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이야기

13번째 나라를 찾아서...

凡草 2005. 8. 16. 21:20

   < 13번째 나라를 찾아서... >
 나의 부친은 일제 시대를 사신 분인데 생전에 4개국을 돌아보았다고 하셨다.
나는 어릴 때 그 말을 듣고 '나는 커서 몇 나라나 돌아보게 될까?'하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여태까지 운이 좋은 탓인지 대충 12나라를 돌아보았다.
 영국, 프랑스, 네델란드, 독일, 벨기에, 스위스, 이탈리아, 스페인, 그리이스, 
캄보디아, 베트남, 홍콩, 중국 등이다.
 물론 샅샅이 누벼본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어떻게 생긴 나라인지는 구경할 수 
있었다.
 이번에 딸과 처제, 처남집을 방문하기 위해 열 세번째 나라를 방문하게 되었다.
 미국 여행은 정말 장난이 아니다.
 비행기 표값만 해도 나와 아내가 합쳐서 왕복 400만 원에 여행경비까지 치면
 600만 원 이상이 드니 쉽게 나설 수가 없었다.
 나도 딸이 미국에서 자리를 잡게 되면 한 번 찾아가볼까 하고 생각했는데
결혼한 처제가 우리를 불러주어서 큰맘 먹고 미국행을 결정하게 되었다.
 2005년 7월 30일 토요일, 여행 첫날이 밝았다.
 나와 아내는 풍선처럼 부푼 가슴을 안고 김해 공항으로 나갔는데 이게 웬일인가
노스트웨스트 항공사의 컴퓨터가 다운되어 출발이 자꾸만 지연되었다.
 동경 나리따 공항에서 다른 비행기를 갈아 타야 하는데 출국이 늦어지니 
처음부터 마음이 바빠졌다.
 하필 여름 방학 성수기라 여기 저기 수소문하여 비행기 표를 간신히 구했는데 
출발부터 힘이 빠졌다.
 약 3시간을 기다린 끝에 수작업으로 표가 발급되어 마침내 하늘로 날아올랐다.
 일본 나리따에 잠시 내려 비행기를 갈아 타고 다시 미국 미네아 폴리스로 
향했는데, 게이트를 찾는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그 정도는 짧은 회화로도
충분했고 요즘엔 자기가 탈 비행기 번호를 알고 컴퓨터 모니터만 잘 보면 어디로
가서 타야 할지 찾기가 어렵지 않았다. 더욱이나 유미 처제가 미리 여행 일정표를
만들어주어서 입국 수속도 쉽게 해결했고 비행기 찾는데도 큰 도움이 되었다.
 비행기를 타고 날아가면서 땅을 내려다 보니 록키 산맥의 험준한 산봉우리가 마치
달분화구를 보는 듯 했다. 저렇듯 산과 강이 한없이 웅장하니 큰 인물도 무척 많이 
나오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땅이 끝없이 넓고 빈 곳이 많아서 국토가 얼마나 넓은지 실감했다. 저 땅 우리 나라
사람들한테 조금만 주어도 잘 이용할 수 있을 텐데.. 놀려두는 땅이 많아서 아쉬웠다.
 비행기 안에서 승객들을 보니 책을 읽는 사람들이 많았다. 비행기 안에서조차 책을 
읽는 저 높은 독서열기. 우리는 어떤가? 선진국은 결코 하루 아침에 되는 것이 아니
라는 것을 알았다.
 미네아 폴리스에서 다시 뉴멕시코주 알바쿠키로 가는 비행기를 갈아탄 다음에
알바쿠키 공항에 내리니 처제 유미와 동서 에릭이 마중나와 있었다.
 비행기를 16시간이나 탔지만 우리 부부를 환영하기 위해 꽃다발을 들고 마중나온 
유미와 에릭을 보니 피로가 순식간에 풀렸다.
 나도 떠나올 때 꽃을 선물하고 싶었는데 마음이 바빠서 그렇게 하지 못한 것이 못내
마음에 걸린다.
  (처제 유미와 동서 에릭)


동서 에릭은 미국 사람으로 뉴멕시코주 알라모스에서 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다. 유미집에는 한글 자판 컴퓨터가 있어서 글나라 카페에 소식을 올릴 수가 있었다. 유미가 사는 동네는 대개 단독주택인데 마당이 넓어서 전원주택 같았다. 약 400평 정도는 되어 보였다. 알라모스는 한국의 대덕 연구단지처럼 높은 고원지대에 독립적으로 조성된 소도시이다. 인구는 3-4만명 정도. 그래서 도둑이 거의 없고 아주 조용한 편이다. 약 3500미터이 고원 지대라서 한여름인데도 아침 저녁으로는 선선한 편이다. 유미 집이 2층이라 1층 방 하나를 빌려 하루밤을 잘 잤다.

아침에 동네 부근을 산책해보니 나무들이 아주 크고 집 앞에 과일나무를 많이 심어 놓았다. 열매가 많이 열려 있어서 보기 좋았다. 이곳 연구 단지가 아주 오래 되었는지 나무들이 모두 아름드리였다. 소나무도 어찌나 큰지 하늘을 찌를듯 높이 서 있었다. 미국에서 소나무를 보니 고향에 온 기분이 들었다. 유미집에는 치와와 종류의 개를 키우고 있었는데 이름이 '순이'라서 나는 심심할 때마다 순이를 부르고 어루만졌다. 순이 사진을 한 장 못 찍은 것이 아쉽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