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창작

[이명희] 우람이와 우레

凡草 2005. 10. 20. 07:55
우람이와 우레 이 명 희 “아이구우- 이거 날씨 한번 좋구나.” 구름 한 점 없이 파아란 하늘을 쳐다보며 만달이 아저씨는 일찍 집을 나섭니다. 경기장까지는 그다지 멀지 않은 거리입니다. 때맞춰 산들산들 불어오는 바람이 소매 자락이며 가슴팍을 시원하게 파고듭니다. 휘파람을 불며 걸어가는 만달이 아저씨나 몇 발짝 뒤에 따라가는 우람이나 둘 다 여유가 있어 보입니다. 만달이 아저씨가 눈을 찡긋하며 묻습니다. “우람이 니 자신 있제?” “음머-” 우람이의 우렁찬 대답에 만달이 아저씨가 고개를 끄덕이며 흐뭇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이름에 걸맞게 산처럼 우람한 황소 우람이. 덩치뿐만이 아닙니다. ‘으음머어어어-’ 울음소리 한 번이면 주위에 있는 나무며 집들이 뜨르르 울릴 정도입니다. 만달이 아저씨와 우람이는 오늘 싸움이 벌어질 경기장을 둘러봅니다. 이제 곧 구경꾼들이 구름 떼처럼 몰려들 것입니다. 몸도 풀 겸해서 어제 미리 둘러보고 가서 그런지 한결 느긋한 마음입니다. 하긴 뭐 그렇지 않고서도 2년 연속 우승을 한 우람이고 보면 이제 어느 정도 여유와 자신감이 넘치는 게 당연한 건지도 모릅니다. 경기를 생각하자 우람이는 벌써부터 몸이 근질근질해지면서 한 판 승부가 기다려집니다. 그도 그럴 것이 오늘을 위하여 지난 일년간 하루도 빠짐없이 불무골 뒷산에 올라가 산악훈련을 해왔으니 말입니다. 우람이는 그 뜨거운 여름에도 땀을 비 오듯 쏟으면서 무거운 모래주머니를 목에 달고 뒷산을 헉헉거리며 오르내렸습니다. 어디 그 뿐인가요. 쿵! 쿵! 아름드리 소나무에 들메질(뿔질)을 해대면서도 아픔을 꾹 참아야 했습니다. 하지만 우람이는 훈련이 힘들다고 불평을 해 본적이 없습니다. 비록 훈련이 고되긴 했지만 만달이 아저씨가 친자식 못지 않게 아끼고 위해주는 걸 알기에 단 한 번도 꾀를 피우지 않고 묵묵히 참고 견뎌냈던 것입니다. 고된 훈련이 끝나면 만달이 아저씨는 땀으로 범벅이 된 우람이를 냇가로 데리고 가서 시원하게 목욕을 시키고, 저녁이면 밀, 보리쌀, 콩싸래기 등에 볏짚을 적당히 썰어 넣어 따끈따끈하고 구수한 여물을 직접 쑤어 먹였습니다. 만달이 아저씨는 여물을 구유에 퍼담아 주고 그냥 가버리는 일이 없었습니다. 마치 아이에게 밥을 먹이는 엄마가 그러하듯, 우람이가 맛있게 먹는 모습을 흐뭇한 얼굴로 지켜보는 것입니다. 그런 아저씨에게 보답이라도 하듯 우람이는 볏짚 하나 안 남기고 구유 밑바닥이 깨끗이 드러나도록 맛있게 먹어치우곤 했습니다. 하지만 가끔 등뒤에서 쏟아지는 부인의 잔소리를 들어야 했습니다. “우람인지 울어맨지 니는 참말로 좋겠데이. 주인영감이 훈련시킨다꼬 산으로 들로 뛰댕기매 놀아주고, 덥다꼬 목욕시키주고, 맛난 거, 좋다는 거 골라 해 믹이고, 그것도 모지래서 먹는 것 이쁘다꼬 들다보고 앉었고, 소 중에 니만치 호강하는 소가 어디 있겠노.” 만달이 아저씨가 입맛을 쩝쩝 다실라치면 부인은 한마디를 더 합니다. “보소. 우람이 아부지! 우람이한테 하는 거 내한테 반의 반만 해보소. 내 날마다 절이라도 해줌시더.” 우람이는 왠지 미안한 마음에 큰 눈을 껌벅껌벅 만달이 아저씨를 쳐다봅니다. 아저씨가 부시시 털고 일어나며 대꾸를 합니다. “허허 참, 이 사람이 이거......우리가 뭐 할 일이 없어 놀러나 댕기는 줄 아는 갑네. 작년, 재작년에 우람이 상타왔을 때 좋아라 하던 사람이 누군데 인자 와서 까맣게 잊어뿌린나? 우람이 아이머 누가 내한테 이래 상타서 안겨 줄끼고? 상도 상이지만 우람이만한 효자도 없는기라. 덕분에 이 만달이가 유명한 사람이 됐으이. 어험-” “......” 부인이 입을 삐죽이 내밀면서도 아무 말도 못하면 이번엔 만달이 아저씨가 한 번 더 따끔하게 못을 박습니다. “행여 짐승이라꼬 내 없을 때 함부로 말하지 마라. 다 알아 듣는데이.” 어느덧 결승전입니다. 경기장을 꽉 메운 구경꾼들의 응원열기가 여느 때보다 뜨겁습니다. “여러분, 2년 연속 우승한 작년 챔피언 우람이를 소개합니다.” “자, 우람아, 니 부른다.” 우람이를 소개하는 마이크 소리에 정신이 든 우람이가 당당한 걸음걸이로 경기장 한가운데로 걸어나가자 구경꾼들의 박수가 와르르 쏟아집니다. ‘이번에도 꼭 이겨야 해. 아저씨를 위해서라도.......“ 행여 우람이가 지기라도 하면 아저씨 체면이 말이 아닐 것입니다. 안 그래도 잔소리가 심한 아줌마에게 일년 내 들들 볶일게 불을 보듯 뻔합니다. “자, 이번에는 챔피언에 도전하는 소를 소개합니다. 처음 출전했지만 좋은 성적으로 결승전에 올라 온 우레-” 또 한번 구경꾼들의 박수소리가 경기장을 가득 메웁니다. 이윽고 경기가 시작됐습니다. 박수소리가 잦아들고 구경꾼들은 숨을 죽인 채 침을 꼴깍 삼킵니다. 우람이가 마주 오는 소를 노려보며 천천히 다가갑니다. 맞은편 소 역시 우람이에게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언뜻 보기에도 다부진 체격에 빈틈이라곤 없어 보입니다. ‘흠- 만만치 않은 녀석이야.’ 우람이는 기회를 엿보다가 우선 밀치기를 시도해 볼 생각입니다. 서로 머리를 맞대고 힘을 가늠해보는 밀치기는 상대방 선수의 힘과 뚝심을 시험해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합니다. 언뜻 보기엔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밀치기에서 뒤로 밀리거나 얕잡아 보이기라도 하는 날엔 경기 내내 휘둘리게 되어 결국엔 질 수도 있습니다. 상대방 선수를 노려보면서 한 편으론 작전을 짜는 우람입니다. ‘밀치기에서 기를 잔뜩 꺾어놓은 후엔 곧바로 뿔걸이, 이어서 목치기로 들어가야겠군.’ 뿔걸이와 목치기는 우람이의 주특기입니다. 목 치기에서 상대방 소가 비틀거리는 틈을 타 옆구리쪽 배를 공격하면 웬만한 소들은 비실비실 도망가기 마련이므로 경기는 자연스럽게 마무리될 것입니다. 손에 땀을 쥐고 지켜보던 구경꾼들은 소리를 지르며 우람이에게 또 다시 뜨거운 박수를 보낼 것입니다. 상상만 해도 어깨가 우쭐거려지려는 순간, 우람이는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맞은편 소가 갑자기 펄쩍 뛰어오른다 싶더니 쏜살같이 달려와 뿔머리치기로 우람이의 이마를 들이받은 것입니다. 너무나 갑작스런 공격에 미처 피하지 못한 우람이는 잠시 비틀거리다가 가까스로 정신을 가다듬었습니다. 상대방 소를 노려봅니다. 애써 태연한 척은 해보지만 속으론 참 어이가 없습니다. 흔히 밀치기를 하면서 서로를 충분히 살핀 뒤에 공격을 하는 게 순서인데, 다짜고짜 달려드는 걸 보면 예의도 없거니와, 성질이 어지간히 급한 녀석인 모양입니다. 하지만 당하고만 있을 우람이가 아닙니다. “흥! 예의라곤 눈곱만큼도 없는 녀석. 어디 맛 좀 볼래?“ 우람이는 머리를 바짝 숙이고 위협적인 자세로 머리치기를 시도했습니다. 우람이의 공격에 주춤주춤 뒤로 물러나던 우레가 우람이를 노려보며 주위를 빙글빙글 돌기 시작합니다. “어머! 저 피 좀 봐.” 구경꾼들이 쑤군거립니다. 어쩐지 눈이 침침하다고 생각했더니 우람이의 눈 언저리에 피가 흐르기 시작합니다. 우레의 정면공격에 상처가 난 모양입니다. 상처를 입기는 우레녀석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람이의 머리치기에 제대로 맞았는지 이마와 코 사이에서 피가 흐르고 있습니다. 지켜보던 구경꾼들이 저마다 소리를 지르며 응원을 하기 시작합니다. “우람이 힘내라.” “우람이 이겨라.” “우레 힘내라.” 여느 때와는 달리 경기가 시작되자마자 시작된 한바탕 열띤 싸움에 사람들은 저마다 자기가 응원하는 소 이름을 부르며 박수를 치고 고함을 지르며 아우성들입니다. ‘흠, 이쯤에서 내 뿔치기 맛을 슬슬 보여줘야겠군.’ 우람이는 자신만만한 눈빛으로 다가오는 상대방 소를 노려봅니다. 우람이는 그 어떤 소도 이겨낼 자신이 있습니다. 작년에도, 재작년에도 우람이가 우승을 거둔 건 바로 뿔치기 때문이었으니까요. 우람이의 뿔은 튼튼한 노고지리뿔입니다. 이마 양쪽에 보아란 듯이 솟아나, 경기에 나온 소 주인들까지 만져보며 너도나도 탐을 내는 자랑스런 뿔입니다. 어제 저녁에도 만달이 아저씨는 우람이의 뿔을 긴 줄로 다듬어주며 그랬습니다. “니 무기는 뭐니뭐니 캐도 하늘로 팍 치솟은 이 노고지리뿔이다. 이 뿔 앞에서는 지 아무리 힘센 소도 벌벌 기는 기라. 들메질로 그만치 연습도 했으이끼네 멋지게 한 판 싸워봐라. 알았제? ” 그만큼 우람이의 자랑이자 만달이 아저씨의 자랑이기도 한 노고지리뿔입니다. 그런데 다가오는 상대방 소를 노려보던 우람이의 눈빛이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합니다. 가까워질수록 어딘가 모르게 낯이 익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이상하다. 그러고 보니 이름도 우레라고 했겠다? 그럼 넌 내 동생 우레?“ 우람이의 머릿속에 번개처럼 오래 전 일이 떠오릅니다. 그 때만해도 만달이 아저씨에게는 소가 제법 많았습니다. 하지만 자식들 뒷바라지에 자꾸만 빚이 늘어 한 마리씩 한 마리씩 팔다보니 중송아지 두 마리만 남기고 모조리 팔게 되었습니다. 그 때 남겨진 놈들이 바로 우람이와 우레. 만달이 아저씨가 제일 예뻐하던 쌍둥이 소들이었습니다. 하지만 얼마 후, 만달이 아저씨는 형편이 더욱 나빠져 동생 우레까지 팔아야 할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유난히 어리광이 심했던 우레가 팔려가던 날, 우람이도 우레도 목이 쉬도록 울었습니다. 안가겠다며 한사코 버티던 우레의 울음소리가 모퉁이 길을 돌아 보이지 않을 때까지 계속 들려왔습니다. 지켜보던 만달이 아저씨도 한숨을 푹 쉬면서 우람이의 등만 자꾸자꾸 쓰다듬었습니다. “미안하다. 어떤 일이 있어도 너희 둘은 내가 키우려고 했었는데......” 우람이는 알고 있습니다. 그 때 만달이 아저씨가 분명 자기보다 더 아끼던 우레를 팔고 우람이를 선택했던 이유가 바로 이 노고지리뿔 때문이었다는 것을. 팔려간 우레의 뿔은 싸움소로서는 우람이의 노고지리뿔보다 다소 불리하다는 비녀뿔이었던 것입니다. 틀림없습니다. 비녀뿔인데다가 화가 나면 코를 씰룩대는 버릇까지, 보면 볼수록 틀림없는 동생 우레입니다. “정말 오랜만이구나. 우레야.” 우람이는 밀치기를 하는 척, 우레의 이마에 바짝 머리를 갖다 댔습니다. 문득 옛날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어릴 적, 날마다 이렇게 머리를 맞대고서야 둘 다 잠이 들곤 하던 생각입니다. “......” “나 우람이야. 옛날에 이렇게 머리 맞대고 자던 생각나니?” 부드럽게 쳐다보는 우람이의 눈에 물기가 어립니다. “......?” 우레는 화난 표정으로 잔뜩 우람이를 노려보고만 있습니다. “서운해서 그러는 구나? 많이 아프지?” 코 언저리에 아직도 피가 흐르는 걸 보니 정말 많이 아픈가 봅니다. 우레가 고개를 홱 돌리며 코웃음을 칩니다. “흥, 형이라니, 무슨 뚱딴지같은 소릴 하는 거야? 쓸데없는 소리말고 빨리 공격이나 해보시지.” 머리를 맞대고 있던 우레가 사납게 뿔을 휘저으며 공격할 자세를 보입니다. 흠칫 뒤로 물러난 우람이는 우레를 물끄러미 바라봅니다. ‘흠, 끝까지 날 못 알아보다니...... 하긴 다행인지도 모르지.“ 우레의 공격을 이리저리 피하기만 하던 우람이가 슬금슬금 구석으로 뒷걸음질치더니 마침내 도망을 치기 시작합니다. 당황한 우레가 황급하게 뒤를 쫓아갑니다. “야! 돌아와. 비겁하게 왜 도망가는 거야?” 우람이는 뒤를 보지도 않고 도망치기에만 급급합니다. 구경꾼들이 술렁거리기 시작하더니 우람이에게 손가락질을 합니다. “뭐야. 이거......작년 챔피언이라 더니 순 겁쟁이잖아.” “3년 우승은 문제없겠다 생각했더니 잘못 짚었어.” “그러게 말야. 에이- 돈 아까워.” 쫓기는 우람이를 바라보던 아저씨가 허둥지둥 우람이를 따라 경기장 밖으로 나갑니다. 사실 만달이 아저씨는 우레를 처음 보는 순간, 한 눈에 알아보았습니다. 곱상한 우람이에 비해 좀더 고집스럽게 생기긴 했어도 넓고 탄탄한 가슴, 쪽 곧은 등과 반듯한 앞다리, 영락없는 우람이었습니다. 다만 옆으로 누운 그 뿔만 빼면......우레 역시 만달이 아저씨를 알아보는 눈치였습니다. 우레는 원망과 서운함이 가득한 눈빛으로, 만달이 아저씨는 반가움과 미안함이 가득한 눈빛으로 서로를 바라보았습니다. ‘마이 컸다. 짜석! 아직도 서운한갑제?’ 유난히 고집이 세고 어리광이 심했던 우레. 비록 형편이 어려워 팔긴 했지만 만달이 아저씨는 우레를 결코 잊을 수가 없었습니다. ‘음- 이렇게 만나게 될 줄이야.’ 서로 머리를 맞대고 있는 두 마리 소를 바라보며 아저씨는 지긋이 눈을 감았습니다. 눈이 펑펑 내리는 겨울날이었지. 너희들을 처음 만난 게. 갓 태어난 송아지에게 어미젖을 물리고 부드러운 깔 짚으로 춥지 않게 싸준 뒤 급한 일로 외출에서 돌아온 나는 외양간 앞에서 입을 딱 벌리고 말았어. “이게, 이게 대체 우에 된 일이고? ” 울부짖는 어미 소 옆에 또 한 마리 송아지가 뻣뻣하게 언 채 죽어있었던 거야. 그제야 어미 소가 쌍둥이를 낳았다는 것을 안 나는 뻣뻣하게 굳어버린 송아지를 꼭 끌어안고선 어쩔 줄 모르고 발만 동동 굴러댔지. 그런데 죽은 줄 알았던 송아지의 가슴에서 팔딱팔딱 희미하게 심장 뛰는 소리가 들리지 뭐야. 무조건 살려야 한다는 생각에 따끈따끈한 안방 아랫목에다 송아지를 눕히고 푹신한 이불을 덮어줬어. 그리고선 곧장 읍내로 나가 갓난아이들이 사용하는 젖병과 분유를 한 통을 사들고선 뒤도 안보고 달려왔던 건데 그새 집에선 영문도 모르고 이불을 들추던 식구들이 넓죽이 엎드린 송아지를 보고 기겁을 해서 뛰쳐나오는 소동이 벌어지고...... 힘이 없어 혀끝으로 밀어내기만 하던 송아지가 갓난아기처럼 쪽쪽 소리를 내며 젖병을 빨기 시작할 땐 정말 뛸 듯이 기뻤지. 그게 바로 우레 너였어. 그런데 그 날 새벽, 이상한 기척에 일어난 우리 식구들은 눈앞에 벌어진 광경에 입을 다물 수가 없었지. 우레가 걸음마를 하고 있었거든. 다 죽어가던 우레가 글쎄 장판이 미끄러운 탓에 몇 걸음 못 가서 앞다리가 쭈욱 미끄러지고, 일어나서 또 몇 걸음 떼다가는 뒷다리가 쭈욱 미끄러지고...... 그 우스꽝스런 동작에 자다 일어난 우리 식구들은 떼굴떼굴 방바닥을 치며 웃어댔었지. 그렇게 사흘을 방안에서 키우다 어미 곁으로 보냈는데 맹랑하게도 어미젖을 마다하고 한사코 젖병만 찾는 바람에 또 몇 일간을 혼이 났었지. 다행히 형인 우람이와 똑같이 쑥쑥 자라주는 게 고마웠지만 고집이 얼마나 센지 해가 지나 어미젖을 떼야할 시기가 됐는데 이젠 또 어미젖만 먹겠다고 고집을 부리는 거야. 언제는 젖병만 찾더니...... 물론 형인 우람이는 진작에 뗐었지. 이러다간 어미나 새끼나 둘 다 살이 안찌겠다 싶어 내가 두 눈 딱 감고 멀리 떨어진 곳에다 사흘을 매어뒀는데, 거의 일주일을 아무것도 안 먹고 울기만 해서 목이 다 쉬어버렸던 고집쟁이 녀석이 바로 우레 너야. 만달이 아저씨는 떠들썩한 구경꾼들의 고함소리에 비로소 정신이 들었습니다. 우람이가 우레에게 쫓겨 도망을 치고 있습니다. “이런, 내 정신 좀 봐라.” 우람이를 응원해야한다는 사실조차 까마득히 잊은 채 옛날 생각에 젖어 있던 만달이 아저씨는 우람이에게로 달려갔습니다. 아저씨 앞으로 뚜벅뚜벅 걸어온 우람이가 고개를 푹 떨구었습니다. ‘그래, 그래. 사람도, 소도 10년 간은 서로 알아본단 것이다. 오죽하겠나?’ 만달이 아저씨가 우람이의 등을 툭툭 두드려줍니다. “개안타 고마. 나도 실은 저눔아 때문에 정신을 팔고 있었던 기라.” 그 때였습니다. 경기장에서 우레의 애타는 울음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음머어어어- 형, 우람이 형, 가지마. 형이 이럴까봐 일부러 모른 척 한 건데. 제발 가지마. 그동안 얼마나 보고 싶었는지 알아? 음머어- 음머어어-” 뒤돌아보는 우람이의 커다란 눈에 금세 눈물이 가득 고입니다. 하지만 우람이는 경기장 안에 있는 우레에게 다 들리도록 우렁차게 대답을 했습니다. ‘으음머어어어- 음머- 그래. 그럴 줄 알았어. 우레야. 나도 너 많이 보고 싶었어. 하지만 이제 울음 그쳐야지. 넌 이제 챔피언이란 말이야. 안녕.“ “음머- 음머어- 안 돼. 그런 게 어딨어. 다시 돌아와. 아니 나랑 같이 가. 형.” 우레의 보채는 듯한 부르짖음에 우람이는 가슴이 아픕니다. “자, 우람아. 우리는 고마 가자.” 만달이 아저씨가 우람이를 재촉합니다. 한참이나 뒤돌아보고 섰던 우람이가 마침내 아저씨를 따라 나섭니다. 구름 한 점 없이 푸른 하늘에 어룽어룽 눈물이 번져갑니다. (*)