝'이었습니다.
1등은커녕 본전도 건지지 못했습니다. 교회에 나가기 전보다 더 많이 샀는데도
전혀 효과가 없으니 슬슬 약이 올랐습니다.
곽기사는 오늘만 일하면 내일 또 교회에 나가게 됩니다.
"장로님한테 속은 거야. 하느님이 보이지도 않는데 내 소원을 어떻게 들어주겠어?
그저 교회 빈자리나 채워주는 거지. 나처럼 재수 없는 사람한테 무슨 기적이 일어난단 말이야?"
곽기사는 아침에 출근하면서 혼자 이렇게 투덜거렸습니다.
곽기사는 여태까지 행운권 추첨 한 장 걸려본 적이 없었습니다. 어릴 적에 소풍 가서도
보물찾기는 모두 친구들의 몫이었습니다. 결혼을 해보려고 맞선도 여러 번 보았지만
볼 때마다 키가 작다, 직업이 시원찮다, 가난하다는 등의 이유로 퇴짜를 맞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곽기사는 자신이 하고 있는 일조차 못마땅하게 여겨졌습니다.
'난 흙을 파먹고 사는 흙벌레야! 한평생 이런 일을 해봐야 무슨 늘 푼수가 있겠어?
에휴, 내 팔자야!'
곽기사는 침을 퇘! 퇘! 뱉으며 짜증스런 얼굴로 포크레인을 운전할 때가 많았습니다.
그랬는데 갑자기 이런 행운이 찾아오다니 도무지 믿어지지 않았습니다.
까만 비닐 봉지 속에 들어있는 것은 놀랍게도 '돈뭉치'였습니다. 세어 보아야 얼마인지
정확하게 알겠지만 눈대중으로도 만 원짜리가 몇 천 장은 충분히 될 것 같았습니다.
돈! 돈! 돈! 어마어마한 돈이었습니다.
이렇게 많은 돈뭉치가 땅 속에서 나오다니!
곽기사는 마른 침을 한 번 삼키고 나서 주위를 힐끔힐끔 살펴보았습니다.
바로 그때 한 기사가 이쪽으로 뚜벅뚜벅 걸어오고 있었습니다. 곽기사는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서 어쩔 줄을 몰랐습니다. 한 기사가 뭔가 낌새를 눈치챈 모양입니다. 뭐라고 둘러대지?
곽기사가 비닐 봉지를 허둥지둥 숨기고 있을 때 한 기사가 코앞에 다가왔습니다.
"이봐, 곽기사! 물 한 모금만 줘. 깜빡 잊고 물을 안 갖고 왔지 뭐야."
"으응. 그, 그래."
곽기사는 말을 더듬으며 물병을 꺼내 주었습니다. 물병을 건네주는 곽기사의 손이 자기도
모르게 부르르 떨렸습니다.
"왜 그래? 자네 어디 아픈가?"
"음. 갑자기 머리가 좀 어지러워서."
"조심해. 몸이 재산인데 아프면 어떻게 벌어먹고 사나?"
한 기사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잠시 훑어보더니 저쪽으로 가버렸습니다.
한 기사가 물러가자 곽기사는 비로소 마음이 놓였습니다.
그렇지만 아직 안심할 수는 없었습니다. 이 돈 보퉁이를 어떻게 처리하지? 곽기사는
두근거리는 가슴을 억누르며 잽싸게 머리를 굴려 보았습니다.
'아무도 몰래 우리 집으로 가져갈까? 그랬다가 들통이 나면 어떡하지? 경찰에 잡혀가면
끝장이잖아. 이걸 경찰서에 갖다 주면 나에겐 얼마가 돌아올까?'
곽기사는 이 생각 저 생각을 하느라 머리가 지끈지끈 아팠습니다.
그 때부터 곽기사는 일을 제대로 할 수가 없었습니다. 포크레인을 움직이고는 있었지만
그냥 건성으로 까딱거릴 뿐이었습니다.
겨우 하루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 되었습니다.
한 기사가 또 다가와서 술이나 한 잔 하러 가자고 붙잡았지만 몸이 아프다는 핑계를 대고
겨우 따돌렸습니다.
곽기사는 공사장에 있는 사람들이 다 빠져나갈 때까지 포그레인 부근에서 꾸물거리며
시간을 끌었습니다.
이윽고 사방이 어둑어둑해졌습니다. 그제야 곽기사는 포크레인 안에서 빠져 나와
흙이 묻은 비닐 봉지를 안고 택시를 탔습니다.
택시를 타고 가면서도 마음은 계속 불안하였습니다. 당장에라도 택시 기사가 눈치를 채고
이렇게 말할 것만 같았습니다.
"이 도둑놈아! 남의 돈을 주웠으면 신고를 해야지 네가 가져가면 되나? 나랑
경찰서로 가자!"
곽기사는 비닐 봉지를 꼭 껴안은 채 눈을 질끈 감았습니다.
눈을 감아도 웬 낯선 사람이 나타나서 앞을 가로막았습니다.
"이 놈아! 내 돈 갖고 달아날 셈이냐?"
드디어 돈의 주인이 나타난 모양입니다.
"이게 어째서 당신 돈이란 말이요? 무슨 증거가 있나요?"
"당신이 파헤친 그 곳에 우리 아버지가 살던 집이 있었어. 우리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돈을 땅에 묻어 놓았단 말이야. 어서 내놔!"
곽기사는 그 사람을 피해 정신없이 달아나고 있는데 누가 큰 소리로 불렀습니다.
"손님, 다 왔습니다."
깜짝 놀라서 눈을 떠보니 자기가 사는 아파트 앞에 와 있었습니다.
곽기사는 얼른 돈을 주고 내렸습니다. 곽기사는 집으로 들어가자마자 문을 꽁꽁 잠그고
커튼까지 다 내린 다음에 비닐 봉지를 열었습니다. 두툼한 돈뭉치가 불빛 아래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곽기사가 떨리는 손으로 돈을 세어보니 무려 5천만 원이 넘었습니다.
난생 처음 만져보는 엄청난 돈이었습니다. 그렇게 많은 돈을 집안에 들여놓고 나니
밥을 먹지 않아도 배가 불렀습니다.
곽기사는 자리에 누워도 잠이 오지 않았습니다. 마냥 초조하고 불안해서 어떻게 해야 좋을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곽기사는 할 수 없이 술을 홀짝홀짝 마셨습니다. 술을 마시자 정신이 몽롱해지면서 비로소
잠을 잘 수가 있었습니다.
그 다음날부터 곽기사는 일을 하러 나가지 않고 빈둥빈둥 놀았습니다.
돈이 많으니까 굳이 일을 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곽기사는 한기사랑 같이 일하던 사람들에게 보란 듯이 한 턱을 내었습니다.
"여보게들, 마음껏 먹고 마셔! 내가 얼마든지 살 테니까."
"아니, 자네가 갑자기 무슨 돈이 생겨서 이렇게 인심을 쓰나?"
"응, 이번에 복권이 하나 걸렸어!"
곽기사는 실실 웃으면서 대충 얼버무렸습니다. 곽기사는 자기를 졸졸 따라다니며 비위를
맞춰주는 친구들과 어울려 날마다 술을 마셨습니다.
그렇게 술독에 빠져 지내다보니 점점 건강이 나빠졌습니다. 그렇지만 하루라도 술을 마시지
않으면 잠을 잘 수가 없었습니다. 몸에서 술기운이 빠져 나가면 뭔가 불안하고 가슴이
답답하였습니다. 곽기사는 술을 마시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다했지만 자기 힘으로는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멍한 얼굴로 앉아 있으면 온 세상이 빙빙 돌았습니다.
"이 놈아, 남의 돈을 훔쳤지?"
검은 그림자가 눈앞에 나타나서 너울너울 춤을 추었습니다.
"아니에요. 아, 아무 것도 훔친 일이 없습니다."
"웃기지 마! 지금 네가 갖고 있는 돈이 누구 것인 줄 알아?"
검은 그림자는 곽기사의 목을 콱 움켜쥐고 마구 조였습니다.
"캑! 캐캑캑! 이, 이거 놔주세요. 나… 난 아무 죄가 없어요!"
"변명하지 마! 너 같은 도둑놈은 당장 죽어야 해!"
곽기사는 검은 그림자를 떨쳐 버리려고 안간 힘을 쓰다가 술을 벌컥 벌컥 마셨습니다.
그러자 검은 그림자가 슬며시 멱살을 놓았습니다. 곽기사는 검은 그림자가 주춤하자
주먹을 불끈 쥐었습니다.
"난 절대로 도둑이 아냐! 단지 운이 좋았을 뿐이란 말이야!"
곽기사는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며 검은 그림자를 향해 주먹을 마구 휘둘렀습니다.
타앙!
무엇이 깨지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곽기사가 정신을 차려보니 눈앞에는 거울이 산산조각이
나있고 자기 손에는 시뻘건 피가 주르르 흘러내리고 있었습니다.
그제야 곽기사는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이크! 이러다간 내가 죽고 말겠어!'
곽기사는 이렇게 된 것이 모두 돈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돈, 돈이 문제야! 그 놈의 돈만 없었더라도 내가 이 지경이 되지는 않았을 텐데……'
곽기사는 돈이 없어도 열심히 일할 때가 얼마나 행복했는지를 비로소 깨달았습니다.
주머니가 탈탈 비어 있다가 돈 한 푼이 들어오면 좋아서 어쩔 줄 몰라 하며 금 쪽 같이 아껴
쓰곤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돈이 많으니까 풍덩풍덩 막 쓰고도 전혀 아까운 줄을 모릅니다. 게다가 일을
안 하고 앉아서 놀기만 하니까 몸에 군살이 덕지덕지 붙어서 숨을 쉬기조차 거북합니다.
정말 이렇게 살다간 큰일이 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돈 때문에 모든 것이 나쁘게 변했어. 내 행복과 건강은 제 아무리 많은 돈을 준다고 해도
절대로 바꿀 수가 없는 건데 이렇게 되다니......'
그런 생각을 하자 돈이 악마처럼 무섭기만 했습니다. 더 이상 돈에 빠져서 살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곽기사는 부랴부랴 남은 돈뭉치를 들고 가까운 산으로 달려갔습니다.
'도로 묻어 버리자! 그래야 내가 다시 살아날 수 있어!'
곽기사는 땀을 뻘뻘 흘리며 곡괭이질을 하였습니다.
퍽, 퍽, 퍽!
제법 큰 구덩이가 생기자 곽기사는 미련 없이 돈뭉치가 든 비닐 봉지를 땅속에 파묻었습니다.
돈뭉치를 다 묻고 나니 마음이 그렇게 홀가분할 수가 없었습니다.
'내일 아침부터는 다시 포크레인 기사로 일하러 가는 거야!'
곽기사는 그날 밤 정말 오랜만에 편안하게 잠이 들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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