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5년 8월 6일 토요일 맑음 )
뉴멕시코 주에서 1주일을 보내고 이제 큰딸 정현이네 집으로 이동해야 할 날이
왔다.
알바쿠키 공항은 산타페에서 가깝기 때문에 처남 집에서 하루밤을 자고 처남이
공항까지 데려다 주기로 했다.
유미와 에릭은 어제 미리 작별을 하고 왔는데도 우리가 가는 것을 아쉬워하며
선물을 사 보냈다.
유미에게 신세진 것도 많은데 또 선물까지 받다니 미안하였다.
유미와 처남들 덕분에 뉴멕시코주 관광이 즐거웠고 좋은 구경을 많이 했다.
가는 비행기도 로스엔젤리스로 바로 못 가고 미네아폴리스를 거쳐서 갔다.
미네아폴리스가 교통의 요충지인 모양이다.
<딸과 아내가 디즈니렌드에서>

로스엔젤리스 공항에 도착하니 정현이와 사위 쏠이 마중 나왔다.
"하이! 쏠! 하와유? 그레이트 미츄!"
그 동안에 연습한 영어를 구사하여 사위와 인사를 나누었다.
정현이는 1년만에 보는데 별로 달라진 게 없어서 며칠만에 만나는 느낌이었다.
아내는 뒷자리에 앉아 딸과 쌓인 이야기를 풀기에 바빴고, 나는 쏠과 영어로
말 한 마디라도 더 붙여 보려고 애를 썼는데 이거 긴 말은 못 하겠고 짧은 말만
하자니 대화가 길게 이어지지를 않는다.
로스엔젤리스 오랜지 카운티에 있는 정현이 아파트에 도착해보니 건물은 깨끗한데
넓은 유미 집에 있다 오니 아파트가 더 좁아 보인다.
방도 하나 뿐이라 우리가 안방을 차지하고 나면 정현이 부부는 거실에서 자야 한다.
할 수 없이 하루는 우리가 안방에서 자고 그 다음날부터는 우리 부부가 거실에서
요를 깔고 잤다. 난 침대 체질이 아니니까.
한국에 있는 우리 아파트도 넓은데 미국까지 와서 고생하는구나. 큭큭큭!
하기야 나도 신혼 초기에는 이보다 더 좁은 아파트에서 살았으니 정현이도 다음에
돈을 모아서 더 넓은 아파트에 가서 살겠지. 그때는 내가 또 여기 올 일이 있을까?
부모가 늙지 않고 기다려주면 좋겠지만 자식들이 돈을 벌고 나면 이미 부모는 다
늙어 버린다.
자식들이 돈을 번 뒤에 부모를 외국으로 초청해본들 돌아다닐 기운이나 있을는지.
이번에 여행을 가보니 몇 년 뒤에는 정말 외국 여행이 쉽지 않을 것 같다. 해외
여행은 무엇보다 체력이 뒷받침되어야 하니까.
내가 건강할 때 이렇게 마음대로 돌아다닐 수 있고, 자식들 도움 받지 않고
내 돈으로 여행을 오고 경비를 쓸 수 있어서 좋다.
쏠은 학교에 교사로 근무하고 있지만 경력이 짧아 봉급이 그리 많은 편이 아니다.
아내는 딸이 어렵게 사는 것을 보고 마음이 아픈지 디즈니랜드 입장권 값이랑
관광 경비를 다 대어주려고 했다. 딸은 딸대로 안 받으려고 하고.
나야 딸이 고생을 좀 하더라도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하랬다고 애써 태연하려고
하는데 아내는 직접 자기 배로 낳은 엄마라서 그런지 그게 안 되는가 보다.
한국으로 돌아 올 때도 남은 여행 경비를 다 털어주고 왔다.
( 8월 7일 일요일 맑음 )
로스엔젤리스도 뉴멕시코처럼 건조한 날씨가 계속되고 있단다.
벌써 3개월째 비가 안 왔다나. 그런데도 물을 아껴쓰라는 말을 들어보지 못했다니
물 사정은 좋은 가보다.
차를 타고 가면서 보니 나무들만 살아 있고 산에는 풀이 모두 말라 죽어서
여름인데도 우리 나라의 가을처럼 누렇게 보였다.
여기는 큰 도시이지만 주택이 많고 아파트는 적은데 아파트라고 해야 2층 정도가
고작이다.
높은 건물은 큰 빌딩이나 볼 수 있고 주택은 단층이 대부분이다.
딸이 사는 아파트 화단에 있는 화초들은 스프링 쿨러를 돌려서 키우고 있었다.
< 요세미티 국립공원 캠프장에서 >

딸과 사위가 2박 3일의 일정으로 요세미티 국립공원에 미리 예약을 해 놓아서
차를 타고 캠핑을 하러 갔다.
요세미티 국립공원은 로스엔젤리스에서 차로 5시간 정도 가야 했다. 사위가 운전을
잘 해서 편하게 타고 갔다.
요세미티 국립공원에 도착해보니 세계적으로 유명한 공원이라는 말처럼 경치가
아주 좋았다.
캠프장은 예약한 사람만 이용이 가능한데 텐트 칠 장소와 수도 시설, 화장실,
바베큐 석쇠가 갖추어져 있었다.
우리는 밥을 지어 먹고 캠프 파이어도 했다.
밤이 되자 별이 하늘에서 쏟아질 듯이 초롱초롱 빛났다. 하늘은 온통 별밭이었다.
야, 정말 별이 많구나! 여태까지 그렇게 많은 별을 본 적이 없었다. 한국에
있는 별들이 모두 이곳으로 이민을 온 것일까?

가까운 곳에 시냇물이 있는데 물도 깨끗하고 물을 더럽히지 않는 사람들도 깨끗하게
보였다.
여기서는 계곡물에서 샴푸로 머리를 감거나 비누칠을 하는 사람을 볼 수가 없다.
선진국이란 나라가 잘 산다고 무조건 선진국이 되는 게 아니라 국민 개인이 그런
대접을 받을만한 행동을 해야 하리라.

캠프 불을 끄자 사방이 고요하였다. 미국 사람들은 휴가를 와서도 남에게 피해를
주는 법이 없다. 캠핑 차를 몰고 와서 가족과 함께 조용하게 쉬다 가는 모습이
퍽 인상적이었다.
내일은 또 어떤 멋진 구경을 하게 될까? 하루 하루가 기대에 가득찬 가운데 넘어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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