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10월 15일 토요일 맑음 >
요즘 여러 가지 일로 바빠서 <범초산장>에 올릴 글을 자주 쓰지 못했는데
미국에 있는 처제 유미가 전화를 걸어왔다.
"형부, 애릭이 글나라 카페에 들어가서 범초 산장에 올려 놓은 사진과 글을
보고 싶어해서 제가 통역을 해줘요. <수다떠는 골목길>에 있는 글도 해석해 주면
많이 웃어요. 재미있는 내용이 많더군요."
헉! 이젠 글나라가 국제적으로 뜨는구나!
그 말을 들으니 유미와 애릭을 위해서라도 부지런히 글을 올려야겠다.
유미는 아기를 가져서 배가 부를 텐데 이 글을 보며 고국에 대한 향수를 달래고
아기를 위해 좋은 태교가 되었으면 한다.
어제는 제자 하늬가 일하고 있는 <될성부른 나무> 어린이 전문 서점을 찾아갔다.
<될성부른 나무> 책방은 연산동에 있는데 그 지역이 재개발 지역으로 지정되는 바람에
곧 헐리게 된단다. 그래서 주인인 윤원구님과 신인경님이 서점을 그만두고 얼마 후에
충청북도 제천에 새로운 땅 1000평을 마련하여 이사가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 말을 들으니 퍽 서운했다. 나는 자주 찾아가지 못했지만 언제라도 가면 있을 줄
알았는데 이제 없어진다니....
그래서 시간이 나는 글나라 카페의 회원들과 문을 닫기 전에 한 번 찾아가기로 했다.
< '나의 아름다운 늪'의 저자 하늬와 글나라의 운영자인 남촌 김춘남 >

다른 회원들도 언제든지 가면 문을 열어 놓고 기다릴 줄 알았는데 막상 없어지게
되었다고 하니 아쉽다고 하였다.
<될성부른 나무> 책방은 우리 속담의 '될성 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는
말에서 따왔다고 하는데 이름을 참 잘 지었다는 생각이 든다.
어떤 어린이든지 이 서점에서 책을 사보면 모두 될성부른 나무가 될 테니까.
요즘 어린이들이 책을 많이 읽지 않는데 책을 안 읽는 만큼 시원찮은 잡목이 될
가능성이 높다. 책을 꾸준히 읽는 어린이들이야 말로 하늘처럼 큰 나무로 자랄
것이다. 책은 그만큼 마음에 중요한 양식이며 사고력을 키워주는 가장 좋은 약이다.
내가 밀양 어느 시골에 갔을 때 어떤 아주머니가 나보고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선상님! 부산 가거들랑 우리 아들 머리 터지는 약 좀 사다 주이소!"
나는 그 말을 듣고 무슨 새로운 약이 나왔나 싶어서 무슨 약이냐고 물었더니
그게 바로 '책'이라는 것이었다. 책을 읽으면 머리가 좋아진다는 이치는 시골의
평범한 아낙네도 알고 있는 셈이다.
< 얼굴도 이쁘지만 마음이 더 고운 한세경 >

서점 안으로 들어갔더니 하늬가 서운한지 다른 때보다 약간 어두운 얼굴로 우리를
맞아 주었다. 이젠 하늬가 어디에 가서 무슨 일을 하게 될까? 하늬는 이런 서점에
딱 맞는 사람인데. 나도 알아보겠지만 발이 넓은 이땅바다나 남촌이 하늬의 새로운
일자리에도 관심을 가져주면 좋겠다.
서점 마당에서는 윤원구님과 신인경님이 바베큐 고기를 굽고 있었다. 주인 내외는
항상 저런 자세로 손님을 따뜻하게 맞아주어서 마음이 훈훈해졌다.
우리는 서점을 둘러본 뒤에 마당에 준비한 회식 자리에 앉았다.
<될성부른 나무 책방 안에 있는 여러 가지 들꽃들>


마당에 앉으니 달이 하늘에서 훤하게 비춰주고 있었다. 예전에는 유치원을 하던
곳이라 놀이터도 있고 많은 나무와 꽃도 있어서 훌륭한 정원에 온 느낌이었다.
우리 일행은 모두 10여 명이었는데 맥주와 소주를 마셔 가며 한 마디씩 아쉬운
소감을 말했다. 가장 멀리서 온 사람은 무명초였다. 무명초는 집이 창원인데도
문을 닫게 되는 될성부른 책방과 하늬를 보고 싶다고 온 성의가 대단했다.
윤원구님은 이게 될성부른 책방의 끝이 아니고 충북 제천에 가면 뭔가 새로운
문화 사업을 할 거라며 글나라 회원들이 1박 2일로 수련회를 할 수 있도록 숙박
시설을 만들어 놓겠다고 약속하였다.
지금 서점 문을 닫는다고 아주 끝이 나는 것은 아니구나.
어떤 것이 끝난다고 해서 진짜 끝이 나는 것은 아닌가 보다. 사람이 스스로 못
하겠다고 포기할 때 끝이 있는 것이지 아직 더 할 수 있다고 믿으면 아직 끝이
난 것은 아니다. 당장 못할 뿐이지 언젠가는 다시 할 수 있으니까.
< 무명초와 시내 >

사실 알고 보면 이런 서점이 잘 되어야 작가도 더 빛날 수 있다. 서점에서 책이
잘 팔려야 작가도 신바람이 날 텐데 서점이 어떤 이유로든 문을 닫으면 작가는
책을 팔 곳이 없어지는 것이다.
엄마가 듣기 좋아하는 제일 아름다운 소리가 '어린이가 책을 읽는 소리'라고 하던데
서점이 없어지면 새로운 책은 어디서 구할 것인가? 요즘에는 인터넷으로 책을 살 수
있지만 이런 서점의 살아있는 분위기하고 비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자기가 직접
책을 들추어 가며 그림이나 내용을 훑어보고 사기 위해서는 서점이 꼭 필요하다.
인터넷 서점은 편리하긴 하지만 서점의 푸근한 정서적인 분위기와 책을 읽고 싶은
의욕을 자극해주기는 힘들다. 특히 어린이들에겐 이런 서점이 꼭 있어야 한다.
부모가 어린이를 데리고 책방 나들이를 자주 해야 어린이들도 책을 좋아하게 되고
새로운 책에 관심을 갖게 되는 것이다.
< 글나라 운영자 윤슬, 시내, 운영자 이땅바다, 운영자 가스등>

오늘은 글나라 카페 운영자가 모두 와서 참 반가웠다.
다들 바쁜 시월인데 이렇게 한 자리에 모이고 보니 운영자들의 단합된 모습을 볼 수
있어서 믿음직했다. 그들이 나를 위해 이렇게 귀한 시간을 내어주었는데 나 또한
그들이 부르면 언제든지 바쁜 일 제쳐두고 달려가리라!
사랑은 흔히 베푸는 것이라고 하지만 나같은 필부는 이렇게 사랑을 받아봐야 비로소
갚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몽당연필은 신랑이 차를 동원하여 우리 몇 사람을 해운대에서부터 태워주었고
어린 아이까지 데리고 와줘서 그 성의가 참 고마웠다.
몽당연필은 그 열정을 글쓰는 데도 발휘하여 심이 다 부러져서 가루가 될 때까지
글을 쓰기 바란다. 난 독한 소주는 못 마시는데 나보다 더 나은 그 술 실력이라면
못할 게 뭐 있겠는가? 아직은 아이가 어려서 글을 쓸 여건이 안 된다고 하지만
아이를 데리고 어디 나갈 때는 동화의 글감을 구상하고, 집에서는 아이를 재워 놓은
다음에 글을 쓰면 될 것이다.
<하늬, 이은, 이땅바다, 시내, 몽당연필>

윤슬이 한 말이 가슴에 와 닿는다.
"아무리 바빠도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은 어떻게 해서라도 하잖아요. 하기 싫으니까
안 하는 것이지 시간이 없어서 안 하는 것은 아니라고 봐요. 마음만 먹으면 어떤
일이든지 할 수 있을 거예요."
그렇다. 자기가 꼭 해야 할 일은 강한 신념과 열정을 갖고 해나가야 할 것이다.
우리는 글을 쓰는 것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다.
나도 다른 시간은 아껴서 글을 쓰거나 동화 지도를 하다가 이런 제자들과의 모임에
와서 머리를 식혀야겠다.
늦은 시간까지 오손도손 이야기 하고 웃으며 놀다가 다음을 약속하며 헤어졌다.
그 어느 자리보다 정답고 푸근한 자리를 마련해준 하늬와 될성부른 주인 내외분에게
감사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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